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령이나 정관에 위반하거나'
기업구조조정투자회사법이라는 법이 있다. 약칭 구조조정회사법으로 2000년 10월 23일 제정된 법이다. 재무상태가 악화되었으나 회생가능성이 있는 기업의 경영을 정상화하기 위해 기업구조조정투자회사를 설립하고 이로써 기업구조조정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 이 법을 만들었다 한다. 그런데 이 법 제18조는 제정 때부터 이렇게 돼 있었고 지금도 이렇다.
'법령이나 정관에 위반하거나'가 눈길을 끈다. '위반하다'는 타동사로서 목적어를 취하는 동사다. 그 목적어에는 조사 '을/를'이 붙어야 한다. 그런데 '법령이나 정관에 위반하거나'라 했다. '법령이나 정관을 위반하거나'라 했어야 한다. 우리는 '규칙을 위반했다'고 하지 그 누구도 '규칙에 위반했다'라고 하지는 않지 않나. 그런데 왜 법조문은 이런가.
2000년 10월에 제정된 법에 이런 표현이 등장하는 것은 민법의 영향이 크다고 본다. 민법은 모든 법의 뿌리다. 1958년 2월에 제정된 민법에는 '~에 위반하다'와 같은 표현이 숱하게 나온다. 이는 일본어의 '~に反する'에 영향을 받은 바가 크다고 여겨진다. 일본 법에서 조사 'に'를 썼다고 무비판적으로 '에 위반하다'라고 하지 않았을까.
요즘 만들어지는 우리나라 법률에는 '~에 위반하다'가 보이지 않는다. 죄다 '~을/를 위반하다'라 한다. '~에 위반하다'가 국어 문법에 맞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왜 민법의 숱한 '~에 위반하다'를 바로잡지 않는지, 그리고 기업구조조정투자회사법 제18조도 그대로 두는지 모르겠다. 게을러서일까. 그런 것쯤은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해서일까. 말을 바로 해야 한다. 내년이면 광복 80주년인데 이게 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