죵히베2016

20160516

by 종이소리
36인치 8종광 마루직기에서 헤링본직 (c)2011.종이소리

[종이]

-지구에서 온 "내일"-


종이직조,

'죵히베'

날실도 씨실도

종이다.


예쁜 손톱

고운 손가락은

안타깝지만

포기해야 하는 작업이다.


독일의 종이,

크라프트지를

노끈으로 꼬은

종이끈은

질기기도 하지만

딱딱하고 거칠기가

누구 심장 못지않다.


"강한 힘"을 의미하는

'크라프트'라는 이름답게

그 무뚝뚝한 성질을 달래느라

인내가 필요하고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 한다.


그러나

이 고단한 작업의 끝은

'황홀'과 '만족'이다.


사랑 없이

견딜 수 없는 작업이다.


수 없이 매만지고

지문이 닳을 만큼 쓰다듬고

툭툭 튀어나오는 굴곡에선

조용한 속삭임으로 달랜다.


"네가 나를 좋아하지 않아도

나는 상관없어.

중요한

내가 널

너무 좋아한다는 거니까"


때로는

딱딱한 작업을 왜 하는지

화가 날 때도 있다.


손가락 피부가 갈라져서

피가 나거나

갈라진 틈이 덧나

날카롭게 솟은 톱니가 되면

보드라운 니트 올이

사정없이 긁혀버린다.

그럴 때는

그야말로, '사정없이'

화가 난다.


모두

부주의한 내 탓이라서

스스로에게 내는 화다.


종이와

자존심 대결하는 것도

아니고.

누가

상을 주는 것도 아닌데.


그래서

그저 종이가 좋다.

그냥, 그저 좋다.


단순하고 솔직하니까.

그리고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니까.


그리고

새 생명의

양분이 되기도 하니까.

2016.05.16


종이와 마사 헤링본직 가리개 2011.종이소리

작업실 비품과 재료를 수납하느라

수납선반이 필요해서 구입한

철제 수납용 행거를 가리려고

날실을

황마사로 걸고

씨실은

크라프트지

종이 노끈으로 직조한

수납장 가리개.


도자기, 식기,

철제, 나무, 식물…

이질적인 물성 곁에 놓여

사물들의 정서를

한결 따뜻하고

자연스럽게 만들어 주는

종이.


그래서

제목도 특별히

종이의 고어,

'죵히'로 모셨다.


옷감의 '베'를 더해 죵히베.

삼베 대신 죵히베다.


끝도 한도 없는

종이이야기.


그 시작을

어디서부터 해야 할까,

고민하던 시절에 쓴 글을 보니

기록이란 것의 소중함,

편리함을 새삼 깨닫는다.


종이,

'지구'에서 온 내일' 이야기를

준비하며.

2025.05.16

종이세간, 종이소리



매주 수요일 연재 브런치북

《종이, 지구에서 온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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