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tes, France
프랑스에서 살며 여러 주소를 가져봤는데 지금까지도 또렷하게 기억하는 유일한 주소가 있다.
145 rue d'alloville 44000 Nantes.
대학생 때 이사를 가서 석사생일 땐 같은 건물의 맨 꼭대기 층으로 옮겨서 1-2년 더 살기도 했을 정도로 이 집을 좋아했었다.
2층 집 창문에서 고개를 내밀고 보면 낭트 도심에서 가장 큰 정원인 Jardin des plantes 가 보였다. 그러니까 문을 열고 몇 발자국 나가면 식물원과 온실을 포함한 73,280 m2의 정원이 펼쳐져 있었다.
우리 집 쪽 출입문을 통해 자흐당을 가로질러 반대쪽 옆 문으로 나가 학교를 오가니 적어도 하루에 두 번은 정원을 걸었다. 살면서 마음이 답답한 일이 생기면 자연스레 발걸음이 정원으로 향했다. 천천히 길을 달리해서 걷고 또 걸었다. 누군가를 만날 때 약속 장소로 정원의 어느 벤치를 택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참 많은 시간을 나무들 사이에서 보냈다.
그 당시에 헛헛한 마음을 가지고 정원을 찾으면 나보다 몇 백 년은 더 산 나무들 사이에서 여유롭게 걷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걸음걸이를 늦추게 되고 내게 닥친 일이 그렇게 큰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오곤 했던 것 같다.
Jardin des plantes는 보통은 저녁 6시에 문을 닫는데 한여름 밤에 딱 하루 야간정원을 개장할 때가 있다. 원래도 가로등이 없는 곳이어서 정말 깜깜한데 풍경을 헤치지 않는 선에서 불빛들이 추가되고 도시 사람들 모두가 함께 정원을 걷는다. 얼마나 근사하고 비밀스럽고 마법 같은 경험이었는지 모른다.
저녁 6시가 되면 사람의 접근이 불가해서 밤엔 나무를 지키는 정령과 요정의 세계였던 그곳에 금기를 깨고 몰래 들어간 거 같았다. 언제라도 프랑스 신화에 나오는 모자 쓴 난쟁이가 불쑥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 후로 나는 어느 도시에 여행을 가든 꼭 정원에 들렀다.
유럽의 정원과 온실은 모두 비슷한 듯하면서도 그 도시의 역사를 품고 있었다.
특히 온실 속에 고이 모셔져 온, 습도를 완벽하게 맞춰가며 세대를 달리하며 자라나는 나무들 일부가 실은 연구 목적을 넘어선 식민지 개척의 자랑스러운 결과물 중 하나였다는 걸 알았을 때에는 꽤 충격을 받기도 했다.
'이주'를 뜻하는 migration이라는 프랑스어는 식물의 이동에도 쓰이는데
매 년 체류증을 갱신하러 가던 경시청에서 본 migration이라는 단어가 평소와는 다르게 다가왔다.
뿌리가 뽑힌 채 이주되는 나무들의 이미지가 길게 줄 서 있는 다양한 피부색의 사람들과도 겹쳐져 보였었다.
그 첫 번째 작업으로 도자기로 낭트 정원의 온실을 표현했다. 다른 집들은 전부 색화장토로 조색을 하고 색색의 디테일을 나타냈는데 이 온실은 색화장토 대신 전부 유약으로 표현했다.
이중시유 라고 해서 다른 유약 두 가지를 겹쳐서 발랐을 때 기존의 두 색과 전혀 다른 색이나 효과를 내는데,
유리 온실의 투명함을 불투명 유약으로 표현하는 게 가능할까? 첫 시도였는데 기대했던 것만큼 투명함이 표현됐다! 그리고 가마에 기물을 넣는 자리에 따라서도 거품 꽃이 피는 양이 달라지는데 가마 제일 윗 칸에 넣었더니 이렇게나 많은 기포가 올라와서 유리의 투명함이 의도치 않게 더 극대화 됐다! 야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