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렁이의 하루 Ep. 2 <험난한 시네필의 길>
매년 10월이 되면, 부산행 티켓부터 끊는다.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국제)가 열리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지난 2022년 ‘부국제’에선, 양자경이 주연으로 나온 SF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의 야외 상영이 있었다. 배고픈 모기들에게 피를 뜯겨가면서 러닝타임 2시간이 넘는 영화를 놀이기구 타듯 봤다. 양자경이 화려한 액션을 선보일 땐 나도 몸을 들썩였고, 감동적인 장면에선 몰래 눈물을 스윽 훔쳐냈다. 영화가 끝난 뒤 크레딧이 모두 올라가고 터지던 사람들의 박수갈채와 환호 소리, 휘파람 소리는 잊지 못할 영화의 일부가 됐다.
직접 영화관에 가서 이름도 알지 못하는 다수의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보며 마음을 공유하는 건 감히 따지지 못할 짜릿함을 선사한다. 시네필들은 이 경험을 ‘영화적 경험’이라 일컫는데, 이 감각을 언니에게도 느끼게 해주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며칠 뒤 부산에 사는 언니를 이끌고 영화제가 열리는 센텀시티역에 갔다.
언니는 부산에 산 지 2년이 넘었으면서도, 도시의 대표 축제 중 하나인 ‘부국제’에 오는 건 처음이라며 내심 들뜬 마음을 내비쳤다. 영화제가 처음인 언니에게 편하게 볼 수 있는 영화를 보여주고 싶었다. 고심 끝에 예매한 건 <아줌마>라는 영화였는데, 배우 여진구를 좋아해 한국까지 오게 된 싱가포르 중년 여성의 하루를 담고 있는 작품이었다. 보러 가기 전 밥도 먹고, 커피도 마셨다. 수다를 떨면서도 영화 시간이 한참이나 남은 줄 알았다. 그런데 문득 시계를 보니 10분도 채 남지 않는 걸 보고 눈이 땡그래진 나는, 서둘러 자리를 갈무리하고 뛸 준비를 마쳤다. "언니! 우리 지금부터 뛰어야 해. 얼른!!" 헐레벌떡 언니를 끌고 영화관으로 향했다.
“헉헉. 여기 예매내역이요 헉헉.” 숨을 몰아쉬며 직원에게 예매한 화면을 보여주는데, 어쩐지 동공이 마구 흔들리는 직원의 눈동자에 내 동공도 같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에게서 나온 한마디에 이마에 고인 땀이 주르륵, 바닥으로 미끄러져 내렸다. "고객님, 이 영화는 CGV가 아니라 ‘하늘연 극장’에서 상영하는 거예요. 늦기 전에 얼른 뛰세요!" 이미 여기까지 온 체력을 다 써서 뛰어왔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직원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옆에서 레이저가 마구 뿜어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엑스맨이 된 언니는 레이저로 나를 몽땅 태울 기세였다.
애써 언니의 시선을 무시한 채 다시 뛸 준비를 시작했다. ‘하늘연극장’이 있는 곳까지 가려면 에스컬레이터 타는 시간까지 계산해서 15분은 더 넘게 걸리는 상황. 냅다 언니의 손을 붙잡고 또 내달리기 시작했다. 수많은 인파를 가로지르고 뛰던 길, 우리 사이엔 ‘헉헉’ 소리만 울려 퍼졌지만 어쩐지 청춘 영화의 한 장면 같다는 생각을 했다는 건 언니는 모르는 나만의 비밀이다.
겨우 ‘하늘연극장’이 있는 건물에 도착해서도 상영관이 도대체 어디 있는지 몰라 한참을 헤맸다. 결국 영화 시간을 10분 넘기고 도착했고, 객석은 이미 꽉 차 있었다. 게다가 우리 좌석은 하필이면 맨 앞, 겨우 연석으로 구한 1열이었다는 말씀. 몸을 납작하게 꾸기고 자리를 찾아갔다. 무사히 좌석에 앉자마자 또 느껴지던 언니의 강렬한 시선을 무시한 채 최선을 다해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했다. 속으로 한숨이 절로 났다. 시네필이 되는 길이란 참 험난하구나. 우리 언니, ‘영화적 경험’, 정말 제대로 했다.
⊙ 글 : 다다 (인스타그램 @ddidawn)
⊙ 그림 : 서콩 (인스타그램 @se0c0ng)
⊙ 덜렁이의 하루 (인스타그램 @dadashou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