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결혼 전이라고 해도 완벽하지는 않았다

by 유이배

서른둘. 그리 많지도 적지도 않은 나이에 결혼을 한 나다. 그즈음 대학 동기들의 절반은 결혼을 한 상태고 절반은 미혼이었다. 내가 적기에 결혼을 했다고 판단한 기준이었다.


내게 서른둘은 회사 생활 7년 차가 되던 해이기도 하다. 눈코뜰새 없이 일한 이십 대의 분투를 발판으로 업계에서 적당히 자리를 잡아가던 시기였다. 방송과 외고 등 기자가 할 수 있는 외부 일이 제법 많이 들어오던 때였기에 하루에 서너 시간 자며 일을 했다. 눈 뜨자마자 일하고 일하다 지쳐 잠드는 날들이 반복됐음에도 나는 내 삶이 뿌듯했다. 월급 이상의 외부 수입으로 경제적으로도 여유로웠고, 무엇보다 내 이름이 어느 정도 알려지기 시작하던 상황이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기자로서 내가 목표한 바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것 아닌가라며 은근한 자부심을 스스로에게 느끼기도 했다.


그 시절 나의 유일한 고민거리는, 미혼의 30대가 마치 중죄라도 되듯 떠들어대는 일부 무례한 이들을 대처하는 법이었다. 그들은 '결혼은 언제 할 거야?'란 질문이나 '네 나이엔 남친 꽉 잡아야 한다', '30대인데 그러고 있으면 인생 끝난다', '나이 마흔에 아직 시집 안 간 저 독한 선배 있지? 너도 그렇게 된다'라는 말들을 마치 내 인생에 엄청난 조언이라도 된다는 듯 떠들어댔다.



언제까지 그러고 살래? 연애는 안 하냐?

이 말은 나보다 두 살 많은 미혼의 남자 동기가 막 출근한 내게 대뜸 내뱉은 말이다. 미혼의 삼십 대 여성이라는 이유로, 출근하자마자 봉변을 맞아야 하는 이유는 대체 어디에 있는가. 커리어 면에서의 자신감이 누적되고 있었지만, 싱글이라는 이유로 여기저기서 치이는 삶의 피로감도 쌓여갔던 시기가 바로 나의 서른두 살이었다.


그 시기 만나던 남자 친구가 제주도 여행에서 "결혼해줄래?"라며 깜짝 프러포즈를 한 순간, 내 머릿속에 휙 지나간 생각은 '그 말도 안 되는 피로함'에서 마침내 벗어날 수 있다는 해방감이었다. 말 그대로 서프라이즈 이벤트였지만 그의 프러포즈에 냉큼 "Yes"라고 답할 수 있었던 것은, 그를 사랑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나 스스로 결혼을 하지 않고서는 삶이 불필요하게 피로해진다는 생각이 그즈음 확고했기 때문이었다.


내게 결혼은 미혼 여성을 향한 세상의 무례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였던 것이다.



난 일은 꼭 해야 돼.
나더러 일 그만두고 애보고 살림하란 말은 안 할 거지?
내 직업이 직업인만큼 일 때문에
가정에 소홀해질지도 몰라.
이해해줄 수 있어?


프러포즈 이후, 우리는 결혼 이후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더러 나누곤 했다. 아직 손에 잡히지 않는 기혼의 문턱에서 내가 그에게 바란 것은 '계속 일을 할 것이고, 결혼생활이 내 일에 방해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그 시절의 그토록 결연한 의지는 지금에 와 돌이켜보면 애처롭기까지 하다. 불과 2년도 안돼 사표를 당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못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순진할 밖이었던 것은 결혼 이후엔 오지라퍼들의 입을 막을 수 있을 테고 따라서 업무 외적인 일들이 나를 결코 방해할 수 없을 것이라 믿었다는 점이다.





글. Sophia B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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