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사표 당하고 말았던 그 겨울

by 유이배

마침내 내가 사표를 쓰겠다는 결심을 실행에 옮긴 날은, 번번이 "육아휴직이나 쓰라"고 말하던 C. 그가 내게 소리를 지르던 바로 그 날이었다.


C는 복직하던 그 해 마지막 조직개편에서 나와 새롭게 한 팀이 될 뻔한 인물이다. 각각 그전에 존재하던 팀의 리더였던 C와 나는 조직개편이 발표되기 전 자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 해에 대체 몇 번의 조직개편이 있었던 것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당시 회사는 뚜렷한 목표의식 없이 '무조건 적 수익화'에만 목을 매고 있었다. 조직개편을 할 때마다 우수수 사람들이 나갔고 그렇게 퇴사한 전임자들의 실책이 남은 이들의 책임이 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나는 복직 이후 수개월 째 수익화 사업의 실무 작업을 준비해왔다. 윗선의 기획에 맞춰 실무 준비를 하는 것이 내 업무였다. 그러나 결국 오너는 종적으로 그 사업을 철회시켰다. 투자금이 많이 든다는 이유에서다. 국 수익화를 기획했던 윗사람마저 퇴사를 하게 됐다. 이후에는 확실한 디렉션 없이 '위기입니다. 돈을 벌어오세요'라는 허무맹랑한 말만 매번 반복되었고, 바로 그 최악의 상황에서 만난 것이 B였다.


앞으로 어떤 사업 설계를 해야 할지를 의논해야 하는 미팅에서 C는 대뜸 "육아휴직이나 써요"라고 말했다. '아직 쓸 계획이 없다'라며 대충 응수했는데도 그 말은 매번 우리의 미팅 때마다 등장했고 나는 차츰 그가 무례하다고 느끼게 됐다.


40대 싱글 여성인 C에게
만약 내가 '결혼이나 해요'라고
했더라면, 그의 반응은 어땠을까


사단은 새로 꾸려지는 팀의 리더로 C가 최종 확정되면서였다. 회사는 나와 C를 두고 누가 리더가 될 것인지를 고심해왔다. 사업 기획에 대한 경험이 없었던 나는 리더 자리에 큰 욕심은 없었다. C 역시 사업 기획에는 경험이 없긴 마찬가지였지만, 은연 중 자꾸만 나를 무시하는 발언을 하기에 속으로 내심 '그래, 그렇게 잘 하면 네가 한번 해봐'라고 생각했고 나는 회사에도 그런 뜻을 알렸다.


문제는 C가 리더로 확정되자마자 돌변한 그의 태도였다. 그 전까지는 그래도 은근히 이뤄졌던 것들이 이제는 대놓고 시작됐다. 조직도가 조만간 발표가 된다는 인사 담당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는 내 일거수일투족에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아직 새로운 결재라인이 정해지지 않았기에 기존 결재라인대로 휴가를 올린 것도 그에게는 시빗거리였다. 후배에게 업무 처리 상황을 물어보는 것을 보고서는 득달같이 뛰어와서 '나한테 먼저 물어봤어야지. 어디서 함부로 행동하냐'며 언성을 높였다.


C가 새롭게 합쳐진 팀에서 자신의 리더십을 증명하기 위해 제일 선임인 나를 제압하는 전략을 택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육아휴직을 여러 차례 권유(?)한 것도 연차가 비슷한 나를 사전에 제거해보겠다는 심산이었다. 내게 대놓고 소리를 지르다가 "그렇다고 그만두란 말은 아냐"라며 이죽거리는 그 표정에 욕심이 이글거렸다.



더 버티고 싶지 않았다. 같은 여성에게서 '육아휴직이나 써라'는 따위의 말을 듣게 되는 이곳에서 더 이상 내가 얻을 것이 없었다. 어쩌면 회사라는 공간은 인간을 이토록이나 졸렬하게 만들고 말까.


그가 내게 언성을 높인 사건이 발생한 뒤, 속속 제보(?)가 들어왔다. 그는 남들에게 내 이야기를 할 때 '애 엄마'라는 점을 트집 잡았다고 한다. '워킹맘이라 저도 힘들겠지 뭐', '그래서 예민한가 보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한 증거들이 내 눈에 보이자 정말이지 회사 속 인간들이 지긋지긋해졌다.


대체 내 결혼이, 내 임신이, 내 육아가 당신들에게 끼친 피해가 무엇이길래 이렇게 번번이 나를 못살게 구느냐고 소리쳐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편으로는 그렇게까지 이 따위 조직에서 살아남고 싶어 하는 그가 안쓰럽기도 했다. 그러나 어쨌든 이 치사한 싸움에서의 승자는 C였다.


내겐 더 맞서 싸울 기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식물처럼 버틸 힘도 바닥이 났다. 나는 그 길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퇴사 사유로 '부당한 육아휴직 권유'라고 적는 것이 내 유일하고도 소심한 반항이었다.


달력을 보니 출산휴가에서 복귀하고 고작 10개월 버티고 회사를 나온 셈이었다. 분명 내가 쓴 사표였는데 싸움에서 결국은 지고 만 것만 같은 찜찜한 느낌이 한동안 내 주변에 머물렀다. 마치 패잔병처럼 터덜터덜 집으로 온 나는 '엄마가 이렇게 오래 집에 있을 수 있는 건가'란 표정의 아이를 어루만지는 것으로 나를 위로했다. 이제 갓 돌을 넘긴 아이는, 그때까지 낯설고 데면데면했던 엄마와 이제야 친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걸로 됐다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동안은 내가 하던 일과 관련된 그 어떤 것도 펼쳐 볼 수가 없었다. 동종 업계 사람들도 만기가 힘들었다. 한 때 더없이 빛나던 내 커리어는 그렇게도 허망하게 풀이 죽어버렸다.




글. Sophia B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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