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어디서부터 꼬여버린 것인지 모르겠다. 나의 회사 생활이.
다만 사회 초년생 시절, 나는 내 일을 무척 좋아했다. 낯을 많이 가리던 성격이었는데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의 차를 세워 태워달라고 부탁하며 취재원이 있는 장소를 찾아가는 뻔뻔함으로 돌변했던 것은 일을 시작한 지 1년도 안 된 때였다.
성격까지 바꾸는 열의로 일에 푹 빠져 살았던 20대 시절 대중문화를 취재하는 기자로서 나름의 사명을 둔 대목은 뒤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을 꺼내어 조명하는 것이었다. 연예부 기자라고 하면 다들 연예인 뒤나 캔다고 오해 하지만, 우리가 가장 자주 만나는 사람들은 연예인 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들이 하는 일을 캐내어 주목하고 싶었다.
때문에 영화 기자였을 때는 분장 감독부터 의상 감독까지, 다른 이들이 구태여 주목하지 않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했다. 방송사를 출입할 때도 PD는 물론이고 편집하느라 밤샘하는 조연출들만 쫓아 인터뷰한 적도 있다.
지금도 여전하지만 대중문화 쪽은 유독 과로가 많은 업계이다 보니, 나 역시 밤낮 가릴 새 없이 여기저기를 쏘다녀야 그들의 삶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내 개인의 삶은 물론이고 심지어 회사 사무실에 있는 시간도 그리 많지는 않았다. 그러다 보니 실은 회사 내부의 사정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무관심했다. 주니어 시절에는 그러한 점이 내가 하는 일에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그러나 기자도 결국은 회사원에 지나지 않아 연차가 7~8년 차가 돼보니 이야기가 달라졌다. 나는 일보다 관계에 더 신경을 써야 했다. 한 때 함께 현장을 누비던 선배들도 이제는 승진을 목전에 두고 있는 연차가 됐고, 사내 정치에 열과 성을 다 하기 시작했다. 사내 정치라는 것은 결국은 끝없는 눈치 싸움인지라 그가 보는 눈치들이 바로 아래 기수인 내게도 전염이 됐다. 그렇게 옮아온 눈칫밥 탓에 나는 어느새 사무실 책상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일하는 척을 하고 있는 꼴이 돼버렸다.
(타 부서 모 직원이)
네가 몇 시에 출근하고 몇 시에 퇴근하는지 까지도
다 달력에 써놓고 있대.
그러니까 웬만하면 사무실로 출근해서 책상에 앉아 있어.
다른 부서 선배들이 네가 인사를 잘 안 한다더라.
선배들 만나면 인사 꼬박꼬박 잘하고.
늘 외근 상태인 사수는 하루가 멀다 하고 내게 이런 조언과 지적을 남겼다. 그가 활발히 외근하기 위해서 나는 사무실에 콕 박혀 우리 팀이 일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다. 한두 달 이렇게 있으면 되지 않을까 했었는데, 어느새 내 역할이 '그저 책상 앞을 지키는 것' 정도가 돼버렸다.
속으로 여러 불만이 움트기 시작했지만 차마 티는 내지 못했다. 그러나 회사만 가면 숨이 턱 막히며 움츠러들기 시작했다. 마음을 고쳐먹고 인사라도 잘해보기 위해 복도를 지나가는 누군가들을 향해 고개를 돌리면 정작 그들이 눈길을 홱 돌리거나 땅만 바라보며 나를 외면했다. 그 상황에서 인사를 건네봐도 제대로 답해주는 이들도 없었다. 싸늘한 눈빛은 여전했다. -그러면서 인사 잘하라니.... 대체 이게 무슨 경우인가-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일은 하지도 못한 채 사무실에만 갇혀 있고 그 사무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나를 비난하는 것 같은 상황이 하루 이틀, 수개월 째 쌓여가고 있었다. 누군가들은 내게 충고했다. 늘 생글생글 웃으며 사람들을 대하라고. 인사를 받아주던 말던 큰 소리로 인사를 하라고. 네가 하는 일도 결국 네 윗사람들 좋자고 하는 것이니 그들의 비위를 거스르지 말라고.
일을 하기 위해 회사에 출근을 했는데, 내가 일을 어떻게 하는지 무엇을 하는지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간혹 프로젝트에 내 역할이 생기면 나는 또 열과 성을 다하며 뛰어들었지만, 그들은 내가 이뤄낸 성과에도 딱히 관심이 없었다. 그저 내게 부여된 역할은 싹싹하게 굴면서 최대한 눈에 띄지 않는 것(여기서 눈에 띄지 않는 것이란, 위에서 시키는 것만 적당히 하라는 뜻이다). 이런 그들의 보폭에 맞추지 못한 (무뚝뚝한데다 체질적으로 시키는 기사만 쓰지 못하는) 나는 어느새 밉상이 되었나 보다.
윗사람들의 눈치 보는 것에 급급하던 팀장이 어느 날 나를 불러 세워 "인사나 좀 잘하라"라고 말했을 때, 그 때라도 나는 깨달았어야 했다. 나의 역할은 그저 오가며 미소를 띤 채 인사 잘하는 것 정도였다는 것을. 그러나 그날 그 자리에서 조차 "제가 언제 다른 팀 남자후배들이 저한테 인사 안 하는 것 가지고 뭐라고 한 적 있나요? 출근시간도 달라 언제 오는 건지 알 수도 없는 타 팀 선배들한테 어떻게 일일이 인사하고 다니느냐"라고 대들었던 나였다. 실제 당시 회사에서는 유독 여기자에게만 '인사 잘 안한다'는 지적들이 거침없이 날아왔다. 반면, 남자 후배들은 그런 지적에서 자유로웠다. 같은 기자인데, 어째서 여기자에게만 인사성을 요구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팀 내부에서는 당시 팀장의 업무 능력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하고 있었다. 그는 언론사의 고질적인 병폐인 트래픽에만 몰두하고 있는 전형적인 데스크였다. 팀원들이 나름의 의미있는 기획을 해보려 해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남들이 하지 않는 섭외를 애써서 해냈을 때, 말도 안되는 이유로 -예컨대, 섭외한 톱스타의 소속사 임원이 본인의 (실제로 알게 된 지는 이제 막 두달 정도 된) 고등학교 선배라는 이유- 섭외 자체를 물거품으로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매번 후배들의 업무에 태클을 걸어온 그를 진정한 선배로 받아들이지 못한 나의 꼬장꼬장함도 순탄한 회사 생활의 장애물이었다는 점을 인정해야 겠다.
결국은 내가 고분고분 했어야 했다. 만약 '인사나 잘하라'는 핀잔을 들은 그날 역시도 '네, 앞으로 인사 잘하겠습니다'라고 하고, 오가다 마주친 누군지도 잘 모르는 타 팀 선배들이 인사를 받아주건 말건 이제 막 입사한 신입사원과도 같은 열정으로 씩씩하고 싹싹하게 인사를 했더라면, 그를 비롯한 회사 사람들이 내게 상처가 되는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일 따윈 없었을까.
회사에서 생활한다는 것이 유독 힘들었던 그 시절, 그들에 대한 불만으로 꽉 차 있는 한편 내내 나의 사회화가 덜 된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자책해야 했다. 일을 잘 해내면 괜찮아질 거라 생각하며 업무의 성과를 내는 것에 더 열중해보기도 했지만, 나아지는 것은 없었고 내 부족한 싹싹함만 갈수록 돋보일 뿐이었다. 그 와중에 출산휴가까지 다녀오고 나니, 내가 설 수 있는 자리는 더더욱 좁아졌다.
일은 뒷전으로 두더라도 싹싹하게 굴고 결혼과 임신으로 인한 공백까지 없었더라면 나는 지금도 그 회사를 다닐 수 있었을까.
그런데 그렇게까지 다녀야 하나. 그깟 회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