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불출마가 보여준 주식시장의 단상
2월의 첫날. '반반'이 드디어 사고(?)를 쳤다.
그날 저녁 주요 방송국 뉴스 헤드라인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대선 불출마였고, 다음날 조간신문도 그러했다. 아마 기자들은 퇴근 무렵 떨어진 된서리에 입술이 십 리는 나왔을 것이다.
된서리를 맞은 사람은 또 있었다.
주식 시장이 끝난 오후 4시.
여느 때처럼 주식 종목 상담 생방송을 진행했다.
"시청자님 안녕하세요?"
전화 너머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네. 재영솔루텍이 궁금해서요"
종목을 물어보기도 전에 일단 본론부터 말하는 모습에서 '두 근 반 세 근 반'한 심리 상태를 엿볼 수 있었다.
종목을 듣는 순간. 그 다급함이 이해되기도 했다.
재영솔루텍은 휴대폰 부품업체지만 개성공단 입주했던 이력 때문에 대북관련주로 꼽혔다. 반 전 총장의 북한 방문설로 다시 주목받으면서 정치테마로 분류됐다. 생각해보면 참 그 연결고리가 약하디 약하다.
반 전 총장이 대통령이 되고 북한에 가고 설사 여기까지 진행된다 하더라도 이 회사가 사업하는데 실제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였다.
그럼에도 이 회사 주가는 어마어마하게 올랐었다.
그 날 주식 시장에서 재영솔루텍은 4% 넘게 오른 상태였다.
그. 러. 나.
장 마치고 반 전 총장 대선 불출마에 시간 외 거래(정규시장이 끝나고 일정 조건 내 일부 매매가 가능한 시간)에서 그에 따라서 움직였던 약 30개 종목은 일제히 하한가였다. 보통 시간 외 거래는 거의 움직임이 없다. 굳이 특별한 일 아니면 거래할 필요도 없어서 잘 이뤄지지 않는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런데 다음날 주식 시장이 문을 열면 30%의 급락이 불 보듯 뻔하니 안 팔릴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팔고 싶은 마음에 주문이라도 걸어놓은 것이다.
그 시점에서 생방송에 걸려온 시청자 전화였다. 다행히 이 종목은 피해가 크지 않았다. 다음날 관련 종목들이 우수수 떨어지는 가운데서도 1% 하락하면서 선방했다.
2월 2일. 데자뷔 같은 전화가 같은 시간 걸려왔다.
"시청자님 안녕하세요?"
어제와 같은 급박함이 아니라 한숨이 약간 섞인 침묵이었다.
"연결돼셨어요. 어떤 종목 봐 들릴까요?"
"지엔코를 가지고 있는데..."
지엔코라. 회사 이름을 들으니 그 한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지엔코. 반기문 전 총장 외조카가 이 회사 대표이사다. 직접적인 인맥주로 핫했었다. 사돈의 팔촌. 동문. 옷깃만 스쳐도 테마주로 분류되는데 피가 섞인 인맥주는 그중에도 성골이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주가는 급등을 넘어 폭등했었다. 그랬었었다.
이것을 제외하면 이 회사는 그냥 의류업체다.
그날 지엔코의 주가는 30% 급락한 하한가로 마감됐다. 그 시청자가 산 가격 대비로는 반토막보다도 낮은 가격이었다.
어찌하오리까~
함께했던 주식 전문가는 눈물의 매도를 권했다. 다음날 팔라는 것이었다.
30% 더 밀리면 반의 반 토막이겠지만 그거라도 감사하고 일단 팔라는 것.
반반사태(?)가 주식시장에 미친 영향력. 그 단면이다.
미국은 트럼프나 힐러리가 대선에 출마한다해서 그들 인맥 관련 기업이 이렇듯 이상 급등을 하거나 군집을 이루지는 않는다.
으레 '누군가 권력을 거머쥐면 특혜가 있겠지'라는 생각이 만연해있다. 국정농단이란 초유의 사태를 경험하면서 다음 권력에 대한 견제가 강해졌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도 차기 대선주자들의 소위 '수혜주'들은 늘어나기만 한다.
깨끗한 리더를 원하면서도, 그 리더의 인맥 특혜를 전망하며 주식을 사는 투자자들.
누구의 잘못이라 말할 것인가. 이런 아이러니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