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질문했다.
요새 너를 제일 즐겁게 하는 일이 뭐야?
몇 초 고민하다
"달리기?!"라고 답했다.
의외로 쉽게 나온 나의 대답이 놀랍고 신기했다.
달리기가 나에게 이렇게 즐거운 일이 될 거라고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달리기를 싫어해서 못했고, 못했기에 더더욱 싫어한 어린이는 서른아홉이 된 지금 일주일에 두세 번은 꼭 달리기를 하는 '러너'가 되었다.
3년 전부터 스스로를 구하려고 시작한 달리기는 이제 일상이 되었고 요새는 달리기가 정말 즐겁다. 어린 시절의 나였다면 절대 상상하지 못했던 모습이다.
어제는 릴레이마라톤에 참여했다. 7명이 한 팀이 되어 각자 6킬로미터씩 달린다. 함께 42킬로미터 -마라톤의 거리를 채우는 방식이다. 기록을 위한 진지한 대회라기보다 팀마다 코스프레도 하고, 퍼포먼스도 하며 “즐겁게, 함께” 달리는 대회였다. 우연한 기회로 두 번째 주자의 자리를 맡은 나도 42킬로미터의 한 자리를 채우고 왔다. 팀원들은 기록 걱정 말고 재밌게 달리면 된다고 했지만, 출발선에서 첫 번째 주자를 기다리다 보니 왠지 긴장이 되었다. 운동회에서 신호탄을 기다릴 때 느꼈던 울렁거림이었다. 총소리 대신 첫 번째 주자에게 기록용 팔찌를 전달받아 달리기 시작했다.
1.5킬로미터의 코스를 4번 왕복하기!
코스 초반에는 주변의 응원 덕분에 평소보다 빨리 내달렸다.
응원석을 지나고 한적한 공원에 들어서자, 페이스 조절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숨을 깊게 쉬며 속도를 늦췄다. 평소 페이스를 찾았고 코스 곳곳의 스태프들이 파이팅을 외쳐주었다. 처음 달리는 길이었지만 그냥 눈앞의 길을 딛고 달려 나가면 되니까 어색할 것도, 긴장할 것도 없다.
나를 제치고 가는 사람이 많았다.
유명한 프로선수는 나를 두 번이나 제치고 달려갔다. 분명 아까도 나를 지나갔는데 그다음에도 나를 지나쳐갔다. 나를 제치는 뒷모습을 보고 좌절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들과 함께 달릴 수 있다니 기분이 좋았달까. 안정된 자세, 빠르지만 조급하지 않은 스텝, 잘 발달한 종아리 근육을 보며 나보다 오래, 잘 달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눈에 담는다.
나를 앞서가는 사람이 있다고 무리해서 내달리면 안 된다. 즐거운 달리기는 승리하는 달리기가 아니라 후회 없이 완주하는 달리기이기 때문이다. '저 사람처럼 멋진 모습이 돼야 해!' 하며 스스로를 다그치지도 않으려 한다. 지난번 보다 조금 더 잘 달리면 좋고, 혹시 지난번만큼 달리지 못해도 천천히 나아지면 되니 말이다. 우리가 하는 달리기는 어제부터 내일로 이어가는 아주 긴 달리기니까.
왜 달리기가 좋아졌냐는 친구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었다.
어느 순간부터 성장한다는 느낌을 잊고 살았는데,
조금씩 더 멀리 달리게 되고,
더 빨리 달리게 되니까
잊고 있던 성장의 감각을 다시 느끼게 되더라
항상 운동장 스탠드에 서서 나보다 잘 달리는 계주들의 이어달리기를 응원만 하던,
트랙 위에서 누군가의 응원을 받으며 달릴 일이 있을 거라 상상도 못 했던 내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먼 나이, 서른아홉이 되어 생애 첫 이어달리기를 하게 되다니 성장이란 정말 의외의 순간, 의외의 곳에서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삶의 많은 시간을 더 빨리 달리지 않으면 안 되고, 남보다 늦어지면 안 된다는 초조함 속에 살아왔지만
이제는 내 나름의 속도로 달리는 일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는 것도 꽤 기특하다.
내일도 즐겁게, 잘 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