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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차가운 언덕에, 회사로 들어가는 화려한 그 입구에 기주가 서 있었다. 기주가 맞나? 처음에는 저 사람 기주를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교회에서 회사로 연결되는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내 근시안에도 큰 입으로 활짝 웃고 있는 기주가 보이기 시작했다. 야, 이기주! 기주야! 와, 이기주! 기주는 웃고만 있었는데 나는 이름만 계속 부르면서 기주의 손을 싸잡고 흔들었던 것 같다. 잠시 후 나와 기주는 지금의 '바이닐 앤 플라스틱' 자리에 있던 뉴욕피자에서 마주 앉았다. 기주야, 어떻게 지내? 선배! 저 인천에서 다시 교대 다녀요. 교대? 그렇지, 너랑 잘 어울린다 야. 사학을 전공한 네가 학교선생님이 된다니, 역사가 바로 서겠군. 선배는 어쩜 그대로 세요. 차분해지자 내 머릿속에 떠오른 건 기주와 내가 찬 바람이 부는 이런 날 인천에서 이태원까지 나를 찾아올 정도의 사이는 아니지 않은가, 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