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렁이의 하루 Ep. 8 <손목에 희미한 새벽을 새기고>
타투를 결심하게 된 건 어느 영상 속 가수 요조의 한 마디 때문이었다. “타투를 한 번 새기기 시작하니까 살이 노는 땅처럼 보인다? 빈 땅에 또 뭘 세울까, 그런 생각을 항상 하거든요.” 피부를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 없던 나의 눈이 번쩍 뜨인다. 나도 내 노는 땅에 의미 있는 그림 하나 새기고 싶어졌다. 그런 반짝이는 결심을 하고도, 실행 없이 몇 년이 지났다.
그사이 틈틈이 타투 도안을 찾아 헤매긴 했다. 갈팡질팡하느라 결정을 땅땅 내리진 못했어도, 나름의 기준은 생겨났다. 유행 타는 건 하지 말 것. 레터링이나 글자도 생애에 걸친 슬로건이 아닐 거라면 자제하기, 아주 간단히 원하는 이미지로 표현될 수 있는 걸 우선 찾아보자, 그리고 질리지 않을 것 (제일 중요!), 나름의 의미를 가질 것 (다음으로 중요!).
그러는 중에도 몇 년이 흘렀다. 토퍼에 누워 뒹굴뒹굴하던 어느 날, 친구 연과 강이 타투를 하러 간다기에 몸을 벌떡 일으켰다. 나도 드디어 할 때가 된 거야. 결심한 김에 어서 도안을 확정 짓고 실행에 옮겨야지. 친구 따라 타투샵 간다는 말은 옛말이 아니다. 그러니 오늘 내가 지은 말이다. 나의 마음을 평화롭게 해주는 것들로 새겨야겠다. 나무와 꽃이 좋겠어. 볼 때면 기분 좋아지니까. 꽃 한 번 꺾은 적 없던 나는, 손목 안쪽에 기다란 꽃 하나 엮을 생각에 신이 났다.
다음 날, 작업실이 있다는 역삼동에 갔다. 타투이스트 여러 명이 칸막이를 쳐 놓고 자기만의 작업공간을 꾸린 곳이었다. 곧 작업이 시작됐다. 뾰족한 기계가 손목에 닿기 시작하자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아플까 봐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간질간질 따끔따끔. 그런대로 견딜만했다. 힐끗 눈을 내리깔고 살에 새겨지는 검은색 그림을 들여다봤다. 어느새 작업은 끝나 있었다. 무늬가 새겨진 팔목에는 오돌토돌한 감각도 없었다. 눈을 감고 만지면 이곳에 뭔가가 새겨져 있다는 걸 모를 것도 같았다. 첫 타투의 경험은 아픈 것도 아니고, 신기한 것도 아니고 한 마디로 얼떨떨했다.
나에게 일어난 세밀한 변화를 매달고 집으로 향했다. 5분에 한 번씩 타투가 새겨진 자리를 손으로 쓸었다. 그러다 문득 두려움이 몰아쳤다. 팔찌도 목걸이도 답답해서 싫어하는 난데, 영원히 풀어지지 않는 액세서리를 찬 기분이었다. 이것을 당장 뜯어내고 싶다. 감당하지 못할 울적함에 휩쓸려 펴놓은 이부자리에 쓰러지듯 누웠다. 시름시름 앓다가 검색에 들어갔다. 그리하여 검색어는···. [타투 지우는 법] (ㅠㅠ)
타투를 할 때보다 배는 넘게 드는 가격과 표현 못 할 고통이 담긴 후기를 보며 휴대폰을 끄고 이마에 손을 얹었다. 우씨. 너무 섣불렀다. 훌쩍 비집고 나오는 눈물을 몰래 훔치고, 하루는 꼬박 우울한 마음으로 앓고만 있었다. 꼭 이렇게 결정하고 후회하는 일을 반복하는 내가 미웠다.
하지만 시간은 종종 약이니, 하루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일하느라 바빠서 타투를 새긴 사실은 점차 흐려졌다. 손목 안쪽이라 나에겐 잘 보이지도 않는다. 누군가가 “어? 타투하셨네요?” 물어보고 나서야 내 몸에 타투가 있다는 걸 인지하게 됐을 무렵엔, 울적함은 나에게 한톨도 남지 않았다. 그저 내 피부의 일부가 된 타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됐다. 그때 엄마가 문득, 나도 타투가 하고 싶다고 했다. 발목에 우리 세 모녀가 같은 모양의 타투를 새기자고. 그렇다면 어떤 도안이 좋을까, 또다시 기대가 엄마와 내 사이를 빙글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러고도 또, 몇 년이 지나갔다.
얼마 전엔 요조가 타투에 대해 말하는 영상을 다시 찾아보다, 내가 놓친 부분을 발견했다. 세상을 떠난 동생을 ‘잊지 않기 위해’ 타투를 한다는 말이었다. 그의 팔에는 동생의 별명과, 사진 찍는 걸 좋아하던 동생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러면서 그는 새긴 타투를 짚어가며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고, 그게 꿈이었다고 말한다. 타투로 나의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는 꿈과, 동생을 잊지 않기 위해 타투를 새긴다는 말이 오버랩된다. 모두가 굳건한 마음이다.
먼 훗날, 나의 몸에는 몇 개의 타투가 자리할까. 나도 그 타투를 하나씩 짚어가며 내가 지나온 어떤 시절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언젠가 나의 손목을 가리키며 이 타투는 무슨 의미냐고 묻던 이에게 내가 했던 말은 이러했다. 그저 모양이 마음에 들어 새긴 꽃의 이름이 ‘미스티 블루’였다고. 공교롭게도 나의 스물 시절을 장식하던 밴드의 이름도 ‘미스티 블루’였다. 그런 생각을 마주할 때면, 이 타투가 나의 몸에 새겨진 게 하나의 진부한 단어처럼 느껴진다. 운명처럼 느껴진다.
손목 위 검은색 선으로 그려진 꽃이 잠 못 들던 지난 나의 새벽과 닮아있다. 지난한 시간의 안개 속에서, 지우고 싶던 기억들이 희미하게 만져지는 것도 같다. 이제 나는 나의 왼쪽 손목을 만지며 푸른색 안개를 느낀다. 푸른색 시절을 느낀다.
⊙ 덜렁이의 하루 (인스타그램 @dadashour)
⊙ 글 : 다다 (인스타그램 @ddidawn)
⊙ 그림 : 서콩 (인스타그램 @se0c0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