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프롬에게 보내는 토요일의 편지
TO. 에리히 프롬
작가님은 청년 시절 어떤 요일을 가장 좋아하셨나요? 저는 금요일을 제일 좋아해요. 주말 동안 온전히 제 자유의지로 이끌어갈 48시간이 다가온다는 사실이 절 설레게 하거든요. 이번 주말에는 독립 서점의 일일 책방 지기를 체험하는 스케줄이 있고, 그 후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인 '쇼생크 탈출'을 한 번 더 볼 생각이에요. 작가님의 작품과 더불어 제게 큰 영향을 준 영화였기에 꼭 소개드리고 싶어요. 그래서 이 편지에는 쇼생크 탈출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보려 합니다.
사실 이 영화의 원래 제목은 '쇼생크의 구원'이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흥행을 고려하여 제목이 의역된 채 상영되었다고 해요. 앤디라는 주인공이 쇼생크 감옥을 탈출한다는 의미에서 보면 쇼생크 탈출이라는 영화 이름이 더 직관적이긴 하지만, 이 영화를 여러 번 보고 나니 원제가 훨씬 더 잘 어울린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주인공이 탈옥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주변 인물들에게 희망과 내면적 변화를 이끌어 내거든요. 영화는 감옥이라는 어두운 환경에서도 구원과 변화가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달해 주고요.
20대 중반쯤에 만난 '분주함과 이룬 것을 착각하지 말라'는 작가님의 말씀에서 저는 큰 울림을 받았어요. 이 점에서 이 영화의 주인공은 자신을 위한 자유를 얻는 것뿐 아니라 주변을 위한 변화까지 제대로 이뤄내는 진정한 활동성을 지닌 인물이에요. 탈옥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동료들에게 선의도 아끼지 않고요.
사실 주인공 앤디는 누명을 쓰고 억울한 옥살이 중인 상태였어요. 때문에 폭력적이고 가혹한 감옥의 환경과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었는데도 끝까지 자신의 존엄함을 지키며 생의 의지를 지켜 주인공의 모습이 더 대단하게 다가왔어요. 저였다면 억울함이란 감정과 험난한 감옥살이의 삶 안에 갇혀서 헤어 나오기가 어려웠을 것 같은데 말이에요. 앤디를 통해 저는 제 일상 속에서 활동성을 지킬 수 있겠다는 강한 희망을 느꼈어요. 앤디로부터 감정과 상황을 탓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배운 덕분이에요.
앤디가 감옥 안에서 주변을 위해 했던 일 중 가장 인상 깊은 일 두 가지를 꼽는다면, 하나는 징계를 감수하고 감옥 안의 죄수들에게 멋진 클래식 음악을 틀어준 일이고 두 번째는 교도소 안에 도서관 사업을 들여와서 감옥 안에 책을 볼 수 있는 근사한 공간을 마련한 일이었어요. 이 두 장면을 통해서 앤디는 감옥 안의 죄수들에게 살아 있어서 살아가는 삶이 아닌 살고 싶어서 사는 삶을 선물해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생존뿐만 아니라 희망으로 가득한 삶 말이에요. 우리는 무언가 특별하고 강렬한 것이 우리를 살고 싶게 한다고 착각하지만 사실 아름다움을 느끼는 찰나의 순간이나 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얻는 작은 희망만으로도 살아갈 동기를 충분히 얻을 수 있다는 사실도 다시 한번 깨달았고요.
감옥 생활을 상상해 보면 긴장과 스트레스가 끊임없이 동반되는 환경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차가운 벽을 마주하게 되는 매 순간 형벌을 느끼도록 하고 죄책감을 자아내는 공간이기도 하고요. 이런 곳에서 앤디가 잠시 울려 퍼지도록 한 클래식 음악은 수감자들에게 강렬한 정서적 안정과 평온의 기억이 되었을 것이고, 도서관을 만든 앤디로 인해 수감자들은 감옥 생활을 단순히 형벌의 장소가 아니라, 참회 이후 새 삶을 살 새로운 기회의 장소로 여길 수 있었을 거예요. 작가님께서 사랑을 잘하기 위한 훈련으로 독서나 클래식 음악 감상 등을 추천하신 이유를 이 영화를 통해 오롯이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일단 음악감상이나 독서를 통해 우리는 정서적으로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이러한 몰입과 정신 집중 시간이 쌓일수록 우리의 삶을 충분히 사랑할 희망의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거든요.
이 영화 속에서 가장 마음이 아팠던 장면은 노년이 되어 석방된 브룩스란 죄수가 감옥 밖의 삶에 적응하지 못하고 불안해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장면이었어요. 두려움이 브룩스의 희망을 꺾었기 때문이에요. 반면에 앤디와 가깝게 지냈던 수감자인 레드 역시 브룩스와 같은 처지가 될 뻔했으나 앤디가 레드에게 뿌린 희망의 씨앗과 레드 안에서 깨어난 용기의 싹이 만나서 결국 레드는 자유를 얻는 데 성공해요. 마지막에 레드가 미지의 세계에 발을 디딘 끝에 바다에서 앤디를 만나 함께 자유를 찾은 장면에서 감동했고, 이때 희망과 사랑에 전염성이 있다는 작가님의 말씀이 생각났어요. 삶의 의미를 굳게 뿌리내린 사람은 주변의 약한 존재까지 자유의지가 굳건한 존재로 동승시킬 수 있다는 영화의 결말이 희망적이었어요.
작가님께 앤디가 레드에게 건넨 대사 중 '희망은 좋은 거죠. 그리고 좋은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라는 대사를 선물하고 싶어요. 제가 믿는 대사거든요. 그렇기에 전 모든 인간이 짐승으로 퇴보하지 않는 한 작가님께서 선물로 남겨주신 좋은 책들이 절대 잊히지 않을 것이라고 믿어요. 사랑과 희망이 서로의 삶에 깊이 파고들어 모든 이가 서로의 구원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내일은 마지막 편지로 찾아뵐게요. 감사합니다.
FROM. 희망을 믿는 혜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