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사리 회사에서 '임신' 두 자를 공표한 것은 그러나 고작 시작이었을 뿐이었다. 임신 그 이후, 회사 생활의 난이도는 점점 더 올라가게 됐다.
일단 임신으로 인해 내 몸에 어떤 변화가 생기게 되는 것인지 기초지식이 없어도 너무 없던 나였다. 드라마에 나오는 헛구역질이 내가 아는 임신 증상의 전부였다. 몸의 변화에 대비를 할 수 없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출근길은 늘 빈혈이 있는 것처럼 어지러웠다. 나중에야 먹덧 증상인 걸 알고 가방 안에 간식거리를 준비하고 다녔지만, 초기에는 임신이랑 연결 짓지 못하고 감기몸살 기운이 있는 줄로만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근할 생각 없이 꾸역꾸역 출근 도장을 찍은 것은, 아파서 출근 못 하겠다는 말을 꺼내기 조심스러운 언론사의 타이트한 근로환경에 익숙해져 버린 탓이었다. 잠을 못 자는 날들이 반복되던 임신 중후기에는 조퇴도 몇 번 했었지만, 그때 역시도 출근이라도 하는 것이 회사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몇 안 되는 여자 선배들은 자신이 임신기 얼마나 열심히 일 했는지를 무용담처럼 이야기하곤 했다. 퇴근길에 진통이 와서 아이를 낳았다는 선배, 배 부른 채 여러 취재 일정을 소화하면서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는 선배, 임신한 자신의 앞에서 담배 연기를 뿜는 취재원마저도 소화했다는 선배....
그러니 고작(?) 몸이 좀 불편하다고 결근한다는 것은 결코 허용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회식 역시도 예외는 아니었다. "임산부도 회식을 가야 되나요?"라는 질문은 늘 입가에만 맴돌 뿐이었다. 회식이 2차 3차로 이어질 때 어느 순간 슬쩍 도망가는 것이 나의 유일한 '임신 유세'였으며, 그런 나를 구태여 찾지 않는 것이 선배들의 배려였다.
하지만 출혈이 반복되던 날까지 회식자리에 우두커니 앉아있을 수는 없었다.
"팀장, 죄송한데 요즘 유산기가 좀 있어 회식 참여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 말 한마디 하는 것조차 쉽지가 않았다. 하루 종일 그의 표정을 살피며 기회를 엿봐야 했다. 간신히 숨도 안 쉬고 내뱉었을 때 팀장은 "뭐라고? 야. 예약 다 한 건데 이제 와서 그러면 어떡해!"라며 짜증을 냈다.
참고 참다 불편함을 호소한 막다른 골목 같은 순간마저도 인간다운 예의와 배려를 상실한 이들을 마주한 순간이었다. 불행히도 그런 순간이 자주 반복되면서 나는 더더욱 주눅이 들었다.
"임신 축하해요. 예정일이 언제라고요?"라는 지극히 평범한 인사조차 받기 힘들었던 그 공간의 묵직한 공기는
아직도 내게 숨 막히는 잔상을 남기고 있다.
아 맞다. 그 팀장, 내가 아이 낳고 복직하던 날 점심 사준다며 데려가서는 "야 조심해. 뉴스에서 봤는데 어떤 부모가 애 데리고 양꼬치 식당에 가서는 도수가 높은 술이 떨어지면서 애가 불타 죽었다더라"라는 말을 했었지.
안 그래도 100일도 안된 애를 떼어놓고 눈물 꾸역꾸역 참으며 출근한 내게 저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고선 즐거워하는 팀장을 보며, 난 사이코패스라는 게 따로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