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이안 Feb 16. 2020

인적성검사 특강을 들었습니다

이거 과연 공부해야 하는 걸까?

이번 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후 근무를 빠져가며 인적성 특강을 들었다. 뭔가 공채 시즌을 준비하는 착실한 취준생이 된 것만 같아서 기분이 들떴다. 자기소개서를 작성할 때는 서류 전형이 세상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인적성 검사에서 우수수 떨어져 나간다는 생각을 하니 왜 사람들이 인적성 준비를 미리미리 하려는지 알겠더라.


인적성이라는 걸 처음 쳐봤다. 고등학교 때 생각이 났다. 수능 준비와 동시에 대입을 위해 적성검사 문제를 풀던 같은 반 친구들이 있었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이 풀어야 한다고 해서 세상엔 다양한 시험들이 있구나-하고 넘겼던 기억이 난다. 그때 문제 풀던 그 친구들은 지금 이 문제를 잘 풀 수 있을까.


내 생애 가장 맹렬하게 공부했던 때는 역시 대입 시즌이었다. 그 당시에는 공부가 업이었던 학생이니 학문을 탐구하고 진리를 찾는 일이 정말 즐거웠다. 나름 수능 공부를 하면서 그 '앎'에 한 발짝씩 다가간다는 생각을 했었다. 시험에 안 나오는 내용이라도 궁금하면 알고 싶었고, 굳이 알 필요가 없는 지식이라도 이해에 도움이 된다면 잘 받아들이곤 했다.


하지만 적성검사를 공부한다는 느낌은 그때와는 다르다. 여기서 참된 진리가 다 무슨 소용이야. 그냥 빠르게 정확하게 풀고 많이 맞추는 게 중요한 시험일뿐이다. 문제풀이 스킬을 외우고, 문제 푸는 방법을 공부하고. 공부를 공부하는 기분이었다. 이 공부를 하면서 "왜요?"라고 묻는 일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마인드가 이따구로 잡혀있으니 공부할 맛이 안 난다. 전개도 접고 투상도 돌려보고 경우의 수를 따져본들 이것이 나의 실생활에는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될 것인가. 이게 정말 내 능력을 검증하는 지표로 쓰인다니 왠지 억울하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적성검사 점수가 높게 나오는 사람들이라면 일도 빠릿빠릿하게 잘할 것 같긴 해서 시험의 신뢰도를 마냥 부정하기도 어려웠다.


가장 나를 괴롭혔던, 내가 모의고사와 낯가리게 만들었던 점은 바로 문제 난이도였다.

처음 시험을 치고 나서 허무함과 허탈함이 강렬하게 나를 휘감았다. 분명 다 아는 문제인데! 시간만 많으면 답 찾는 건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엄청 쉬워 보이는데! 이거 중고등학교 때 열심히 했는데! 나 나름 대학 교육과정 밟고 있는 사람인데! 왜 못하니!


쉬운 문제, 아는 문제라 더 하기가 싫다. "저 이거 다 할 줄 아는데 왜 굳이 물어봐요. 실제 업무에서 이렇게 촉박하게 굴릴 거 아니잖아요"라고 삐뚜름한 표정으로 말하고 싶어 진다. 알면 잘해야지. 근데 그것도 아니라 더 엇나가고 싶은 마음이 드나 보다.


스물 넘어 만난 공부들은 대개 그렇게 수단적이었지만, 취업이라는 너무 절실한 목표 때문에 적성검사라는 다소 낮은 난이도의 문제를 빠르고 정확하게 푸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하니 그 목적과 방법의 밸런스가 너무 크게 차이 나지 않나 싶기도 하다.


그래도 어쩌겠어요, 저걸 통과해야 면접관을 본다는데.

당분간은 인지부조화에 걸린 투덜이처럼 적성검사와 낯을 가리게 되지 않을까. 언제 진심으로 저 시험을 받아들이고 몰입할 수 있을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20021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