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에 달린 예닐곱 개의 모니터가 오랜만에 켜졌다. 모니터 속에서 남의 대통령이 북의 주석과 만났고 악수를 했다. 어디선가, 알 수 없는 곳으로부터 정신을 들뜨게 만들고 마는 훈풍이 불어왔다. 그렇게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기주의 전화번호는 잊어버린 것 같았다. 기주의 전화번호가 적힌 테이블매트의 한 귀퉁이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나는 여전히 수희가 누구인지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수희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놀란 기주의 얼굴만 아련하게 남았다. 선배가 수희를 기억 못 하는 건 좀 이상하다. 갸우뚱하는 기주의 어깨선은 또렷하게 기억했다. 남한의 늙은 수장은,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을 만난 것처럼 스스럼없이 북한의 연하의 수장을 포옹했다. DJ는 밝고 맑게 웃고 있었고 김정일은 고요하게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