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녹차라떼샷추가 Nov 11. 2020

아기 몸을 씻기며 지친 내 삶을 위로 받는다.

직장인 아빠의 1년간 육아기록 『아빠, 토닥토닥』 연재물 - 14/100

어쩌다 보니 아내 손에 물 안 묻히는 남편으로 살고 있다. 아내와는 집안일을 나눠서 하는데 누가 무엇을 하겠다고 딱히 정해놓지는 않았다. 8년간 결혼 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집안일이 나눠졌다. 손에 물 묻히는 일은 주로 내가 맡고 있다. 아내는 몸이 피로하면 손에 습진이 생기는데, 물이 닿으면 습진이 더 심해진다. 습진이 심할 때면 아파서 쩔쩔매는 아내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짠하다. 다행히도 내 손은 아무리 손에 물을 묻혀도 습진이 생기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한울이를 목욕시키는 일도 내가 맡게 되었다.


한울이는 목욕을 즐기는 듯했다. 품에 안고 있는 한울이를 내려놓으면 내 옷깃을 쥐어 잡고 울먹울먹 하는데, 뜨뜻한 물이 몸에 닿기 시작하면 표정이 풀어졌다. 온천에서 목욕 좀 즐긴 할아버지 같이 편안한 얼굴을 했다. 신기하게도 목욕물에만 들어가면 목욕이 끝날 때까지 울지도 않고 가만히 있었다.


30일도 채 되지 않은 신생아를 목욕시키는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섬세한 손길이 필요했다. 혹여나 물 온도가 너무 뜨겁거나 차갑지는 않을지, 비누가 눈에 들어가서 아프지는 않을지, 아기가 미끄러져 물에 빠지는 않을지 긴장하게 되었다. 게다가 한울이는 아직 연약해 보였다. '손대면 톡 하고' 어딘가 부러질 것만 같았다. 처음에는 서툴렀지만, 점차 한울이를 목욕시키는 일이 익숙해졌다.



이제는 한울이 목욕시키는 일이 내 하루 일과 중 가장 기다리는 일이 되었다. 한울이 목욕시키려고 퇴근도 바로 하고, 저녁 약속도 거의 잡지 않게 되었다. 한울이의 부들부들한 살결을 따뜻한 물과 함께 어루만지는 느낌이 좋았다. 살이 포동포동 오른 엉덩이와 뱃살, 허벅지를 닦이고, 손가락과 발가락 사이를 손으로 문질문질 했다. 그러면서 한울이 몸도 자세하게 보게 된다. 한울이의 왼쪽 엉덩이와 허벅지가 이어지는 경계에 작은 점이 있는 것도 발견했다. 아기 몸을 만지고 관찰하면서 내가 이 아기의 아빠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아내가 모유수유할 때 한울이와 교감을 나누는 모습이 부러웠었다. 한울이는 엄마 젖을 물고 있을 때 눈을 땡그랗게 뜨고 누워서 엄마를 쳐다보곤 했다. 아내는 한울이에게 젖을 물릴 때마다 "너무 귀여워!"를 남발했다. 나도 아내 어깨너머로 젖을 물고 있는 한울이를 내려다봤는데, 심장이 멎을 듯한 귀여움이었다. 내가 젖이 없다는 게 아쉽게 느껴질 정도였다.


한울이를 목욕시키면서 아내를 조금 덜 부러워하게 되었다. 목욕할 때만큼은 한울이가 내게 온전히 몸을 맡겼다. 그리고 목욕할 때 한울이도 상당히 귀여웠다. 한울이 몸을 닦이며 나도 "흐흐흐~ 너무 귀여워!"를 반복하고 있었다. '귀여움이 다 이겨'라는 말이 있다. 귀여운 한울이를 씻기면서 내 하루의 피로도 함께 씻어 버렸다.



육아를 하다 보면 힘들기도 하지만 그 이상의 기쁨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실제로 육아를 해보니 그 말은 과소평가되었다. 육아를 하면 내 존재 자체가 위로받는 느낌이다. 작고 귀여운 아기가 내 모든 삶의 고됨과 힘듦을 위로해 준다. '내가 만약 괴로울 때면 누가 위로해 주나?'라는 어느 노래 가사에 대한 답변은 육아였다. 삶에 대한 위로가 필요한 시기에 육아는 선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수다쟁이 아내는 아기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