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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 제대로 활용하라.

by 녹차라떼샷추가

이성보다 직관이 필요한 상황


의사결정에서 직관을 활용하는 건 조심스러워요. 직관적 판단은 빠르고 간편하지만, 오류의 가능성이 크고 정확성과 재현성이 낮아요. 조직과 구성원의 성과를 책임지는 리더라면 섣부른 직관보다 근거 기반 판단을 우선하는 것이 바람직하죠.


하지만 모든 상황에서 이성적 판단에만 의존할 수는 없어요. 이성적 판단은 문제 정의, 평가 기준 설정, 자료 수집, 대안 검토 등 체계적 과정을 거쳐야 해요. 실제 조직 환경에서는 이런 절차를 충분히 따르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특히 위기나 시간 압박이 있는 상황에서는 즉각적 행동이 더 효과적일 때도 있죠.


핵심은 ‘언제 직관을 쓰고, 언제 이성을 쓸 것인가’를 구분하는 능력이에요. 상황과 맥락에 맞춰 판단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면, 의사결정의 품질을 높일 수 있어요. “망치만 가진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인다”는 말처럼, 한 가지 방식만 익숙하다면 문제를 제대로 보지 못할 수 있어요. 대부분 합리적 접근이 필요하지만, 위급한 순간에는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여야 할 때도 있어요.


여러 연구에서 제시된 내용을 토대로 직관적 판단이 효과적인 다섯 가지 상황을 살펴보려고 해요. 그 다섯 가지 상황은 아래와 같아요.
1️⃣ 한 분야에서 10년 이상 경험을 갖고 있을 때
2️⃣ 의사결정 기준이 정형화되지 않았을 때
3️⃣ 더 이상 분석과 검토가 의미를 갖지 못할 때
4️⃣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할 때
5️⃣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낄 때




1. 한 분야에서 10년 이상 경험을 갖고 있을 때


2025년 여름, 휴가 중이던 경찰이 한 남성의 수상한 행동을 보고 직감적으로 뒤따랐어요. 덕분에 보이스피싱 인출책을 현장에서 검거할 수 있었어요. 그는 특별한 근거 없이도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해요. 이런 직감은 우연이 아니라 반복된 현장 경험의 산물이에요. 수백 건의 사례를 접하며 몸에 밴 패턴 인식이 의식보다 먼저 작동한 결과죠.


독일 심리학자 게르트 기거렌처(Gerd Gigerenzer)는 이를 '휴리스틱(heuristics)'으로 설명해요. [1] 오랜 경험이 쌓이면 사람마다 무의식적 규칙이 형성된다고 해요. 전문가들이 복잡한 상황에서도 가능한 모든 대안을 고민하지 않고도 빠르게 행동할 수 있는 이유는 이 같은 무의식적 규칙 덕분이에요.


하지만 직관은 숙련된 영역에서만 신뢰할 수 있어요. 경험의 범위를 벗어나면 오류 가능성이 커져요. 경찰 사례에서 직관은 범인 검거에는 효과적이었지만, 사고 위험 징후 발견에는 큰 도움을 주지 못했을 거예요. 따라서 전문가라면 자신의 직관이 작동할 효과적인 범위를 인식하고 활용하는 것이 중요해요.




2. 의사결정 기준이 정형화되지 않았을 때


2011년, 스타벅스는 창립 40주년을 맞아 새로운 로고를 공개했어요. Starbucks Coffee라는 글자는 모두 사라지고 초록색 바탕 속 인어만 남았죠. 내부에서는 글자가 없어지면 브랜드 정체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어요. 심지어 기존 로고에 익숙했던 고객들의 불만 높아졌죠. 그렇지만 당시 CEO 하워드 슐츠는 이 로고가 커피를 넘어 식음료를 포함한 종합적인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스타벅스가 자리매김하는 데 적합하다고 판단했어요.


정량화된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 창조적 의사결정에서는 직관적 판단이 결정적 역할을 해요. 스타벅스의 새로운 로고 작업도 마찬가지였죠. 브랜드의 미래를 예측할 데이터나 확실한 기준은 없었지만 슐츠는 '사람들이 이미 인어를 스타벅스로 인식한다'는 감각적 신호를 포착했어요. 이는 브랜드 역사와 소비자 감각에 대한 오랜 경험에서 비롯된 직관이에요.


반면, 기준이 명확한 상황에서는 직관이 편향으로 작용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법에 따라 판단하는 판사 혹은 의학적 근거에 따라 진단하는 의사 같은 경우가 여기에 포함돼요. 회사 조직에서도 신규 장비 구매에 관한 재무적 판단과 품질 기준에 따른 제품 불량 판단 등이 같은 맥락이에요. 이런 경우 직관적 판단은 제한하는 것이 효과적이에요.




3. 더 이상 분석과 검토가 의미를 갖지 못할 때


2015년, 국내 한 석유화학업체는 재생원료 기반 플라스틱 투자 여부를 고민했어요. 기후변화 대응 요구와 규제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선제적으로 시장을 선점할지, 아니면 다른 업체를 관망하며 늦지 않게 대응할지 판단해야 했죠. 내부 전문가와 여러 전략컨설팅펌의 자문에도 불구하고, 미래 상황의 불확실성이 커 데이터와 시나리오만으로는 어느 쪽도 확신하기 어려웠어요. 결국 최고경영진은 과거 경험에 기반한 직관을 활용해 소극적 대응을 선택했어요. 이후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당선과 기후변화협약 탈퇴로 글로벌 기후변화 대응 논의가 다소 주춤하면서, 그 판단은 적절했던 것으로 평가되었죠.


미래가 불확실할 때 분석과 검토만으로 결정을 내리는 건 비효율적이에요. 변수와 시나리오가 많아도 시간을 들이면 분석의 정교함을 높일 수 있어요. 그렇지만 너무 오랜 시간이 소요되면 의사결정 시기 자체를 놓쳐버릴 수 있어요. 파레토 법칙에 따르면 20%의 정보만으로도 결과의 80% 수준을 달성할 수 있다고 해요. 이는 곧 나머지 20%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80%의 추가 정보가 필요하다는 의미기도 하죠. 따라서 분석을 수행한 후에도 결정이 어렵다면, 경험과 직관을 적절히 활용해 의사결정을 보완하는 편이 더 실용적이에요.


그렇다고 미래 불확실성을 이유로 직관에 먼저 의존하는 것은 위험해요. 먼저 분석과 검토를 통해 상황을 충분히 파악하고, 여전히 불확실성이 높고 판단 기준이 명확하지 않을 때 직관을 보완적으로 활용함이 바람직해요. 이렇게 해야 직관을 단순한 감이 아니라, 경험과 정보에 기반한 신뢰할 만한 판단 도구로 작동할 수 있어요.




4.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할 때


2000년, 미국 필립스 반도체 공장에 낙뢰로 화재가 발생해 생산 라인의 절반이 마비됐어요. 필립스는 몇 주 내 정상화될 것이라 고객사를 안심시켰지만, 실제 공급 차질은 수개월간 이어졌죠. 당시 필립스 부품을 쓰던 에릭슨은 그 설명을 믿고 재고를 소진하며 기다렸어요. 반면, 노키아는 검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음에도 즉시 위기 대응팀을 구성해 대체 부품 확보에 나섰어요. 결과적으로 노키아는 시장 점유율이 3% 상승했고, 에릭슨은 3% 하락했어요. 이 사례는 시간 제약 상황에서 직관적 판단이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줘요.


미국 심리학자 게리 클라인(Gary Klein)은 충분한 정보와 분석 시간이 불가능한 긴급 상황이더라도 전문가가 과거 경험과 패턴 인식을 바탕으로 신속하게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설명해요. [2] 이에 따르면 노키아의 경영진이 제한된 정보와 시간 속에서도 '대체 부품 확보'를 직관적으로 선택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과거 경험에 따라 학습된 결과로 볼 수 있어요. 실제로 노키아는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급격한 성장으로 인해 공급망 이슈와 생산 지연 현상을 경험했었어요. [3] 이러한 경험을 겪으면서 공급망 이슈가 발생하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무의식적인 규칙이 형성된 것이지요.


시간 압박 상황에서 직관적 판단을 활용하는 경우 공포와 불안 같은 감정에 영향을 받기 쉬워요. 정형화된 규칙으로 직관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가상의 시뮬레이션 혹은 위기 대응 훈련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면서 경험을 체계적으로 쌓는 것이 중요해요. 화재 상황을 가정해 비상대피훈련을 반복하듯 말이죠.




5.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낄 때


말콤 글래드웰은 『블링크: 직관의 힘』을 통해 소방대장의 직관적 판단 사례를 소개해요. [4] 미국 클리블랜드에서 발생한 화재 진압 작전 중, 소방대원들은 주방에서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고 있었어요. 그러나 불이 쉽게 꺼지지 않았고 현장 지휘관은 직감적으로 "뭔가 위험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해요. 그는 즉시 대원들에게 철수 명령을 내렸고, 몇 초 후 그들이 서 있던 바닥이 붕괴되었어요. 실제로 화재는 주방이 아닌 지하실에서 발생했으며, 그의 직관적 판단이 대원들의 생명을 구한 결정적 순간이 되었죠.


미국 신경과학자 조셉 르두(Joseph LeDoux)는 본능적 직감이 의식적 판단보다 먼저 작동하여 위험 신호를 감지한다고 설명해요. [5] 인간의 뇌와 신체는 수백만 년 동안 생존을 위한 선택을 반복하여 진화를 해왔어요. 위기 상황에서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논리적 사고보다는 즉각적 신체 반응을 더 발전시켜 온 것이죠. 회사 경영에서도 이를 적용할 수 있어요. 모든 표면적인 데이터와 근거가 긍정적이지만 때로는 직감적으로 위험을 느끼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본능적 위험은 결정의 사유보다는 탐색적 신호로 활용함이 바람직해요. 본능적 위험은 실제적인 위험이 아니라 개인의 불안 혹은 과거 트라우마가 직관으로 위장될 수 있어요. 리더로서 의사결정을 앞두고 본능적 위험을 느낀다면, 검토 과정을 잠시 멈추고 직감이 경고하는 요소를 확인하기를 권장해요. 위험이 큰 결정이라면 자원의 일부를 투입해서 진행하는 파일럿 테스트나 소규모 시도부터 시작하는 방법도 효과적이에요.




직관과 이성의 전략적 활용


리더는 상황과 맥락에 맞게 직관과 이성적 판단을 조화롭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해요.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는 능력은 조직과 개인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핵심 요소예요. 이번 글에서는 직관적 판단이 특히 효과적인 상황에 대해 살펴봤어요. 직관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경험과 전문성의 영역을 파악하고, 필요할 때는 신속하게 적용할 수 있어야 해요.


직관은 탐색적 신호이자 보완적 도구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해요. 위급하거나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는 결정을 앞당기고 위험을 예방할 수 있지만, 낯선 영역에서는 편향으로 작용할 수도 있어요. 따라서 소규모 테스트, 사전 시뮬레이션, 반복 훈련 등 체계적 전략과 함께 활용하면, 직관과 이성을 균형 있게 결합해 보다 효과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어요.


[1] Gigerenzer, G. (2007). Gut feelings: The intelligence of the unconscious. Viking Press.

[2] Klein, G., Calderwood, R., & Clinton-Cirocco, A. (1985). Recognition-primed decision (RPD) model. Retrieved from https://www.gary-klein.com/rpd

[3] Fourtané, S. (2014, September 9). Supply chain agility: Nokia’s supply chain management success. EE Times. https://www.eetimes.com/supply-chain-agility-nokias-supply-chain-management-success/?utm_source=chatgpt.com

[4] Gladwell, M. (2005). Blink: The power of thinking without thinking. Little, Brown and Company.

[5] LeDoux, J. E. (1996). The emotional brain: The mysterious underpinnings of emotional life. Simon & Schu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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