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암산에 오르다
3월 8일 토요일에 청주를 다시 찾았다. 13일만이다. 브런치에 쓴 내 글이 인연이 돼 한 로스쿨 입학 예비생과 2월 23일 처음 만났고 두번째 만났을 땐 입학한 지 열흘 지난 상태였다. 3년이란 장거리 레이스가 막 펼쳐졌다. 그리고 캠퍼스에서 그의 동료인 다른 두 신입생도 만났다. 모두 초롱초롱한 젊은이들이었다. 내가 갑자기 젊어진 듯한 느낌이었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
그를 만나기 전 먼저 나 혼자 학교 앞 한 식당에 들어갔는데 우육면에 이끌려서였다. 지난 12월 상하이에 여행 갔을 때 중국에서는 우육면을 참 많이 먹는다는 걸 알았고 청주에서도 그걸 먹고 싶었다. 그 식당은 선불제였는데 그걸 모르고 좌석에 자리잡았고 주방에서 뭘 주문하겠느냐고 묻기에 우육면이라고 답했다. 그런데 뭘 주문했냐고 되묻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주방장이 중국인이어서 말을 잘 못 알아들어서 그랬다. 우육면은 얇게 저민 고기가 든 국수인데 한 그릇 후딱 해치웠다. 가만 관찰해 보니 그 식당은 중국인들이 많이 들어왔다.
2주 전 만났던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침 학교 안에 있다고 했다. 5분도 안 돼 우린 만났다. 조용한 교정을 걸었다. 내게 박물관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언덕길을 올라 박물관에 이르렀는데 마침 주말이라 문이 닫혀 있었다. 박물관 앞 너른 잔디밭에 석탑을 비롯해 유물들 몇 점이 있어 그걸 보고 돌아섰다. 같이 걷다가 그가 지나던 동료 한 사람과 반갑게 인사하는 것이었다. 나도 인사했다. 눈이 반짝반짝한 그에게 갖고 온 여분의 책을 한 권 선물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잠시 후에는 원래 만나기로 했던 다른 동료가 로스쿨 라운지로 왔다. 셋이서 학교 정문 앞 카페로 자리를 옮겨 차를 마시며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공교롭게 두 사람은 모두 수학과 출신의 로스쿨 입학생들이었다. 3년은 훌쩍 가고야 말 것이고 그들은 법조계에서 훌륭히 역할을 할 것이다.
선물로 주려고 가지고 온 책을 다 주고 나니 가방은 텅 비었다. 이제 나 홀로 청주 시내에서 가장 가까운 산인 우암산으로 향한다. 511번 버스를 타고 도청 앞에서 내렸다. 성안로는 청주의 로데오거리인데 그 앞을 지났다. 상당공원을 지나 점차 오르막을 오르기 시작했다. 기나긴 골에는 문수암, 대현사 같은 사찰이 있었다. 포장도로가 끝나니 방송 송신소가 보였다. 우암산 정상은 거기서 그리 멀지 않았다. 정상 못 미쳐 전망대에 올라서니 청주 시내 전망이 탁 트였다. 전망대를 내려와 좀 더 걸으니 이번엔 청주 동쪽의 산악 지대가 펼쳐져 있었다. 국립청주박물관 부근에 드넓은 주차장이 내려다 보였다. 청주향교쪽으로 내려갈까 삼일공원쪽으로 내려갈까 하다가 삼일공원쪽을 택했다. 해발 353m.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낮지도 않다. 등산도로 곳곳으로 나 있다. 겨우 두 방향만 경험했는데 다른 방향으로 가볼 날도 있으리라. 청주향교쪽이나 청주박물관쪽이나 청주대학교쪽이나.
당일치기 짧은 여행이었지만 몇 가지 점은 인상적이었다. 젊은 로스쿨 신입생들은 촌음을 아껴서 치열하게 공부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들은 살벌한 경쟁의 길에 뛰어들었다. 졸업과 함께 변호사시험에 합격하는 게 최선이지만 모두가 다 그러지는 못하지 않나. 그러니 잠시도 한눈팔지 않고 공부에만 전념하는 수밖에 없으리라. 그런데 그들의 공부에 갖은 장애물이 놓여 있으니 무엇보다 지엄하고 소중한 법조문에 말이 안 되는 문장이 숱하게 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있을 수 없는 현실을 타개하고자 뜻을 모으는 중이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수님들에게도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그분들은 이미 잘못된 법조문에 익숙해져 불편을 모르기 때문이다. 젊은 신진학도들을 더 이상 힘들게 해서는 안 된다. 내년에도, 또 그다음 해에도 로스쿨 신입생들은 들어올 것이다. 그들에게 부당한 부담을 지우고 고통스럽게 해서는 안 된다. 충북대 로스쿨 2025년 입학생들이 시발점이 돼 이 나라 법조문을 반듯하게 바로 세우는 시민운동이 전개, 확산되기를 염원한다. 이는 이 나라 로스쿨생들뿐 아니라 모든 국민을 위하는 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