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유아용품 브랜드의 마케팅 담당자들이 한자리에 모였어요. 세 달 뒤 열릴 신제품 고객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서였죠. 예산은 5,000만 원. 담당자들은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빠르게 쏟아냈어요. 임산부와 함께하는 요가 클래스, 전문가 초빙 부모 교육, 야외 캠핑, 팝업 스토어 등. 불과 30분도 지나지 않아 50개가 넘는 아이디어가 쌓였어요. 담당자들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반응이 좋았던 세 가지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팀장에게 보고했어요.
하지만 팀장은 기획안을 돌려보냈어요. "다른 아이디어는 없나?"라며 새로운 안을 요구했죠. 이후로 수십 가지 아이디어를 전달했지만 팀장은 만족하지 않았어요. 담당자들은 다시 모여 머리를 짜냈지만 아이디어는 쉽게 나오지 않았죠. 계속되는 보고에 담당자들은 지쳐갔어요. "도대체 팀장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겠다"라는 불만도 터져 나왔죠.
팀장이 기획안을 거듭 돌려보낸 이유는 불안 때문이었어요. '혹시 좋은 아이디어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걱정이었죠. 대개 의사결정자는 자신의 결정에 대한 책임과 결과의 무게를 크게 느껴요. 그렇기에 최종 결정에 앞서 다양한 가능성을 충분히 검토했는지를 먼저 확인하고 싶어 해요. 이 불안이 해소되어야 비로소 대안을 검토하고 최종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이죠.
단순한 아이디어 나열만으로는 리더의 불안을 해소할 수 없어요. 아이디어의 전체 구조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에요. 아이디어 개수가 늘어난다고 해도 마찬가지예요. 리더 입장에서는 아이디어가 아무리 많아도 전체 구조를 알지 못하면 '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지 모른다'라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어려워요. 리더가 기획안을 받아보고도 거듭해서 다른 아이디어를 요구하는 이유기도 하죠.
리더의 불안을 해소하려면 구조화된 대안이 필요해요. 보통은 대안을 만들 때 앞선 사례에서처럼 바로 아이디어 수집부터 시작해요. 그렇지만 먼저 아이디어의 유형을 구분하고, 그에 맞는 아이디어를 수집하는 순서로 진행하는 방식을 추천해요. 이렇게 하면 아이디어의 전체 구조를 파악할 수 있음은 물론이고, 각 영역에서 어떤 아이디어들이 연결되어 있는지도 보여주기 쉽기 때문이에요. 결과적으로 리더에게도 '놓치는 게 없다'는 신뢰를 줄 수도 있고요.
앞선 사례의 신제품 고객 행사 기획에도 이 방식을 적용해 볼 수 있어요. 두 가지 축을 설정해 볼게요. 첫 번째 축은 '제품 체험 중심'과 '정보 제공 중심', 그리고 두 번째 축은 '다수 참여형'과 '소수 집중형'. 이렇게 두 가지 축으로 나누면 아래와 같이 총 네 가지 유형이 도출되어요. 각 유형에 아이디어를 채워 넣으면 일종의 '아이디어 지도'가 완성이 되는 거죠.
유형 구분을 통해 리더와 실무자는 같은 사고의 틀을 공유할 수 있어요. 설령 아이디어 구상에서 놓친 영역이나 검토가 미흡한 부분이 있더라도 더욱 쉽게 파악할 수 있어요. 추가로 필요하면 각 유형을 더 세분화하는 것도 가능해요.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전체 구조를 놓치지 않으면서 점점 더 적합한 아이디어에 도달할 수 있을 거예요.
구조화된 대안은 의사결정을 빠르게 만들어요. 실무자는 기획안 작성 단계에서부터 다양한 관점을 포괄한 균형 있는 대안을 구성할 수 있어요. 그리고 이를 검토하는 리더는 '놓친 부분이 있을지도 모른다'라는 불안감 대신, '어떤 선택이 최선인가?'라는 질문에 더 집중할 수 있고요.
정성들여 쓴 기획안이 계속 반려된다면, 이제는 의사결정자의 불안을 이해하고 구조화된 대안을 시도해 보기를 추천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