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8개월에 접어들었을 무렵, 출산휴가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회사에 알려야 된다고 생각했다. 생전 처음 써보는 장기휴가인 출산휴가. 스물여섯 첫 회사에 입사한 이후, 일주일 이상을 쉬어본 적이 없던 나다. 출산휴가 3개월에 육아휴직 3개월을 쓰고 싶었던 나는, 생애 첫 장기휴가에 은근히 들뜨면서도 회사에는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괜한 죄책감이 들었기에 최대한 피해를 주지 않고 가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당장 출산휴가를 쓰는 절차 조차 몰랐다. 언뜻 듣기에 서류가 복잡하다고 하던데, 아는 것이 없으니 담당부서를 찾아가 문의해야 했다. 출산휴가 담당자는 인사팀의 A 차장이었다. 입사할 때 몇 차례 얼굴을 본 적이 있던 그를 찾아갔다.
"저, 제가 다음 달 초부터 출산휴가를 쓰려는데요. 출산휴가는 어떤 절차가 필요한가요?"
이 질문의 어떤 지점이 A차장의 심기를 건드린 것인지 아직도 나는 알 수가 없다. 그는 꽥 소리를 질렀고 나는 당황스러워 어쩔 줄 몰라했던 것이 그 다음 내 앞에 벌어진 일이다.
아니, 애도 아직 안 태어났는데 무슨 출산휴가를 말해요!
갑자기 버럭 거리며 짜증을 내는 A차장에 놀란 나는 바보처럼 웅얼거리다 그 공간을 무기력하게 벗어났다.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어쩔 줄 몰라하던 내 눈에 A차장의 책상에 놓인 가족사진이 들어왔다. 사진 속 A 차장은 참으로 다정한 아빠였으나, 나는 그날 밤 잠이 들 때까지 그의 행동을 곱씹고 곱씹느라 태동을 하는 뱃속 아이를 쓰다듬을 수조차 없었다.
출산 전에 출산휴가 절차를 문의한 것이 누군가의 고성을 견딜 만큼 모멸감을 느껴야 하는 일인가. 지금도 당시를 떠올리면 눈물이 맺힐 정도로 분하다. 나는 A차장의 가족사진 속 자녀들이 나중에 나와 같은 수모를 겪게 된다면 아버지로서 무슨 말을 해줄 것인지 그에게 물어보고 싶다.
트라우마처럼 남은 그 소동을 겪고 얼마 지나지 않아 출산휴가의 날짜가 임박했다. 휴가를 떠나는 내 앞으로 의기양양한 팀장과 본부장이 있었다. 단 한 번도 "힘들지 않니?"라는 질문조차 하지 않았던 그들, 아니 무심하기만 했다면 다행이지. 크고 작은 생채기들을 만든 장본인이었던 그들은 내게 엄청난 포상이라도 내리는 듯한 표정이었다.
'누가 보면 지들이 출산휴가 제도를 최초로 만든 거라고 알겠어.' 소심한 빈정거림을 속으로 되뇌며 집으로 온 나는 마침내 그들의 얼굴을 보지 않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였다.
그러나 당초 계획했던 6개월의 휴가는 3개월로 단축됐다. 내 사수가 해고를 당한 탓에 그 빈자리를 채워야 했던 나는 결국 육아휴직은 결재조차 올리지 못하고 복직해야 했다. 복직하던 날, 복귀 인사를 하러 간 내게 본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요즘 참 애 키우기 쉽지? 정치인들이 죄다 애 엄마한테 좋은 정책들 만들고 있더라...
그는 정말이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듯 했다. 그 어처구니 없는 천진난만함이 회사에 복귀하자마자 마주하게 된 첫 광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