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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희 Apr 24. 2024

모든 건 친구의 집들이 선물에서 시작됐다

몇 안 되는 중고등학교 동창들 모두 어느새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고 가정을 꾸렸다.

서른 중반의 나는 남편도 없고 아이도 없지만 매주 아이들을 만나는 일을 하고 있고.


우리는 모두 일산에서 자랐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부모들만 일산에 남았고 친구들 모두 신혼집을 경기도 남부, 북부 등 낯선 도시들에 얻었다. 같이 떡볶이 먹고 깔깔대고 야자 하기 싫다고 찡찡대던 여고생이었던 친구들이 회사를 다니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연락이 뜸해지고 '보고 싶어서 전화했어'라고 말하는 게 어색한가? 를 고민하는 사이에 또 일 년이 흐르는 사이가 됐다.


'올해는 꼭 보자'

'일 년에 못해도 두 번은 보고 살자'

그게 그렇게나 어려운 일이 됐다.


그들 중 한 친구가 이제 막 두 살 된 아이의 생일에 맞춰 완공된 새 아파트로 드디어 이사를 가게 됐다고 SNS를 통해 들었다. 나는 혹여라도 내 친구들 아이 이름을 잊을까 친구 이름 옆에 괄호로 아이의 이름을 적어 놨는데 아직 싱글인 나를 배려해 아이들 커 가는 사진 한 장 보내지 않는 게 요즘의 예의 바른 젊은 엄마들이다. 오히려 너무 소식을 모르고 사니 서운하려고 한다.

그나마 SNS에서 아이들 모습을 볼 수 있으니 랜선 이모쯤은 된 건가.


낯선 도시에서 오로지 남편과 아이와 같이 사는 건 어떤 기분일까. 아이가 어려서 종일 집에서 아이와 단 둘이 보내야 했던 시간들, 엄마가 처음이라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얼마나 당황스럽고 먹먹했을까. 가끔 내 친구들이 지나온 시간을 헤아려 보려고 하는데 잘은 몰라도 여기까지 잘 왔다며 등을 쓸어주고 싶다.  


논밭을 뒤엎고 막 아파트가 올라가고 있는 황무지에서 새로운 도시와 함께 뒤서거니 앞서거니 커 나갔던 신도시 키즈인 나는, 엄마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나를 두고 하나뿐인 시외버스를 타고 강남으로 출퇴근을 하던 나이가 됐다. 당장 결혼을 하려 해도 나 역시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익숙하게 커 온 동네에선 집 값 때문에 살 수 없어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경기도의 새로 만들어지는 도시에 이주해야 할 판이다. 내 부모가 발 빠르게 적금을, 집을, 청약을 준비해서 한 단계 한 단계 밟아나간 것과 달리 같은 나이가 된 나는 한 치 앞이 막막한 나이만 먹은 어른이다.


그래서인지 친구가 신혼집으로 우리 나이만큼 오래된 아파트에서 남편이랑 아이랑 부대껴 살아온 모습을 봤었기에 새 집이자 남의 집이 아닌 그들의 집에서 살게 된 게 어떤 의미일지 상상해 보니 내가 다 벅차올랐다.

그들의 군더더기 없는 첫 집에 뭘 선물해 주면 좋을까 고민했다.

사실 웬만해선 뭔가를 놓기보단 그 자체로 깨끗하고 완벽한 새 집이니 나 같아도 뭔가를 놓지 않는 편을 선호할 것 같았다. 고민 끝에 문득 그 문장이 떠올랐다.


...and they lived happily ever atfer.


이제까지의 우여곡절은 제쳐두고 이제 이 집에서 행복하게 왁자지껄 살았음 했다. 이 문장 괜찮냐고 했더니 친구는 센스 있게 "내가 또 디즈니를 좋아하잖아!" 라며 마음에 들어 했다.

마침 아이 방 수납장 위에 둘 오브제를 찾고 있었다길래 세워 둘 수 있는 형태로 디자인 방향을 잡고 세모난 지붕에 나무도 한 그루 심고, 굴뚝도 있는 그런 집을 도자기로 만들어서 저 문장을 새겼다.


 



뜬금없지만 최근에 황금알 100개를 받는 꿈을 꿨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생애 세 번째로 로또를 사러 갔었다. 설마 되겠어 싶었는데 역시나였다. 다음엔 꿈에서 숫자를 불러주지 않는 한 로또는 다신 안 사려고 한다.

여하튼 그래도 심상치 않은 꿈같아서 괜히 기분이 들떴었다.


그런데 친구 집들이 선물로 집 하나를 정성 들여 만들다 보니 내가 거쳐온 집들을 만들어봐도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나온 거다. 나는 무릎을 탁 쳤다. 황금알 100개 중 하나가 바로 내 친구였구나. 꽤 오랜 시간 작업의 방향과 흥미를 잃었던 내가 드디어 '해야 할 일'이 생긴 거다. 씨앗이 심기니 뭘 만들지, 어떤 카테고리로 나눌지 등등 작업 아이디어가 연이어 떠오르며 결국 오랫동안 방치해 둔 브런치를 열어 이 생각들을 처음부터 작업노트 형태로 남겨야겠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실로 황금알이 아닌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특히나 한국에서 <집> 이야기를 할 때 평수나 시세 같은 숫자를 제외한 가족과 부대끼며 사는 공간과 경험으로서의 집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내 최초의 집은 어디인가? 처음 프랑스에 가서 학교에 합격해서 발품 팔아 구한, 백 년 된 돌건물 2층의 그 집일까? 아니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살았던 파란 지붕에 다락방이 있던 할머니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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