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묵직한 변화를 받아들인 뒤에도 여전히 회사생활은 고난이었다. 난생처음 워라밸을 찾아가려는 시도를 하는 중이었지만,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맛을 안다고 워라밸이라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부터 의문스러웠다.
지난 7년 동안 일과 생활의 밸런스가 필요하다는 생각조차 못했던 나였다. 이십 대 첫 이직을 하면서 임원면접에서 이렇게 말해 그들을 만족시켰던 나다.
기자로 살면서 단 한 번도 남들처럼 살겠다는
마음을 먹은 적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제 남들처럼 살고 싶어 졌다. 일만큼 중요한 나의 또 다른 삶을 지키고 싶었다. 문제는 내 삶을 지키는 방법의 구체화에 대한 감이 전혀 없다는 점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소위 회사에서 잘 나간다는 선배들은 여전히 야근, 회식, 술자리를 반복하는 일상을 살고 있었다. 그 누구도 야근이나 퇴근 이후 업무적인 술자리를 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았지만, 실제 정시퇴근을 하고 회식은 가뭄에 콩 나듯 참석하는 선배들은 회사에서 존재감이 거의 없었다. 남들에게 뒤쳐지기는 싫은데 그렇다고 야근과 회식을 반복하고 싶지도 않다는 딜레마가 나를 괴롭혔다.
업무적으로 꼭 필요한 외부 사람들과의 미팅 자리는 모두 참석했지만, 사내 회식까지 챙기기는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사내 정치에서 나날이 취약해져 갔다. 아무리 용을 써도 그놈의 회식 친분을 뚫기가 어려웠다. 나보다 연차가 한참 낮은 후배들을 보더라도 업무적으로는 무능력한데 술자리만 열심히 참석하는 남자 직원의 사내 평판이 업무적으로는 유능하지만 술자리 참석을 기피하는 여자 직원보다 훨씬 좋았다.
'이래서 윗선에는 죄다 남자들만 남아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내가 기꺼이 모든 회식에 참여할 마음의 준비가 돼있었다 하더라도 워킹맘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에 가까우니 말이다.
실제 주변을 둘러보면 우리 회사뿐만 아니라 업계 전체에서 마흔 넘은 여자 선배들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비혼, 딩크, 혹은 아이 얼굴을 평일에는 거의 볼 수 없다는 선배들만이 그 몇 안 되는 비율을 빼곡 채우고 있었다.
그들에게 워라밸과 관련한 그 어떤 실마리도 찾을 수가 없었다. 특히 가정보다 일을 택한 선배에게 이런 고민을 말할 수조차 없었다. 외국계 기업을 다니다 퇴사를 앞둔 친구가 "남들은 외국계라고 하면 복지가 좋은 줄 알지만 우리도 아직 육아휴직 쓰는게 눈치보여. 작년에 누가 용감하게 육아휴직을 썼는데 가장 싫어했던 게 여자 선배들이었어. 결국 복귀하고 얼마 안돼서 그만뒀잖아"라고 한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마치 도시괴담처럼, 출산과 육아 문제로 배려를 전혀 받을 수 없었던 여자 선배들이 도리어 여자 후배들의 육아로 인한 공백을 가장 싫어한다는 이야기들이 종종 들려왔다.
사내 회식, 야근,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외부 미팅을 모두 감당해내는 선배들을 보면서 20대의 어린 후배들은 "정말 멋있어 보여요. 저도 나중에 결혼 하고나서도 저렇게 당당하게 일하고 싶어요"라고 말했지만, 내 눈에 그 선배들이 포기할 수 밖에 없는 것들이 자꾸만 보였다.
나는 저렇게 살고 싶지 않아. 저런 삶이 멋있어 보이지 않아.
결국 선배들을 깊게 들여다볼 수록 내가 쫓아야 할 롤모델이 없다는 사실만 깨닫게 됐다.
이게 참 뭐라고, 워라밸 좀 지켜보겠다는 게
무슨 신대륙 발견이라도 하는 느낌이잖아
글. Sophia B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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