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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 대여 자신감上

by 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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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학교로 전학을 갔던 4학년 2학기 쉬는 시간. 새로운 친구를 사귀지 못해 멍하니 앉아 있던 나에게 5학년 언니들이 들이닥쳤다. 그때의 내 심정은, 정말이지 들이닥쳤다는 말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다. 그 언니들이 무뢰배같이 4학년 교실로 온 까닭은 고작 “너 왜 째려봐?”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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째려보다니. 그 시절의 나는, 누군가를 째려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간은 콩알만 하고 툭 치면 눈물만 줄줄 흘리는 연약한 멘탈의 소유자였다. 그저 눈이 날카롭게 생겼을 뿐인데. 팔짱을 낀 5학년 언니들은 이제 막 나를 둘러싸고 톡톡, 나를 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나는 응수했다. 우아앙. 울어버리는 것으로.


뻔뻔했던 4명의 초5가 당황하기 시작했다.


“야아. 왜 울어...”

“그래, 우리가 뭘 했다구.”

“됐어. 야 가자 가자.”

“다...담부턴 째려보지 말구.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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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을 툭툭 치며 교실을 나가는데, 서러워서 눈물이 안 그쳤다. 속쌍꺼풀만 얇게 있는 눈이, 가만히 멍을 때리면 매섭게 느껴지는 걸까? 한 번도 나를 멍때리며 본 적 없던 나는 타인의 평가 앞에서, 마구 억울해진다. 오래 나를 겪어본 이들은 내가 얼마나 찌질하고, 나약하고, 유약한 마음을 가졌는지 아는데. 속속들이 아는데! 결국 난 전학 간 학교에서 적응을 하지 못하고, 원래 다니던 초등학교로 재전학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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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누가 나에게, ‘야 너 왜 째려봐’ 하고 시비를 건다면 ‘우아앙’ 우는 걸로 응수하지 않을 텐데. 나도 맞서, 꽥꽥 소리라도 칠 텐데. 그런 생각을 하지만 그래도 그 과정에서 상처 하나 받지 않을 자신이란 없다. 유약한 마음은 여전하다. 그래도 초면의 사람들에겐 들키고 싶진 않은 마음이다. 그래서 그런지 어떤 일이든 첫 시작에 앞서선 텐션을 끌어올리려 고군분투한다.


새롭고 낯선 환경 속 날카로운 타인의 말과 행동이, 나의 나약한 마음 하나 파고들지 못하도록, 나를 만만하게 보지 않도록 비트가 센 음악을 듣고 걸음은 한 발짝 한 발짝 꾹 힘주어 걷는다. 그럼 유약한 속내는 잠시간 구석에 몸을 말아 눕고, 쪽잠을 청한다. 그 기세를 이어 나의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늘 게슴츠레 뜨던 눈도 조금은 동그랗게 변한다. 그렇게 자신감을, 몇 시간 대여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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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날수록 자신감을 끌어내는 방법은, 진화를 거듭했다. 아침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한창 일할 땐, 뻔뻔한 용기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본 청취자 문자가 하나 있다. 8년간 전업 주부로 지내다 오늘 첫 출근을 한다며 운을 뗀 그는, 집을 나서기 전 긴장된 목소리로 남편에게 물었다.


“나 뭐 빠뜨린 건 없겠지?”


그러자 남편이 건넨 말은 이러했다.


“뭐든 빠뜨리면 어때. 자신감 하나만 챙기면 되지!”


그 말에, 긴장이 풀리면서 웃음이 터졌다는 이야기. 나는 이 문자를 참 좋아해, 메모장에 따로 기록까지 해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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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자신감 하나만 챙기면 되는 날이 어쩌다 하루는 아니었으니까. 한동안 연락이 끊겼지만 여전히 소중한 친구를 만나러 가는 날도 떨리는 입술을 감추지 못했고, 많은 사람이 모이는 모임 자리에 가야 하는 날도, 또 하다못해 매일의 출근 날에도 그랬다. 그리고 엄마와 이혼한 뒤 오래 보지 못했던 아빠를 보러 가야 했던 날도, 나에게 필요한 건 오로지 자신감이었다.


- 하편에서 이어집니다.


⊙ 글 : 다다 (인스타그램 @ddidawn)

⊙ 그림 : 서콩 (인스타그램 @se0c0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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