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프롬에게 보내는 일요일의 편지
TO. 에리히 프롬
작가님께,
일주일 동안, 매일 작가님께 편지를 쓰며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전하면 좋을지 고민하며 흥분과 기대로 하루를 시작했어요. 소풍을 기다리는 듯한 마음과 닮은 느낌이었어요. 꿈속에서라도 작가님과 함께 향긋한 차 한 잔을 마시며 대화하고 싶은 이 밤이네요.
어린 시절부터 말놀이를 좋아했고, 지금까지도 저만의 표현을 만들어 사용하곤 해요. 그중 하나는 '용두사미'를 '용두용미'로 바꾼 것인데요, 이 표현은 무언가를 시작할 때 불타오르지만 끝을 제대로 매듭지어야 한다는 의지를 담고 있어요. 이 단어를 통해 무언가를 시작할 때 더 신중하고 주의 깊게 다가가게 된 점이 있고 끝맺음도 정성껏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이번 편지도 용두용미의 정신을 담아서 쓰려고 노력할게요.
작가님의 책을 전부 읽었다고 생각했지만, 얼마 전 서점에서 처음 보는 작가님의 책을 발견하여 놀랐어요.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으로 시작하는 책이었습니다. 단 한 권만 남아 있어서, 곧바로 구입하고 읽었어요. 작가님의 생각들이 아홉 가지 주제로 잘 정리되어 있어서 읽는 동안 다시 한번 작가님의 뛰어난 글쓰기를 경험했어요.
이제, 그 책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요. 왜 우리에게 여전히 삶을 사랑할 가치가 있는지 말이에요. 어떤 어려움이 와도 이유를 제대로 알고 그 이유를 잊지 않는다면, 언젠가 극복하고 성취할 수 있다고 믿어요. 그래서 이 편지를 작가님께 보내면서 동시에, 이 글이 삶을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희망과 위로가 되길 바라요.
김상용 시인의 '남으로 창을 내겠소'라는 시가 있어요. 시의 화자는 자연 속에서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며 소박한 삶을 즐기는 태도를 보여줘요. 시 끝에서 화자는 왜 살아가느냐는 질문에 웃음으로 대답하며 시를 마칩니다. 이 시에서 전 작가님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어요.
저는 이 시를 읽으면서, 우리가 삶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장애물이 우리 자신과 주변의 기대라는 생각을 했어요.
"어떻게 얻은 명예, 학벌, 직업인데... 이것을 잃으면 못 살 것 같아. 몸도 마음도 최악이지만 유지해야만 해."
"좋은 인연을 만나서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려면 외모도 가꾸고 돈도 더 모아야 해."
"마음의 상처를 주는 배우자이지만 이혼은 안 돼. 결혼을 유지해야만 해."
"우리 아이에게 좋은 교육을 위해 부업도 해야 해."
"내가 아이에게 시간과 돈을 투자했으니, 그 아이는 나에게 효도해야 해."
"내가 낸 세금이 많으니, 국가는 반드시 이 정도는 해줘야 해."
"도시에서의 편리한 인프라를 포기할 수 없어. 나는 도시에서 살아야만 해."
"내 월급은 적으니, 다른 사람들이 나 대신 노력해야 해."
"나는 더 이상 할 일이 없어. 세상은 너무 힘들어. 나는 집에만 있어야 해."
"나는 이 역경에서 벗어날 수 없어. 이 일로 내 삶은 끝났어. 나는 생을 마감해야만 해..."
이러한 기대들은 사회나 교육으로부터 비롯될 수도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우리의 내면에서 기대를 우리의 생명력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태도일 거예요.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기대는 이뤄지더라도 새로운 기대를 불러일으키고, 이뤄지지 않으면 실망과 두려움, 분노를 일으킬 수 있어요. 더 심각하게는 이러한 기대가 너무 커지면 우리 자신을 압도하고 다른 사람에게까지 퍼져서 사회에 대한 비난, 혐오, 갈등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요. 우리는 자신과 주변의 기대를 모두 내려놓고 나서야 현실을 차분히 바라볼 수 있고, 현실은 이미 우리에게 나아갈 방향을 가리키고 있어요. 우리 자신의 생명은 기대 충족의 수단이 아닌 생명 그 자체가 목적이라는 사실을요.
이 깨달음을 통해 우리가 어떤 어려운 상황에 있더라도 삶을 사랑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믿어요. 삶을 사랑할 이유는 바로 우리가 숨 쉬고 있다는 사실 자체였던 거예요. 어떤 어려움에 처해도 우리가 숨을 쉴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이 자리에서 또 다른 선택을 하며 더 나아갈 희망이 남아 있다는 증거였어요.
그래서, 어떤 어려운 상황이든, 삶이 벼랑 끝에 몰린 듯 힘들고 우울하거나 절망적일 때, 모두에게 이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요. 우선, 모든 기대를 내려놓고 일단 살자고요. 자신의 생명력을 지키자고요. 나를 짓누르던 모든 기대를 떨쳐버리고, 일단 우리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하며 살고, 이후에 더 나아갈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자고요. 별자리에서 별 하나 사라지는 일이 생기면 더 이상 그 별자리가 그 전과 같지 않듯이 지금 당신을 대체할 존재는 어느 누구도 없으니까요. 오히려 내면의 기대와 외부의 불필요한 것들을 버려버리면서 그 자리에 고독, 성찰, 그리고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득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 편지를 작가님께 전할 수 있어서 감사하며, 작가님 역시 저와 동시대에 살아계셨고 글로써 영원하게 살아계심에 감사합니다. 작가님, 답장은 꿈속에서 받을게요. 언제든 놀러 오세요.
FROM. 삶을 사랑할 이유를 찾은 혜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