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상정 Oct 22. 2021

첫사랑은 실패한다.

주식 첫경험

내 첫 주식은 두산중공업이었다. 주식 계좌도 없던 내가 경제방송국에 입사를 했고 필연적으로 계좌를 만들어야했다. 회사 규정상 주식 투자는 금지돼 있다. 다만 100만원 안팎 소액 투자는 공부(?) 목적으로도 권장하는 분위기였다. 해봐야 안다는 말! 적극 공감한다. 그때까지는 책으로 배웠다. PER, PBR 백날 책으로 봐도 실전 경험이 없으면 매수 버튼이 어디 있는지 조차 알지 못한다. 가장 중요한 점은 심리! 이론대로 되는 주식은 없다. 그렇다면 똑똑한 사람들은 다 주식투자로 부자됐게?

필자 주변에 똑똑하다는 사람들 중 주식으로 돈 꽤나 벌어다는 사람은 보지를 못했다. 정말 손에 꼽는 영재들은 주식의 쓴 맛을 다들 알더라는...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수익이 손실보다 더 뼈 아플 수도 있다는 것을...

사람 심리가 묘하다는 것은 해봐야 안다. 20% 하락해서 손절했을 때보다 20% 수익 내고 판 종목이 50% 급등했을 때 마음이 더 쓰리다. 해본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이런 투자자들의 심리를 아는 것은 너무, 매우, 굉장히, 완전 중요하다. 

그래서 해봤다. 당시에는 주식을 전혀 몰랐다. 

투자를 권한 선배하는 말이 "그냥 들어본 주식 사.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주변에서 골라"

그래! 삼성전자? 당시 삼성전자는 100만원에 육박했다. 당시 너무나도 애송이였던 것이 '100만원이면 삼성전자는 1주 밖에 못사네. 10만원짜리 사면 10개나 되는데... 1만원짜리 사면 100개나 되네! 우왕~' 이런 사고를 했었다. 참나.

그 얘기를 들은 날 약속이 있어서 평소에는 가지도 않던 동대문에 갔다. 거의 몇 년 만에 약속이 굳이, 하필, 왜, 거기였을까. 

약속 장소는 두산타워.

그리고는 다음 날 무엇을 살까 두리번대는데 '그래! 주변에서! 두산! 들어봤고 주변에 있으며 삼성전자처럼 너무 주류는 아니라 나랑도 맞는 것 같고 두산이 망하겠어? 그래 결심했어'

이런 의식의 흐름을 거쳐 매수 버튼을 눌렀다.

두산 그룹주가 꽤 많이 상장돼 있었는데 두산인프라코어는 뭔가 인프라코...뭐? 이렇게 해서 땡. 두산은 너무 그냥 두산이라 땡. 두산중공업! 중공업, 뭔가 묵직하고 탄탄한 느낌?

그렇다. 그렇게 느낌적인 느낌으로 종목을 골랐다. 

2010년 당시 두산중공업은 6만원 대 였다.  

일봉, 주봉, 월봉, 연봉을 봐도 우상향에 급등 후 쉬어가는 걸로 보였다. 누구는 그게 설거지 신호라고 나중에 해석을 듣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업황도 꺾인대다 실적이라도 볼 줄 알았다면 그런 악수를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이왕 마음을 준 내 첫 주식. 그(두산중공업)는 모르지만 남몰래 흠모하며 살짝 살짝 엿보기를 10년. 한 두 해는 악재가 나와도 그래도 나아질 거라며 희망을 걸어보기도 했다. 3만원까지 주가가 반토막이 나고 이젠 계좌를 열어보지도 않게 됐다. 1만5000원을 깨고 반의 반토막이 되고 나서는 안티로 돌아선다. 

"그래 니가 하는 짓이 그렇지 뭐" 팔아봐야 옷 한번 못사니 그냥 포기한다. 그때는 전체 계좌를 버려뒀다. 손실금이 아니라 손실률이 70%를 넘어가자 내 포트폴리오에 다른 종목이 수익을 내도 너무 꼴보기가 싫었다. 아! 내가 이런 진상을 계속 볼 필요가 뭐가 있는가. 대한민국에는 참 많은 증권사가 있질 않는가. 새로 계좌를 만들면 되지. 유레카~

너무도 뻔하고 당연한 생각이 그땐 신대륙 발견한 콜롬버스의 마음이었다. 

그 이후로는 안봤다. 1만원을 깨고 5자릿수가 4자릿수가 될 때는 이미 관심 밖이라 이 상황 조차 알지 못했다. 시장에서도 관심 밖이라 두산중공업의 주가가 신저가를 쓰든 지하 땅굴을 파든 노관심이었다. 

그렇게 10년이 지났다. 2020년. 코로나로 인해 영끌, 빚투. 영희도 철수도 동학개미운동에 참여할 때 쯤 잊고 있던 계좌가 생각났다. 너도 나도 수익이 날 때라 그때는 종목 관심이 있었을 때다. 오랜만에 계좌를 열어봤다. 코로나 직후 코스피가 자고 일어나면 올라 있을 때였다. 

2200원까지 밀렸던 두산중공업도 뜨거운 여름에 전에 없던 급등을 하더니 6000원이 됐다. 내가 산 금액에서 '0'하나 빠진 가격. 

10년 지나 6만원에서 6천원. 손실률 90%. 

60만원쯤 투자해서 10년이 지나 6만원이 됐다. 6만원도 아니라 수수료에 세금 떼고 5만 얼마였다. 10%만 건진다고 생각에 늘 손절을 못했지만 10년 사이 내게도 50만원에 벌벌대지 않을 만큼은 여유가 생겼고 50만원 이상 벌어준 종목들도 있기에 가능했다. (물론 지금도 50만원은 큰 돈이다.)

요즘은 원전테마에 합류하면서 두산중공업으로 수익냈다는 사람들도 보이고 뉴스도 많다. 예전과는 다른 대접을 받고 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뭔가 모를 아련(?)함에 가슴이 저릿한다. 이런게 첫사랑의 기억인가보다. 


이전 05화 주식과 연애의 공통점 2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