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2B 브랜딩에서 얻은 교훈; 고객을 만족시키는 행위의 역설
'브랜딩'의 중요성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작은 조직에서도 좋은 브랜딩을 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앞선 기업들이 잘 갖춘 브랜드는 이제 막 시작하는 작은 조직에서 그렇게 탐날 수가 없다. 우리 주변에는 특정 상품 카테고리만 나열되어도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다양한 브랜드가 있다. 콜라와 코카콜라처럼, 냉동만두와 비비고처럼, 스마트폰과 애플, 혹은 삼성처럼. 거기서 더 나아가 인터넷 검색과 구글처럼, 모바일 메시지와 카카오톡처럼 특정 브랜드가 서술어처럼 활용되는 경우마저도 있다. 카카오톡 창업자였던, 김범수 의장이 어느 날 드라마에서 '카톡해-' 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처음 듣게 되었을 때, 느꼈을 감정을 떠올리면 나마저도 벅찬 마음을 숨길 수 없다.
이제 막 스타트업의 껍질을 벗어나고 있는 우리 조직 또한 예외는 아니다. 우리 조직 또한 우리의 '브랜드'를 어떻게 구축해 나갈 것인가 다양한 시도와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구글하면 검색이 떠오르는 것처럼 우리 또한 견고한 브랜드를 구축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B2B 서비스를 제공하는 우리 조직에게 코카콜라나, 애플 아이폰과 같은 견고한 브랜드를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 조직은 설문조사 솔루션을 B2B SaaS 형태로 제공하고 있다. B2C 혹은 O2O 서비스와 B2B 서비스의 차이점은, 대중을 상대로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스타벅스나 구글 등 알려진 브랜딩 사례를 벤치마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B2B 서비스에게 브랜딩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한다면 누구도 쉽게 '네, 중요하지 않아요.'라고 답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B2B SaaS의 브랜딩은 왜 일반 서비스의 브랜딩과 다를까? 그리고 이렇게 다른 영역에서 브랜딩을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까지 우리 조직이 겪었던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포켓서베이를 만들었던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포켓서베이는 이런 서비스예요:
· 기업 혹은 기관이 PC, 모바일, 카카오톡으로 설문조사를 발송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 수집된 결과를 다양한 형태로 확인하고 분석할 수 있는 인공지능 보고서를 제공합니다.
· SK, 롯데, CJ, GS 등 대기업과 각종 관공서, 시자체에서 포켓서베이를 통해서 고객 및 사내 조사를 수행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읽어볼 만합니다:
· B2B SaaS 서비스를 브랜딩 해야 하는 마케터
· 다양한 형태의 브랜딩을 공부하는 분
· 지옥 같은 B2B SaaS 필드 초기창업자 혹은 예비창업자
이제와 서야 생각해보는 것이지만, 한국 시장에서 B2B SaaS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 그리고 대기업과 기관에서 운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다는 것은 해서는 안 될 결정이었다. 어지간한 차별점을 갖고 있지 않는 이상, 한국 시장에서 B2B SaaS를 성공적으로 론치 하기는 쉽지 않다. 그 이유는 한국 IT 시장의 특징 때문이다.
SK C&C, LG CNS, 삼성 SDS…. 이들 회사의 공통점은 대기업들이 계열사들의 자체 소프트웨어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서 설립한 SI 계열사라는 것이다. 소상공인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아닌 이상, B2B SaaS의 매출을 크게 일으키는 주 고객층은 대기업인데, 그러한 주 고객층인 대기업이 이미 SI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다. 어지간한 서비스는 자체적으로 구현해서 사용한다는 의미이고, 다른 말로 어지간한 차별점을 갖지 못한다면 시장 경쟁력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또한 한국 시장은, 합리적인 비용으로 혹은 저렴한 비용으로 중소규모 솔루션을 구축하고 관리해주는 중견·중소 SI 업체를 찾기가 비교적 용이한 편이다. 실력이 있는 프리랜서 개발자들이 자체 솔루션을 구축해서 사업을 하는 것보다 외주 용역을 수행하는 것이 훨씬 수입성이 좋기 때문이기도 하다. 많은 초기 IT 스타트업이 사업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외주 용역 업무를 병행하고 있기도 하고.
한국 B2B 솔루션 생태계는 대기업 SI와 중소기업 SI, 그리고 프리랜서를 통해서 솔루션을 자체 구축하는 것이 익숙해져 있어서, 범용적인 서비스를 구축하여 SaaS로 제공하는 것이 녹록지 않은 시장이다.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기능으로 구현하는데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어서, 범용적으로 제공되는 서비스임에도 불구하고 개별 기업의 편의 기능 개발을 요구하는 것이 무척이나 일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조직의 서비스 포켓서베이만해도, 대기업부터 개인 이용자까지 '이 기능이 필요하니까 만들어주세요.', '이런 기능은 언제 개발되죠?', '이 기능은 나한테 필요 없는데 빼주세요.'라는 의견을 전달받는다. 그럴 때마다 우리의 대답은 한결같다. '저희 서비스는 고객님만 이용하시는 서비스가 아니어서, 전체 서비스 경험에 영향을 주는 변경은 수행할 수가 없습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답변이지만, 이러한 답변을 낼 수 있기까지 꽤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큰 매출을 발생시켜주는 대기업의 요구 사항을 그저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B2B SaaS 서비스 기획자는 큰 클라이언트의 요구사항과 우리의 브랜딩과의 줄다리기를 정말 잘해야 한다.
2013년, 애플은 기존의 iOS6에서 iOS7를 업데이트하면서, 아주 실험적인 UI를 적용하였다. 기존의 올망졸망한 형태로 구성되어있던 스큐어모피즘(skeumorphism) 아이콘을 현세대의 단순하고 플랫한 아이콘으로 변경한 것이다.
당시 사람들의 반발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의 아이폰은 이렇지 않아!'라고 이야기하면서, 업데이트를 거부하는 사람이 속출할 정도로. 그럼에도 당시 애플은 자신들의 신규 아이콘 디자인에 대해서 강경한 태도를 취했었다. 그즈음 나는 취미로 아이폰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고 있었는데, 앱스토어 등록 과정에서 애플의 아이콘 디자인 가이드 문서를 받아보기도 했다. 애플은 자신들의 신규 아이콘 디자인에 대해서 강력한 디자인 가이드를 제안했는데, 디자인 가이드 문서를 따라 아이콘을 제작하지 않을 경우 앱스토어 심사 과정에서 등록이 반려되기도 할 정도였다.
불만이 터져 나오면, 의견을 수용해서 타협을 해볼 법도 했을 텐데 애플은 고집스럽게 플랫 아이콘을 유지했다. 유저들과 애플의 싸움에서 승자가 누구였는지, 우리는 모두가 답을 알고 있다. 과거 정겹게 느껴지던 스큐어모피즘 아이콘이 어색함을 넘어 조잡해 보인다는 의견이 나오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애플의 브랜딩에 충분히 익숙해진 것이 아닐까?
지난가을 즈음, 나는 우리 조직원들에게 이러한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스마트폰 브랜드를 고려할 때, 어느 쪽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나요?" 애플의 아이폰은 가격대도 높게 형성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애플이 일관적으로 고집부리며 적용한 UI에서 벗어나서 사용할 수 없지만, 샤오미의 휴대폰은 비교적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을뿐더러, 정말 다양한 UI를 취사선택해서 사용할 수 있는데요.
우리 조직의 서비스 포켓서베이에 대한 고객의 피드백을 생각하면, 누구나 샤오미를 선택할 것으로 보이지만, 스무 명 남짓의 우리 조직원 중 그 누구도 샤오미를 선택하지 않았다.
이러한 조건이 달렸음에도 애플을 선택한 조직원들에게 "왜 애플을 선택했나요?"라는 질문을 해보았다. 샤오미는 애플보다 더 저렴한데, 해달라는 데로 거의 다 해주는데도 불구하고요. 재미있게도, 우리 조직원들의 대답은 애플을 선택했던 것처럼 한결같았다. "애플의 브랜드가 더 좋잖아요."
사실 브랜딩에 대한 답은 정해져 있었다. 사용자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모두 수용하는 것과 모든 사용자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서 모두에게 맞춤형 경험을 제공하는 것은 브랜딩을 한다는 것과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브랜딩에 대해서 내리는 정의는 모두가 다르겠지만, 좋은 브랜딩에 대한 나의 정의는 이렇다:
일관적인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것
대한민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브랜드 중에는 스타벅스가 있다. 스타벅스 하면 어떤 것이 떠오르는가? 스타벅스의 사이렌 로고가 있는 초록색 간판, 두꺼운 고딕체로 작성되어 있는 STARBUCKS 간판, 다크 로스팅된 원두 등이 떠오를 것이다. 스타벅스를 연상했을 때, 그 누구도 녹색 간판이 아닌 빨간 간판을 더 올리지 않을 것이다. 바다의 요정 세이렌이 아닌 바다의 괴물 크라켄을 떠올리지도 않을 것이다. 이는 세계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공통적인 사실이다.
실제로 스타벅스는 다양한 국가에 현지 법인을 세워 현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즌 메뉴를 제외한 대부분의 메뉴는 동일한 형태에 제공하고 있다. 원두를 로스팅할 때, 다크 로스팅해서 오는 특유의 탄맛도 내가 겪은 모든 국가 스타벅스가 유사하게 제공하고 있었다.
스타벅스는 전 세계 모든 고객에게 고집스러울 정도로 일관된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자신들만의 견고한 브랜드를 구축하고 있다. 한국의 카페에서 유난히 잘 자리 잡은 서비스가 있다. 음료를 주문할 때, 손에 쥐어주는 진동벨이 그것인데, 진동벨이 확산된 이후 한국의 대형 카페는 물론이고 작은 카페에서도, 음료가 나왔다며 아메리카노 세 잔을 주문한 고객을 찾아 부르짖는 소리를 더 이상 듣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도 빨리 자체 앱을 확산시킨 스타벅스는 아직까지도 매장에 진동벨을 도입하고 있지 않다. 스타벅스의 파트너는 오늘도 음료가 준비되었다며, 매장 내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자신의 목소리로 정보를 전달한다. 진동벨을 도입할 예산이 없는 것도 아니고, 기술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것이 자신들의 문화이며 브랜딩이라는 판단에서 그렇게 한다는 인터뷰를 읽은 기억이 있다.
피자를 떠올릴 때 생각하는 이미지는 모두가 다를 것이다. 기름이 쏙 빠진 화덕 피자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토마토소스에 치즈 페퍼로니가 올라가 있는 피자보다, 온갖 채소가 올라간 샐러드 피자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피자라고하면, 도우에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피자헛의 피자를 떠올린다. 태어나서 처음 먹어 본 피자가 피자헛 피자였기에 피자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각인된 것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피자헛은 갓 나온 도우에서 기름이 좔좔 흐르는 팬피자를 먹을 수 있는 가게였다. 하지만, 2020년대인 지금 피자헛에서는 더 이상 기름 발라 구워낸 팬피자를 취급하지 않는다. 2000년대 초반, 미스터피자와 도미노피자가 선보인 기름기 없는 도우와 경쟁하기 위해서 피자헛 브랜드가 선보이던 팬피자를 변경한 탓이다. 그 이후, '건강'이라는 키워드가 대두되기 시작하면서 피자헛은 더더욱 건강한 도우를 만들기 위해서 애썼는데, 그 결과는 우리가 아는 것과 같다. 2020년대 현재, 과거 피자 업계 TOP Tier 중에서 지속 성장하고 있는 브랜드는 도미노피자뿐이다.
피자 브랜드를 떠올려보자. 도미노피자의 다양한 신제품 라인과 스테디 라인, 미스터피자가 추구한 건강함은 쉽게 떠올릴 수 있으나, 현재 피자헛의 브랜드 정체성은 모호하다. 피자헛 매출이 감소하던 2010년대 초반부터 피자헛은 많은 선택을 해왔다. '건강함'을 강조하고자, 쌀 도우를 사용하기도 했고, '이제 피자헛은 잊고, 파스타헛이라고 불러주세요.'라는 콘셉트로 일부 점포의 간판을 바꾸어 달기도 했다. 피자헛의 브랜드 정체성이 모호해지면 모호해질수록, 시장의 평가는 냉정했다. 역전되기 힘들 것처럼 보이던 점유율이 2010년대 초반부터 역전되기 시작한 것이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견고한 브랜드를 만들어온 도미노피자와 시장의 요구에 따라 본연의 브랜드를 잃고 다양한 브랜딩을 시도했던 피자헛의 사례 비교는 사용자 의견을 모두 수용하는 브랜딩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피자 브랜드 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유지하던 피자헛은, 2020년대인 현재 직영점으로 운영하던 점포들을 모두 가맹점으로 전환하는 중이다. 이러한 수순을 밟은 프랜차이즈의 운명이 어떠한 형태로 되는지 우리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서 잘 알고 있다. 잘되는 프랜차이즈는 가맹점 권한을 회수하여 직영으로 돌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국 스타벅스에 가맹점이 있는가 생각해보자.
다시 우리 서비스 포켓서베이로 돌아와, 우리가 시도했던 브랜딩을 이야기해보자.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면, 우리 서비스는 B2B SaaS 형태로 제공되는 서비스다. B2B SaaS지만, 조사에 대한 수요는 다양한 편이라서, 대기업뿐만 아니라, 소규모 고객 또한 종종 우리 서비스를 찾기도 한다.
한 때 우리 조직은 대기업뿐만 아니라, 모든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던 시기가 있다. 우리 서비스의 한계 밖에서 고객이 요구하면, 그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서 기꺼이 추가 공수를 투입하였고, 이용료가 비싸다고 하면 기꺼이 이용료를 할인해주었다. 우리의 브랜드를 구축하기 위함이었다. 당시 우리가 추구하던 브랜드의 이미지는 사용자에게 만족도를 주는 서비스였다.
스타벅스와 피자헛의 사례는 인지하고 있었으나, 우리가 속한 B2B 서비스의 특징상 모든 고객의 요구 사항이 다를 수 있다고 인지하고 있었고, 객단가가 B2C와 차별되기에 B2B의 브랜딩은 다른 방법과 전략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우리 조직에 공유되고 있었던 시기다.
이러한 브랜딩 방법과 전략은 결국, 고객 경험 파편화 현상을 불러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제를 야기시켰다.
우리 서비스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져 만족도가 떨어지는 고객에게는, 이해도를 높이기보다는 우리가 프로세스의 일부를 대행하는 형태로 서비스를 제공하였다. 우리 서비스에 대해서 추가 요구가 있는 고객에게는 시스템의 한계로 제공하지 못하는 서비스를 인력 베이스로 제공하였다. 그 결과는 끔찍하게 다가왔다.
이해도가 떨어져서 만족도가 좋지 않았던 고객은, 모든 서비스를 대행하여 제공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생각했던 결과'와 우리가 제공한 결과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만을 제기했다. 대기업의 이름하에 온갖 추가 요구사항을 요구했던 고객사는 점점 요구 수준이 높아지더니, 어느 순간에는 '우리가 왜 이런 일까지 해주어야 하는가?' 싶은 수준의 개인 업무 대행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형태로 서비스를 요구한 대부분의 고객은 끝내 불만족했지만, 만족한 경우가 더 큰 문제였다. 또 다른 유사한 고객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만약, 글을 읽으시는 분이 운이 좋아서 원래 1인당 130,000원에 이용할 수 있는 호텔 뷔페를 1인당 5,000원에 이용했다고 생각해보자. 그리고 그 사실을 친구 혹은 동료들에게 이야기할 때, 어떤 형태로 전달하게 될까?
"나 지난 주말에 OO호텔 뷔페에서 밥 먹었는데, 퀄리티 진짜 좋더라."
"나 지난 주말에 OO호텔 뷔페 5,000원에 먹었다?"
아마도 후자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친구나 동료들은 OO호텔 뷔페의 식사가 얼마나 훌륭한가에 대해서 궁금해하기보다는, 어떠한 방법으로 그러한 혜택으로 방문할 수 있을지를 더 궁금해할 것이다. 어떠한 서비스에서 편익을 취한 고객은 서비스의 품질을 논하지 않는다. 편익에 대해서 논한다.
2010년은 그루폰의 해였다. 음식점, 공연, 스파 등 이용권을 파격적으로 할인한 가격에 판매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당해 구글은 60억 달러(약 7조 원)에 그루폰을 인수하겠다고 제안하였으나, 그루폰은 그 딜을 거절했다. 시장의 반응을 미루어 보았을 때, 폭발적인 성장이 기대되었기 때문이다.
그루폰의 성공은 한국 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지만, 티켓몬스터와 쿠팡은 2011년 그루폰 모델을 한국에 그대로 들여온 서비스였다. 티켓몬스터와 쿠팡은 각 지역의 특가 제품을 구입해서, 저렴한 비용에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한국의 그루폰을 꿈꾸던 티켓몬스터와 쿠팡은 20201년 현재, 기존 지마켓, 옥션과 동일한 형태의 온라인 상품몰이 되었다. 그루폰의 시가 총액은 2011년 대비 1/10 수준으로 내려왔다. 구글의 60억 달러 인수 제안은, 그루폰에게 있어서 마지막 기회였다.
그루폰 비즈니스 모델의 실패가 시사하는 점은 명확하다. 그루폰을 통해 상점을 방문한 사람은 상점이 제공하는 브랜드 가치가 아닌, 자신의 편익을 추구했다. 그루폰을 통해서 구두쇠를 유인하는 데 성공했을지는 몰라도, 본인들의 브랜드를 알리는 데에 적합한 모델이 아니었기에, 그루폰 비즈니스 모델의 주요 이해관계자인 상인들에게 점점 매력도를 잃어갔다.
상인들은 자신들의 브랜드를 알리고자 그루폰, 쿠팡, 티켓몬스터와 가맹을 체결했지, 구두쇠들에게 손해 보며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가맹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루폰을 통해서 서비스를 제공한 업체가 아무리 융숭하게 고객을 대접해도, 그 융숭한 대접을 '편익'한 고객은, 융숭함에 대해서 논하지 않는다. 바이럴 되는 포커스가 상품이나 서비스의 퀄리티가 아닌, '편익'한 방법으로 옮겨갔기에 상인 입장에서 좋은 브랜딩 방법은 아니었던 것이다.
서비스 이용 경험이 좋은 고객이 주변인에게 서비스를 소개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대기업에 종사하는 담당자가 같은 기업의 다른 부서 담당자, 혹은 다른 계열사의 동일 업무 담당자를 소개해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관공서에서 근무하는 주무관이, 다른 지역 관공서에서 근무하는 동료 주무관에게 서비스를 소개해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의 "잘못된 브랜딩 전략: 모든 고객을 만족시키자"는 결국 다양한 문제점을 야기시키며, 폐기되었다. 우리가 퍼주는 형태로 서비스를 제공한 고객은, 또 다른 퍼줘야 하는 서비스를 요구하는 고객을 불러왔다. 우리가 바닥부터 다 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 고객은, 또 다른 아무것도 모르는 고객을 불러왔다. 이러한 고객들은 기존에 자신들이 취하던 편익을 더 이상 제공하지 못한다는 회사의 변경된 입장을 밝히자마자, 모두 서비스 이용을 중단했다. 그 과정에서 '지난번에는 다 해줬는데, 지금은 왜 그래요?'라는 불만사항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저희가 O만 원에 당신의 보고서를 계속 작성해드릴 수는 없잖아요...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배운 것:
우리는 초기 운이 좋아서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이 또 다른 고객을 추천해주는 경험을 자주 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모든 고객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하는 브랜딩을 하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앞서 쿠팡과 티켓몬스터의 예시처럼, 편익을 취한 고객은 편익을 취하고자 하는 고객을 불러온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리고, 대기업 계열사 담당자는 또 다른 대기업 계열사 담당자를 불러온다는, 관공서 공무원은 또 다른 관공서 공무원을 불러온다는 기본적이고 합리적인 추론을 망각했다. 이해도가 떨어지는 작은 기업 고객을 담당자 한 명이 온갖 공수를 투입하여 만족시켜도, 추가적인 사업적 기회를 얻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망각해서 업무 우선순위 설정을 할 수 없었다.
이러한 파편화된 사용자 경험은 우리가 어떤 브랜드를 만들어갈지 생각하는데, 굉장히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우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담당자별로 우리 서비스가 갖춰야 할 브랜드를 각기 다른 방향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 회의에서 우리 서비스에 대해서 정의하라고 했을 때, 겨우 스무명 남짓한 우리 조직원 그 누구도 상호 일치하는 의견을 내지 못했다. 우리 서비스의 제공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어느 정도까지 고객의 의견을 수용하는 것이 좋을지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B2B SaaS 형태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우리 조직은 오늘도, 아마 내일도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관철하고자 하는 담당자와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다. B2B SaaS를 기획하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담당자들의 요구 사항과 줄다리기를 잘해야 한다. 요구 사항을 너무 들어주면, 그 기업의 SI 업체가 될 것이고, 요구 사항을 전혀 들어주지 않는다면 견고한 브랜드는 갖출 수 있을지는 모르나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아무도 모르는 브랜드로 남아있어야 할 것이다.
어차피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서비스는 없다. 세상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다는 브랜드인 애플도 극도의 애플까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망각하곤 한다. 세상에서 가장 만족도가 높다는 자동차인 테슬라 역시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잊곤 한다. 우리 서비스가 애플보다도, 테슬라보다도 견고한 브랜드를 갖춘 회사인가?
어차피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면, 적어도 일관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한다면 독자적인 브랜드를 구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객의 의견을 수용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 수용된 의견을 통한 변화가 모두에게도 일관되게 제공되어야 한다. 만약 모두에게 일관되게 제공할 수 없다면, 그것은 결코 브랜딩을 위한 결정이 아니다. 지금 당장의 문제를 덮기위한, 혹은 지금 당장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결정에 가깝다. 우리 서비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의견이 우리가 생각하는 브랜드 가치관과 다르다면 쿨하게 넘길 수도 있어야 한다.
고집스럽게 고객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아, 대형 클라이언트 하나를 잃어버린 서비스 기획자가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