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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사랑하는 어린이

by 다다

태어난 지 15개월 된 조카 ‘빈’이는 나를 ‘이-오’라고 부른다. ‘이모’에서 ‘모’라는 글자가 잘 발음되지 않는 모양이다. 이응과 미음 사이, 그 애매한 발음이 나를 들뜨게 한다. 그럼 난, 내가 제일 사랑하는 어린이에게 특별한 존재가 된 것만 같다. 가장 달콤한 애칭을 들은 듯 몸 둘 바 모르게 된다. 얼굴에 웃음이 함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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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이가 태어나고 나서, 기차를 타는 횟수가 늘었다. 언니와 형부가 사는 부산을, 서너 달에 한 번씩은 빈이를 놀아줄 겸 내려가기 때문이다.


빈이와 놀 때면 나도 같이 어린아이가 된다. 이미 한두 살에 뗀 장난감을 가지고 가장 재미있는 놀이를 하듯 연기해야 하니까. 동그라미, 네모, 세모 모양의 나무 놀잇감을 딱 맞는 구멍에 찾아 넣어주기. 그림동화를 보며 이야기를 창작해 내기(특히 이땐, 나의 구멍 난 창의력에 탄식이 나온다). 동요를 따라 부르며 가창력 뽐내기 등.


책을 부쩍 좋아하는 빈이는, 알아보는 글자는 없어도 그림을 짚어가며 속삭이는 말들이 좋은가 보다. “빈아, 책 가져와 책!” 말 한마디에 작은 발로 세상을 사뿐 딛고는 책을 짚는다. 그리고 나에게 우다다다, 넘어지듯 달려와 가랑이 사이에 쏙 앉고는 책을 그 앞에 펼친다.


빈이가 좋아하는 책 중 하나는 [Whose Baby am I?]인데 부엉이, 강아지, 토끼 등. 아기 동물들의 그림을 보며, 어떤 동물의 아기인지 맞히는 거다. ‘큼큼.’ 낭독을 시작하기 전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고 이야기를 이어간다.


“후즈 베이비 엠 아이! 자~ 보자 보자. 헤엑. 이게 누구야. 눈이 엄청 크고 똘망하지? 부엉이잖아. 부엉이. 붱~붱~ 빈아, 부엉이 우는 소리 알지?”


물론 나의 질문을 알아듣지 못하는 빈이는 고개 한번 끄덕임 없이, 뚫어져라 책만 바라본다. 다음 장을 넘긴다. 이번엔 기린이다.


“헤엑~ 빈아, 이건 또 누구야~~? 몸이 이따만하게 길잖아~ 기린이잖아. 기..ㄹ”


때마침 빈이가 지루한 듯 책을 휙 치우고 몸을 일으킨다. ‘기리인!!’을 힘주어 외치려던 나는 머쓱하게, 마치 그럴 걸 예상했다는 듯 그러는 거다. “으응. 재미없구나? 그래그래. 다른 책 가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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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책은, 클래식이 흘러나오는 [돌잡이 명화 – 맑은소리, 고운소리], 그다음 책은 부엌 식기를 의인화한 책 [쿵작쿵작 부엌]이다. 부엌 식기들이, 집주인이 자는 사이 소곤소곤 저마다의 마음을 속삭인다. 재밌다. 이미 저기 구석에 가, 자동차를 만지작거리는 빈이는 안중 없이 이야기에 빠져든다.


그렇게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어느새 빈이는 또 ‘흐애앵’ 하며 달려와 안긴다. 눈을 부빗 거린다. 아, 이건 졸립다는 신호다. 잠시간 쉬는 시간을 가지고 있는 언니를 깨운다. 언니가 빈이를 재우러 간 사이 나에게도 쉬는 시간이 주어진다. 그렇게 시간을 쪼개가며 엄마, 형부, 언니와 아이를 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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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서 덜렁거리는 탓에 늘 챙김을 받는 건 나였는데, 이제 조카가 그 자릴 대신했다. 뒤바뀐 모양새가 마음에 든다. 이토록 작고 소중한 존재가, 우리 가족의 우선순위가 된 것에 마음이 벅차오른다.


철없는 마음으로 과거에 살던 나도, 새로운 다짐을 꺼내 든다. 서른 중반을 넘어 성숙을 결심한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 어린이에게 믿음직스러운 이모가 되고 싶다. 부끄러워지고 싶지 않다. 어느 날, 아이가 실망스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고 생각하면 어디선가 ‘따다다단’하고 베토벤 교향곡 운명 1악장이 들려오는 것만 같다.


“이모는 왜, 맨날 휴대폰을 잃어버려어~?”

“이모는 왜, 집에서 놀기만 해~?”

“이모, 우리 엄마가 빌려준 돈 언제 갚을 거야!” (우리 빈이가 그럴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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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은 범위를 넓힌다. 아이가 실망스럽게 보지 않았으면 하는 대상이 ‘나’에서 빈이가 살아갈 ‘세상’으로 확장된다.


빈이 같은 아이들에게 조금 더 친절한 세상이면 좋겠다. ‘노키즈 존’ 팻말이 당연하게 걸리는 세상은 아니었으면 한다. 어떤 아이들도 이유 없이 쏟아지는 총성에 시들어가지 않고, 한 끼 먹을 식사값이 없어서 굶지 않았으면, 얼굴색이 다르고, 좋아하는 이가 같은 성별이라고 차별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위험 없이 지하철을 오르내리고, 성별로 개인의 능력이 평가되는 일은 없는 곳에 살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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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최근엔 이런 생각도 따라 붙었다. 그것에 더해 우리가 가진 다양한 형태의 일상이 당연히 지켜지는 세상이어야 한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 우리의 일상을 뒤흔들 시도를 한다면 참지 않겠다는 어쩌면 비장한 다짐이 꺼졌던 촛불을 켠다. 그러니 이모인 나는 무사히 지켜진 일상 속에서 커가는 아이에게 다채로운 이 세상의 풍경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소개해 줄 작정이다. 그 기쁨을, 정말이지 누구의 방해도 없이 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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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새근새근 잠에 든 빈이를 보며 혼잣말하듯 말했다.


“나중에 빈이 크면, 같이 영화보러 가면 재밌겠다.”


나의 말을 가만 듣던 엄마가 핀잔을 줬다.


“그때 되면, 애가 너랑 놀아주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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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그런가’하고 웃고 말았지만 그래도 초등학교 고학년 되기 전까진 나랑 놀아주지 않을까? 빈이에게 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도 소개해 주고 싶다. 극장 의자에서 발을 달랑거리는 빈이의 모습을 상상한다. 높이가 다른 두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거리를 활보해도 좋겠다. 여름엔 윤슬이 일렁이는 바닷가에서 물장구도 쳐야지. 겨울이 되면 언덕을 스키장 삼아, 썰매를 태워주고도 싶다. 새 계절이 온지도 모르고 지나게 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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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훗날, 아이는 함께 동화책을 읽은 기억도, 아기띠를 매고 제주도 ‘여미지 식물원’을 둘러보던 추억도 기억하지 못할 테지만 그래도 좋다. 그 기억 속 우리를 선명히 기억하는 내가 있을 테니까. 세상엔, 영원이 없어도 영원을 꿈꾸게 하는 것들이 있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바래지 않는 기억들이 있다는 걸 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어린이에게도, 이토록 아름다운 이야기를 가르쳐줄 날이 서둘러, 그럼에도 천천히 와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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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다다 (인스타그램 @ddidawn)

⊙ 그림 : 서콩 (인스타그램 @se0c0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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