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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수업은 화요일 저녁 7시 30분이었다. 가족들과 이른 저녁을 먹고 발레 수업에 입고 갈 옷을 신중히 골랐다. 사놓고 방치해 두었던 요가 레깅스에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펑퍼짐한 운동용 티셔츠를 입고 거울 앞에 서보았다. 가릴 부분은 다 가려주는 완벽한 선택이다.
학원 문을 어색하게 열고 들어가 원장님과 더욱 어색한 눈인사를 나누었다. 어찌나 쭈뼛거렸던지, 이 말이 절로 입 밖으로 나왔다.
‘내일 다시 와도 될까요?’
여섯 명 남짓의 다른 수강생들을 보는 순간 더욱 도망치고 싶어 졌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나중에야 모두 초보라는 걸 알았지만, 발레복을 한껏 갖춰 입은 그들이 내 눈에는 프로처럼 보였다.
수업 시작 전 옅은 분홍색 연습용 발레슈즈를 받았다. 두꺼운 천으로 만든 발목 양말 모양의 슈즈인데 바닥에는 미끄럼 방지로 가죽이 덧대어져 있다.
발레에 문외한인 나도 발레슈즈를 보자 발레리나 강수진의 맨 발이 떠올랐다. 혹독한 고문이라도 당한 듯 굳은살과 상처로 가득한 울퉁불퉁한 발. 비록 그 발로 서기 위해 앞 코 부분에 돼지비계까지 넣었다는 딱딱한 토슈즈는 아니지만 말끔한 새 발레 슈즈를 받아 든 그 순간, 내게도 발레라는 세계가 한 꺼풀 더해진 기분이었다.
첫 수업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엄청나게 땀을 흘렸다는 것 하나는 선명하다. 나는 평소에 땀을 잘 흘리지 않는 편이다. 여름이었지만 에어컨으로 실내는 시원했고 나는 통풍이 잘 되는 옷을 입고 있었는데도 땀이 온몸을 타고 줄줄 흘렀다. 누가 보면 찜질방에서 한 시간 있다 나온 사람처럼 얼굴은 시뻘겋고 옷은 땀으로 얼룩 덜룩 해졌다.
탈수가 올지도 모르니 다음 수업 때는 소금물을 준비해야 하나 생각할 정도였다.
발달된 근육이라고는 승모근 밖에 없는 내게 발레는 고강도 였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발레리나들에게 존경을 넘어 경외심 마저 들었다. 몸을 푸는 스트레칭에 복근 운동과 플랭크가 괜히 들어가 있는 게 아니었다. 무릎과 허벅지를 완전히 붙이고 두 발끝을 밖으로 향하게 서는 기본자세부터 내 다리는 부들부들 떨기만 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두 무릎이 붙지를 않는다. 발레에 필요하다는 속 근육, 다리 내측 근육이 모자란 탓일 것이다.
어느 운동이든 처음에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요청들이 있다. 필라테스에서 갈비뼈를 닫고 배는 등 쪽에 붙이며 날개뼈는 내리라는 말처럼 발레 또한 처음에는 자세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발레를 배우지 않았다면 죽을 때까지 몰랐을, 내 몸 한가운데의 활시위가 비로소 당겨졌다.
알라스콩, 드미 플리에, 그랑 플리에, 를르베 업!
선생님이 지팡이만 들었다면 영락없는 마법 주문이다. 목각 인형의 저주에 걸린 내 몸이 부드러운 구령에 서서히 깨어난다.
그 소리에 맞춰 시선과 등을 꼿꼿이 세우고 무릎을 바깥으로 힘겹게 열며 앉았다 일어난다.
발레리나처럼 가뿐하게 서는 마법은 일어나지 않는다.
홀로 무채색의 레깅스를 입고 뒤뚱거리는 한 마리의 오리에 가깝다.
그러나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새 하얀 백조 무리 사이에서 채 펴지지도 않는 무릎으로 퍼덕거린다. 숨 쉬기는 잊은 채 엄지 발가락까지 바들 바들 힘을 주며 자꾸만 곱등이처럼 굽어지는 등을 펼 때, 그들과 아주 잠깐은 섞였을 것이다.
학원 문을 나서며 유리문에 붙은 글귀를 본다.
‘예술은 당신이 일상을 벗어날 수 있는 모든 것이다’
그렇다. 발레는 체조가 아닌 예술이고 나는 잠시나마 일상을 잊었다. 그 여운을 간직이라도 하듯 집을 향해 아주 천천히 발걸음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