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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원 Apr 25. 2021

감정적 판단과 이성적 판단

당신의 기획이 더 객관적인 판단을 하기 위해서


어느 것이 나은지 사실 말할 필요도 없잖아요?


최근 우리가 자주 보는 MBTI (Myer-briggs) 성향 검사에서, 정보를 판단하는 성향을 Feeling(감정) 형과 Thinking(사고) 형으로 구분한다. 개인의 성향을 구분하는 데에 정보를 판단하는 성향이 감정적이냐, 사고적이냐는 우열 관계에 놓이지 않지만, 적어도 서비스의 기획 방향과, 조직의 방침을 결정함에 있어서는 사고적 판단, 즉 이성적 판단이 절대 우위에 있다.


사용자 경험을 기획하는 기획자의 결정은 '이성적인 판단'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라도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최근 UX 디자이너 혹은 PM의 업무 역할에 대해서 많은 논의가 대두되며, 사용자 경험을 이성적으로 기획하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지 정답에 가까운 의견도 많이 소개되고 있다. ①철저하게 리서치할 것, ②사용자의 의견을 들을 것, ③데이터에 의거하여 판단할 것. 이러한 문구들은 오해의 여지가 크게 없어 보이지만, 업무를 수행하다 보면 이러한 과정을 모두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감정적 판단'을 내릴 때가 있다.


기획 업무를 수행하면서 아래 질문에 모두 "예"라고 대답하지 못한다면, 어떠한 판단을 내릴 때 감정적으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의심해보아야 한다.


·UT(유저테스트) 등 방법으로 고객에게 의견을 들으면 관련된 데이터를 모두 확인해봐야 한다.
· 사용자 리서치(정성 조사)를 통해서 얻은 의견이 한 사람의 의견인지 아니면 대부분 주요 고객에게 동일할 것인지 의심해야 한다.
· 내 기획이 적용되었을 때, 사용성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서 어떤 데이터를 확인하면 될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 내 기획이 적용되었을 때, 어느 사용자에게 어떻게 영향을 줄지 임팩트 레벨을 산출하고 있다.




사용자 의견을 수용했다는 것이 이성적으로 판단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 조직은 조직의 서비스 '포켓서베이' 서비스의 발전을 위해서 가능한 모든 경로를 통해서 고객의 의견(VoC)을 취득하고 있다. 고객의 의견을 서비스 개편에 적극 반영하기 위함인데, 잘못된 고객의 의견 취득으로 인한 사용자 경험 개선 작업이 오히려 서비스 사용성을 저하시켰던 부끄러운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가 제공하는 '포켓서베이' 서비스는 카카오톡 챗봇을 통해서 설문조사를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기존에 우리와 유사한 서비스 경험을 그 누구도 제공하지 않았기에, 우리는 '챗봇 설문조사' 서비스의 기준을 만들어 제공해야 한다는 막중한 무게를 느끼고 있다.


이 문구가 이상한 것 같지 않아요?


VoC 채널을 통해서 고객이 의견을 남긴 것은 이 부분이었다. 설문지 제작 화면에 보이는 문구의 내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의견을 제공한 것이다. '저는 이런 문구가 안 나왔으면 좋겠어요.'라는 고객의 의견을 세 번째쯤 들었을 때, 우리 운영 조직은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했다. 서비스 기획을 총괄하고 있는 나의 의견을 구하지 않은 채, 개발 조직에 요청하여 이 문구를 변경하고 서비스에 반영한 것이다. 변경한 문구는 다음과 같다. 


변경 전: 의견을 직접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챗봇에게 메시지 보내기'를 눌러서 답변을 입력해주세요.
변경 후: 의견을 직접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붉은색으로 쳐진 문구가 모든 문제의 시작이었다.


우리 조직이 제공하는 포켓서베이 서비스의 설문 설계 화면을 보는 고객은 기업 고객이다. 슬픈 사실은, 설문을 설계한 기업 고객은 실제 설문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이 비극이었다.


나는 내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이러한 서비스의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으나, 그 변화의 결과는 조용하고 확실하게 서비스에 기록되고 있었다. 기존 30% 이상 고객이 응답하였던 주관식 응답지의 응답률이 급락하여, 10%대로 주저앉았고, 응답을 필수로 받는 주관식 응답지에서 이탈률이 급격하게 상승한 것이다. 아래 그림을 보면 왜 이탈이 일어났는지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엔드 유저(설문 참여자)가 마주해야 했던 환경. '챗봇에게 메시지 보내기를 눌러서'는 엔드 유저에게 꼭 필요한 문구였다.


세 명의 사용자가 불만을 제기했던 '챗봇에게 메시지 보내기'라는 내용은 웹페이지에서는 무슨 의미인지 명확하지 않다. 그래서 변경을 요청했다. 그런데, 서비스를 처음 이용해 보는 엔드 유저 입장에서는 '의견을 직접 입력할 수 있다.'라는 문구가 오히려 명확한 가이드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챗봇에게 메시지 보내기 영역을 누르면, 의견을 직접 입력할 수 있다'는 문구는 최종 사용자를 위한 문구였지, 설문을 설계하는 사람을 위한 문구가 아니었다. 그런데, 설문을 설계하는 사람의 의견으로 최종 사용자를 위한 문구가 변경되어버린 것이다.


서비스 기획을 총괄하는 내 의견을 확인하지 않고 변화를 만든 것에 대해서, 우리 조직원은 '사용자의 의견'을 통해서 문제를 인식하고 변경을 결정했다고 하지만, 이는 이성적인 판단은 아니다. 이러한 결정을 한 우리 조직원은 나에게 불만을 제기한 고객 담당자의 '불편하다'라는 의견에 감정적으로 공감한 것이지, 실제 엔드 유저(설문 참여자)의 사용 패턴에 대해서 확인하거나,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 A/B Test를 거치거나, 실제 데이터를 확인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만약 우리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이 조용조용히 불편하다고 이야기를 했거나, 매출 비중이 작았다면 이러한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조직원 개인이 '이러한 변경은 불가능합니다.'라고  일관된 태도를 보이다가, 주요 매출원이 사라질 것 같은 두려움과 고객의 고압적인 태도가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도록 만든 것이다. 이 상황을 어서 해결하고 싶은 욕구가, '고객의 의견을 통해서 서비스를 변경했다는 행위'를 이성적인 판단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우리의 결정은 환경에 지배받는다


만약에 길이 10m, 폭 50cm 선반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선반을 바닥에 놓고 균형을 잡아 건너가라고 하면 남녀노소 누구나 문제없이 건너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이러한 선반이 높이 100m의 절벽 사이에 놓여있다고 가정한다면 어떨까? 누구나 쉽게 건널 수 있던 선반은, 이제 누구도 쉽게 건널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바뀐 환경 때문이라고 생각이 든다면, 추가로 가정을 더 해보자. 선반은 절대 휘거나 부러지지 않으며, 절벽을 건너는 동안 결코 바람은 불지 않는다. 선반을 건너는데 필요한 조건이 바닥에 선반이 놓여있을 때와 완벽하게 일치한 상황을 만들어도, 아마도 선반을 쉽게 건너기는 어려울 것이다.


일반적으로 폭 50cm는 누구에게도 넓다고 생각하지만, 높이 100m나 되는 두 절벽 사이에 놓인다면 전혀 다르게 받아질 것이다


술에 만취한 것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폭이 50cm인 길이 10m 선반을 건너는데 실수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떨어지면 죽는다라는 의식이 심어지는 순간,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누구도 쉽게 할 수 없는 일로 탈바꿈된다. 재미있는 것은 사실, 선반을 건널 때 난이도를 결정짓는 요소는 폭과 길이뿐이라는 것이다.


선반을 건너는 난이도는 폭과 길이로 결정되지만, 환경에 따라서 판단이 갈린다.


사람의 모든 행동 판단 결정은 선택의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 위 사례에서 두 선반을 건널 때의 난이도는 운동학적으로 완벽하게 동일할 지어도, '떨어지면 죽는다'라는 생각 때문에 감정적인 반응을 일으켜, 행동 판단이 갈리게 된다. 정말 이성적인 판단을 한다면, '가능하다/불가능하다' 판단 여부로 실행에 옮길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것은 1980년대 심리학자 대니얼 카네먼이 발표한 프레이밍 효과(Framing Effect)에 의한 인지 왜곡 현상 때문이다. 우리가 큰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서비스를 기획하면서 데이터를 취합하는 과정에서, 동일하게 왜곡된 인지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서비스를 기획하면서 UT(유저 테스트) 혹은 IDI(인뎁스 인터뷰)를 통해서 서비스에 대해서 조사하곤 한다. 이렇게 사용자의 의견을 수집하고 수용하는 과정에서, 내가 상대의 '불편에 대해서 공감'하고 있는지, 아니면 '불편으로 인해 발생한 데이터에 의한 변화를 확인'하고 있는지 판단해봐야 할 것이다.


관련 데이터를 파악해야 감성이 아닌 이성으로 판단할 수 있다





의견 수용을 할 때만큼 우리는 소시오패스처럼 행동해야 한다


랜덤으로 아이템을 제공해주는 가챠 시스템 두 개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어느 한쪽은 임의의 다섯 개 아이템을 보여주었다가, 네 개를 제외한 나머지 한 개를 제공한다. 어느 한쪽은 단순히 하나의 아이템만 제공한다. 두 가챠 시스템은 수학적으로는 완전히 동일한 결과를 제공하지만, 단순히 하나의 결과만 제공하는 것보다는 여러 개 결과를 보여주고 하나만 제공하는 쪽의 구매율이 더 높게 나온다고 한다.


제공하는 결과는 하나이지만, 다른 결과였을지도 모를 아이템 네 개도 함께 보여준다.


도박을 홍보할 때, 10만 원을 받고 7만 원을 잃게 되는 것과 3만을 얻는 것, 양쪽 모두 수학적으로 완전히 동일한 결과를 가져오지만, 사람들의 선택은 다르게 나타난다. 조삼모사 같이 모든 데이터를 보지만, 인간인 우리는 데이터를 확인함에 있어서 프레이밍 효과(Framing Effect)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무의식에 우리는 조금 더 쉬운 결정, 조금 더 이득이 되는 것처럼 보이는 결정을 선호한다.


이처럼 우리는 어떠한 결정을 내릴 때, 모든 상황을 고려하여 합리적으로,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결정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많은 경우에서 감정의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의 영향을 받아 잘못된 결정을 하게 될 확률이 높다. 반면, 모든 상황에서 오로지 수치만으로 판단하는 사람 분류가 있다. '소시오패스'가 그것이다. 이들은 의사 결정을 할 때, 감정이 개입되는 정도가 일반인에 비해서 극히 적어, 현재 파악된 사실에만 근거를 둔 의사결정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소시오패스의 특성:

· 타인의 불편에 대한 공감 못하거나 하지 않음.
·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함.
· 뛰어난 감정조절 능력을 갖춤, 이익을 위해 싫어도 웃음.


많은 소시오패스의 특성 중,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이러한 특성은 기획자가 의견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관철되어야 하는 것이다. 기획자로서 우리는 사용자에 대한 무조건 공감하는 것이 아닌, 객관적인 데이터 확인을 통한 조직의 최대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 그리고 조직의 최대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사용자가 느끼는 불편함에 공감하는 것이 아닌 객체화하고, 해결을 위한 우선순위를 설정할 수 있어야 한다.




사용자 경험을 기획하는 우리는 '불편한 의견'을 수집했을 때, 이러한 의견이 '리서치의 결과'라고 판단하기 쉽다. '불편한 의견'을 수집했을 때, '불편한 의견(원인)으로 인해 초래된 결과(데이터)를 파악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리서치가 아니다. '공감'이다.


기획자로서 우리는 불편한 의견을 수집했다면, 그 불편한 의견(원인)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했을지 가설을 만들고 가설을 검증하기 위한 데이터를 확인해야 한다. 가설을 작성하고 데이터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조직이 생각하는 '정상적인 상황'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걸쳐서 판단하는 것이 '이성적'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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