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지키려는 뜻은 같았다
2002년 6월 29일 대구월드컵경기장에서 월드컵축구대회 3.4위전이 열렸다. 한국은 터키와의 이 경기에서 2:3으로 지면서 아쉽게 4위로 대회를 끝냈다. 엄청난 성적이었다. 이 경기에서 이을용 선수는 멋진 프리킥으로 첫 골을 터뜨렸는데 그 후 바로 터키의 트라브존스포르 팀으로 영입되어 터키에서 활약했다.
터키는 한국을 형제국으로 생각한다. 한국인들은 보통 터키를 그저 여러 나라 중 한 나라로 생각하지만 터키 국민들의 한국을 대하는 마음은 특별하다. 그도 그럴 것이 터키는 6.25 전쟁이 발발했을 때 미국에 이어 한국 참전을 결정했고 참전 16개국 중 네 번째로 많은 병력을 한국에 보냈다. 그때 터키 병사들이 흘린 피가 이 땅 곳곳에 스며들어 있을 것이다.
터키에 대한 명칭은 참으로 많은 변화를 겪었다. 옛날에는 돌궐이라 불렀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토이기라 했다. 토이기를 지나니 터-키, 터어키 등으로 불리다 터키로 굳어졌다. 토이기는 한자 土耳其를 한국 한자음으로 읽은 것이고 터키는 영어 Turkey를 한글로 적은 것이다.
그러나 터키에는 터키어가 있고 터키어로는 Türkiye라 한다. 발음도 '튀르키예'다. 터키사람들은 자존심이 강한 국민이고 세계인들이 자기 나라를 Turkey라 부르는 것에 반감을 갖고 있었다. 영어 보통명사 turkey는 음식 재료로 잘 쓰이는 새 이름이기도 하니 기분 좋을 리 없었을 것이다. 터키는 국제사회를 향해 Turkey라 하지 말고 Türkiye라 해달라고 요구했고 2022년 유엔이 이를 수용했다. 한국 정부도 이를 받아들였다. 우리 언론도 이를 따른다.
그러나 실로 오랜 기간 Turkey로 써온 영어권 매체들은 Türkiye로 바꾸기를 꺼려 한다. 이번 지진 대참사를 보도하는 BBC, CNN, New York Times 등이 모두 Turkey라 하지 Türkiye라 하지 않는다. Turkey에 익숙한 독자를 생각해서라도 Türkiye로 바꾸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Burma가 Myanmar로 바뀌는 데도 실로 오랜 세월이 걸렸으니 Turkey가 Türkiye로 바뀌는 것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런데 하나 의문이 있다. 명사 Turkey를 Türkiye로 바꾸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바꿀 수 있다. 바꾸면 그만이다. 그런데 Turkish regions, Turkish provinces, Turkish cities... 등처럼 형용사로 써야 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 그때도 Türkiye regions, Türkiye provinces, Türkiye cities라 해야 하나? 그때는 여전히 Turkish라 해야 할까. 그렇다면 명사는 Türkiye로, 형용사는 Turkish로? 궁금하다.
튀르키예는 세계에서 지진이 많이 발생하는 나라들 중 하나이다. 이웃인 이란도 그렇고 부근의 그리스, 이탈리아도 그렇다. 돌이켜 보면 튀르키예에서 일어난 지진은 튀르키예 전역에 골고루 퍼져 있다. 튀르키예 남부에서는 별로 지진이 없었다가 이번에 아주 큰 지진이 나버리고 말았다. 안전한 지대가 별로 없다는 얘기다.
멀고 먼 중동에서 6.25 때 무려 5천 명이나 파병한 튀르키예다. 배를 타고 긴 항해 끝에 부산항에 입항했을 것이다. 그들의 도움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튀르키예가 당시 한국에 파병을 결정한 것은 소련의 남하에 위협을 느껴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기를 갈망했으나 뜻이 이루어지지 않자 한국전에 참전하면 NATO 가입이 쉬워지지 않을까 해서였다는 해석이 있다. 자국의 안보를 위해 참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유를 지키려는 뜻은 똑같지 않은가. 동병상련이란 말이 딱 들어맞는다. 지금 튀르키예가 지진으로 신음하고 있다. 도움을 아끼지 말아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