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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한 표정

외래어에 대한 단상

by 김세중 Jan 30. 2025

신문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아들 배런이 '시크한 표정을 짓고' 있다고 해서 시크하다란 말에 관심을 갖게 됐다. 전에 몇 번 들어본 적은 있지만 무슨 뜻인지는 사실 잘 모른다. 외래어라는 게 그렇다. 뜻이 좀 모호한 경우가 많다. 


'시크한' 표정은 어떤 표정인가'시크한' 표정은 어떤 표정인가


'시크하다'는 형용사다. 한국어에 언제쯤부터 쓰이게 되었을까. 신문 기사 검색을 해본 바로는 2005년 무렵부터가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20년쯤 됐다. 처음에는 패션이나 인테리어 같은 것을 말할 때 주로 쓰였던 것 같은데 지금은 사람의 표정, 태도를 가리킬 때도 곧잘 쓰이는 거로 보인다. 세련되고 도시적인 패션, 인테리어를 시크하다고 했는데 무표정하고 도도한 태도나 모습도 시크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어사전에는 용모와 스타일에 대해서 쓰는 말이라고 돼 있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시크하다가 과연 세련되고 도시적인 스타일에 대해서만 쓰는 말인지 표정이나 태도가 도도하고 무심함을 가리킬 때도 쓰는 말인지에 대해 인공지능에 물어보기로 했다. 챗지피티, 클로드, 제미나이, 퍼플렉시티, 유, 코파일럿 등 6개의 인공지능에 똑같은 질문을 해보았다. "'시크하다'의 뜻은 무엇인가?" 하고. 그랬더니 흥미로운 답을 들을 수 있었다. 퍼플렉시티의 답변이 독특했다. 퍼플렉시티는 이렇게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시크하다'를 '차갑다', '도도하다', '무심하다' 등의 의미로 잘못 사용하고 있지만, 이는 '시니컬(cynical)'이라는 단어와 혼동한 것입니다. '시니컬'은 '냉소적인'이라는 뜻으로, '시크하다'와는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다른 인공지능은 시크하다가 '도도하다'나 '까칠하다'의 뜻을 나타내기도 한다고 했지만 퍼플렉시티는 이를 단호히 부정한 것이다. 퍼플렉시티가 이렇게 말한 이유가 짐작이 갔다. 영어로 영어 단어 chic의 의미를 여섯 인공지능에게 물었더니 모두 스타일이 세련된 것을 말했을 뿐 사람의 태도나 표정에 대한 언급은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영어 단어 chic의 의미와 한국어 단어 시크하다의 의미는 일부는 겹치지만 일부는 겹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겹치는 의미는 스타일이 세련되고 도시적이고 멋지다는 것이고 겹치지 않는 의미는 한국어 시크하다지니는 '도도하다', '까칠하다'의 뜻이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라는 속담이 생각난다. 영어 chic가 한국어에 와서 시크하다가 되면서 의미가 추가되는 것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신문 기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시크한 표정'이라고 기사에 썼지만 과연 시크하다가 한국어에 굳건히 뿌리내릴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나는 나이를 좀 먹어선지 '시크한 표정'이 왠지 잘 와닿지 않는다. 새로운 걸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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