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에 퇴사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가장 먼저 한 것은 먹고 살 걱정이었다.
그때가 아마도 결혼한 지 3년쯤 됐으려나. 우리에겐 벌써 자라고 있는 아이가 하나, 뱃속에 또 다른 생명이 있었다. 단순히 먹고 살 걱정 외에도 이 아이들을 잘 기를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부모로서의 마음도 없을 리가.
나는 오매불망 소원하던 요가 티칭 자격증을 품에 안았지만 그 자격증은 내게 별 다른 것을 보장해주진 못했다.
그 시절 원했던 것은 오직 하나.
적어도 직장 다닐 때만큼은 벌어야 하지 않겠나라는 것.
남편도 밤잠을 줄여가며 회사 일 외에 조금씩 들어오는 일들에 시간을 쏟았지만 체력적으로 힘들어함이 눈에 보였고 회사를 그만두고 그 일에 시간을 더 할애한다고 한들, 과연 성공하리라는 확신이 없으니 우리는 늘 불안했다.
그런 우리를 바라보는 타인의 불안함이 얹혀지는 날에는 안 그래도 임신, 신생아 육아 등의 빅 이벤트까지 거치는 수년의 시간 동안 머리를 싸매고 앉아 다이어리만 열심히 후벼 파며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리스트를 정리하고 점검했다. 당시엔 내 불안함을 다독이는 유일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숱한 불안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기어코 회사를 그만둘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단전 어딘가에서는 '지금 새롭게 인생을 설계할 용기를 내는 것이 옳다'라는 믿음이 존재했다. '이대로 살아서는 안된다'라는 위기감도 있었다. 믿음과 위기감 사이, 골몰과 고심, 고민의 날들이 많았지만 확실한 것은 인생의 새로운 먹거리를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는 것. 지금이 아니라면 앞으로 더 힘들어질 것이라는 점.
여러 시행착오들이 있었지만 우선은 좋아하는 일들에 집중해 보았다. 나는 요가 자격증을 땄고 남편은 영상업을 파고들었다. 코로나가 시작되던 시기, 요가 티칭 일을 시작했던 나는 이미 1년 전부터 준비해오던 요가 유튜브 채널이 빛을 발했고 여기에는 남편의 촬영/편집 기술이 큰 몫을 했다. 10년의 기나긴 직장생활은 헛되지만은 않아 퇴사 이후에도 꽤 자주 이런저런 일들이 들어와 자리가 완전히 잡히기 전까지는 큰 도움이 되기도 했고, 원래부터도 글쓰기가 업이었던 지라 자연스레 차곡차곡 쌓아오던 그 시간의 콘텐츠들이 어느새 큰 자산이 되었다. 나는 1년 전부터 종종 인플루언서나 크리에이터로 불리게 됐다.
결정적으로, 올해 초부터 우연히 발을 들인 분야에서 꽤 큰 노동소득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비로소 경제적인 고민에서 해방되었다. 여기까지 오는데 5년이 걸렸다. 그 사이 아이 둘을 낳아 길렀으니 결코 여유로운 시간은 아니었다. 우리 둘만 아는 짠한 고생담들을 풀어놓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그래도 그 덕분에 부부 사이에 일종의 동지애 같은 것이 생겼다.
'뭐 하러 쓸데없이 애쓰면 사느냐'는 주변의 타박이 어느새 부러움으로 바뀌었고, 인생의 모양이 원하고 꿈꾸던 방향으로 흘러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즐거움이 커졌다. 프리랜서이기에 뒤따라오는 불안함은 여전히 당연하지만, 전보다 여유로워졌다 느끼는 순간은 원하는 일만을 할 수 있고 일 하면서 만나게 되는 무례한 이들을 쳐낼 수 있다는 혜택을 누리는 때다.
30대 직장인 부부가 월 매출 3000의 사업가가 된 이야기. 종종, 이 공간에서 그 이야기들을 풀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