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연과 광이 결혼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건 이미 아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연남동 길을 걷다가 연이 하는 말에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당연히 축사는 언니가 해야지. 언니 아니면 누가 해?”
연과 나의 친구이기도 한 광을 오랜 시간 지켜본 사람 중 한 명이 나였다. 그래서 더 어려운 건데.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결혼식에서 눈물 없이 문장을 읽어 내려갈 자신이 없었다.
“나 눈물 많은 거 알면서....결혼식 때 백퍼 울 텐데 괜찮아?”
연은 단호했다. “아니, 울면 안 되지. 안 울고 해야지~” “눈물이 나는 걸 어뜩해.” “그래도 참아야지.” “몰라몰라 나 울면 나도 몰라.” 그렇게 유치한 설전을 벌이다 좋은 묘수가 생각난 듯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때?”
“축사할 때 따단..따단...그 영화 ‘죠스’ BGM 있잖아. 뭔지 알지? 그걸 트는 거야. 그럼 안 울지 않을까?”
연이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 쳐다봤다. 아랑곳 않고 다음 제안을 이었다.
“아니면 이건 어때. 미리 적어놓은 축사를 다른 친구가 읽는 거지. 아아. 다다 씨가 눈물이 많은 관계로 대신 축사를 해보겠습니다.”
“왜? 아예 AI한테 대신 읽어달라고 부탁하지?”
결혼식장에 울려 퍼지는 정직하고 기계적인 AI 목소리를 상상하던 우리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함께 걷던 연남동에 우리의 웃음소리로 흩날렸다.
그날로부터 몇 개월 뒤 연과 광의 결혼식이 다가왔다. 연과 광이 사준 옷을 입고 헤어샵까지 들러 머리를 했다. 나의 몫이 된 축사를 울지 않고 아주 잘 해내고 싶었다. 연과 광을 바라보자 둘의 눈빛에 스민 다정함이 나를 안도하게 했다. 덕분에 ‘죠스’ BGM을 틀지도 AI를 출동시키지도 않았지만 긴장해서 빨라진 리딩 속도, 그럼에도 떨어지진 않고 글썽거리던 눈물만 있었을 뿐 무사히 축사를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럴 수 있게 되기까지 수십 번의 이미지 트레이닝을 거쳤다. 절대 울지마. 연과 광을 돌로 생각하자. 아니, 차라리 모르는 사람이라 생각할까? 그렇게 여러 번 연습했음에도 연과 광의 눈을 보자마자 그렁그렁 눈물이 차오르는 건 막을 수 없었다. 그래도 중도 포기 안 한 게 어디야. 몇 년 전, ‘희’의 결혼식에선 눈물이 줄줄 흐르는 걸 막을 수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했냐면···.
“희야. 처음 우리가 친해졌을 때가 기억난다. 그때 우린···.” 첫 줄 읽었을 뿐인데, 벌써 목소리는 달달 떨리기 시작했고 나는 예감했다. 아, 이 이상으로 축사를 이어 나가면, 정말 결혼식을 망칠지도 몰라. 이런 상황을 대비해 다른 친구에게 눈으로 SOS를 요청하면 대신 앞으로 나와 읽어주기로 약속했던 게 떠올랐다.
결국 나는 위급 시 축사를 대신 읽어주기로 한 친구를 간절한 눈으로 쳐다봤다. 친구는 한숨을 폭-쉬면서도 앞으로 뚜벅 걸어 나왔다. 마이크에 내가 남긴 말이란, “흐윽. 죄송합니다. 다음 축사는 다른 친구가 마저 읽겠습니다” 단상 아래로 내려오는 그 짧은 시간이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 늘어난 테이프처럼 마음도 죽죽, 너덜거린 채 하객석에 앉았던 게 생각난다.
이 모든 우여곡절이 짐작되지만서도 앞으로 또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축사를 제안받으면 나는 끝내 알겠다는 답을 내놓고야 말 것이다.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조금 무른 나의 애정 탓이라 해두겠다. 서툴고, 어색하고, 목소리는 사정없이 떨리고, 때론 눈물로 더듬더듬 핀트가 어긋난 축사일지라도, 그 안에 담긴 애정을 알아줄 이들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라면 조금은 못난 모습의 나라도 언제든 근사해질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 글 : 다다 (인스타그램 @ddidawn)
⊙ 그림 : 서콩 (인스타그램 @se0c0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