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램램 Apr 18. 2022

등산을 해야겠어요

친구들 부모님의 취미를 물어보면 대부분 등산이다.  

물론 우리 부모님도 주말 아침이면 이것저것 챙겨 나갔다가 등산하고 돌아오시곤 했다.

반면에 나는 등산을 무지무지 싫어했다.

방 밖으로 나가는 걸 싫어하기도 했고,

결국 내려갈 길을 왜 고생 고생해서 올라가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됐다.

그래도 아주 가끔은 부모님이 등을 떠밀다시피 집 밖으로 밀어낼 때

죽어가는 얼굴을 하고 등산에 끌려가던 적이 몇 번 있다.

그때마다 내가 엄마에게 걸었던 조건이 하나 있었다.


"알았어! 간다고! 대신 올라가서 '거봐 올라오니까 좋지?'라고 절대 절대 말하지 마!!"


엄마 말이 맞지? 산에 오니 좋지? 같이 산에 가자!

라고 말하는 엄마의 의기양양한 표정에 응하고 싶지 않았던 청소년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흐느적 산에 올라가서 산 아래를 보고, 시원한 공기를 쐬면 확실히 기분이 좋긴 했다.

흐르던 땀도 차분히 식고, 가쁘던 숨도 천천히 내려앉고,

높은 곳에 올라 내가 있던 저 아래를 보면 새삼 세상이 넓었다.


그렇게 표정이 나아지는 걸 확인한 엄마는 약속을 깨고 말하곤 했다.


"거봐 올라오니까 좋잖아?"


왜 엄마는 또 약속을 지키지 않냐며 타박했지만,

막상 올라가면 좋았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엄마는 9년 전에 내가 부산으로 이사할 때에도 등산화를 하나 챙겨주었다.

하지만 9년 동안 그 등산화를 신은 건 딱 두 번.

하나는 부산에서 맞은 첫 1월 1일, 의욕이 넘쳐 홀로 동네 뒷산(이지만 꽤 높은 편)을 가면서 신었고

나머지 한 번은 올해 초, 부산에 놀러 온 친구가 등산을 가보자고 해서 신었다.

금정산 고당봉에 사는 귀여운 고먐미들

최근에 등산을 좋아하게 된 친구가 데리고 올라간 금정산은 정말 좋았다.

겨울인데도 여전히 산은 푸른 느낌이었다.

정상에 살고 있는 고양이들도 반가웠고,

정상석 옆에서 이런저런 포즈를 취해가며 사진도 찍었다.

예전이라면 저런 인증샷을 왜 찍냐고 생각했을 텐데.

새로산 등산화 개시!!!

그러고 나서 등산화를 새로 샀다.

9년 묵은 등산화는 거의 신지도 않았는데 여기저기 갈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새 등산화를 신고 지난주 장산에 올랐고,

어제는 친구들과 북악산에 올랐다.


부산과 서울을 넘나들며 산을 타게 되다니!

9년 동안 등산 한번 했는데! 올해 들어 벌써 세 번이나 등산을 하다니!

엄마에게 고백하듯 털어놓았더니


"나이 들면 산이 좋아진다니까? 너도 나이가 든 거야" 

 

라며 엄마도 동네 오름이나 올라가야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정말 나이가 들어서 등산이 좋아진 걸까?

하긴, 산에 가면 대부분 엄마 아빠 또래의 어르신들이 대부분이다.

다들 알록달록한 등산복을 챙겨 입으시고

아주 쾌적하고 훌륭한 스팟에서 무언가를 드시고 계시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2030 세대도 많이 등산을 즐기기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등산은 중장년 층이 제일 즐기기 좋은 취미인걸까?


내가 왜 산이 왜 좋아졌는지, 산을 왜 제법 잘 타게 되었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이제는, 오르니까 좋지? 라는 엄마의 말에

아 역시 좋네~라고 말할 수 있는 마음이 되었다.

북악산에서 본 서울

조만간 엄마와 등산을 해야겠다.

서울산도 부산 산도 열심히 오르내려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나머지 수영의 기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