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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진지 Feb 14. 2021

이웃에게 인사하기

존재에게 안녕

독립으로 바뀐 점 중 하나는 이웃에게 인사를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본가는 계단식 구조의 아파트인데 현관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앞 집 이웃을 만나면 저는 서둘러 계단으로 내려갔습니다. 잠깐이지만 그 순간의 정적과 침묵이 너무 어색했거든요. 1층 엘리베이터 안에서 제가 누른 버튼을 뒤 이어 탄 누군가가 누르지 않았을 때, 그제서야 같은 층에 사는 이웃인 걸 알았어도 머쓱하게 핸드폰만 바라봤습니다. 눈이 마주치면 인사를 나누긴 했지만 제대로 얼굴을 마주하고 나눈 인사가 아니었기에 그분들의 얼굴도 잘 몰랐습니다.


독립한 이곳은 본가와는 달리 엘리베이터가 없는 복도식 빌라입니다. 때문에 앞 집뿐만 아니라 윗집, 윗집의 옆집, 아랫집 등 이웃과 더 많이, 더 자주 마주쳤습니다. 이사 후 처음 이웃과 마주쳤을 때, 찰나였지만 그 순간 인사를 할지 말지 고민했습니다. 어색함이 불편한 것도 있지만 요즘 세상에 1인 가구로서 몇 층, 몇 호에 혼자 사는 누구임을 알리고 싶지 않았거든요. 입장 바꿔 생각하면 저 역시 그들에게 있어 낯선 사람이었기에 상대에게 좀 더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들을 모른체함으로써 '나는 당신에게 관심이 없어요. 나는 무해한 사람입니다'를 무언으로 표현하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이런 고민은 처음 만난 이웃분의 인사로 금방 해소되었습니다. 오히려 스스럼없이 먼저 인사를 해주셨어요. 그분의 모습을 보면서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인사를 안했다면 서로가 서로에게 낯선 존재로 남았을 텐데 먼저 인사를 해주신 덕분이겠지요. 인사는 기본 에티켓일 뿐인데 이걸로 고민하는 제 자신을 보니 '나는 나이만 먹었지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구나'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후로 이웃을 만날 때면 별다른 고민 없이 먼저 인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이웃집 꼬마 형제들의 수줍은 인사, 씩씩한 목소리를 가진 청년분의 인사 등 기억에 남는 여러 순간들을 경험할 수 있었어요.


'밤샌 사람&일찍 일어난 사람'이라는 짤인데 표정이 너무 공감돼서 가져와봤습니다


인사라는 건 상대방의 존재를 인지하는 행위라고 합니다. 상대가 거기에 있음을 알아차리고, 상대의 존재에게 안녕을 표하는 의식이라고 해요. 성격이 원채 낯도 많이 가리고, 상대에게 넉살 좋게 먼저 다가가는 타입이 아니어서 낯선 누군가에게 인사하는 행위는 아직도 어색하고 머쓱하긴 합니다.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어색하게 지나간 몇몇 상황들이 기억이 나네요. 하지만 인사라는 건 성격과 상관없는, 존재에 대한 '알은체'라는 걸 알게 된 이상 계속해서 고쳐나가야겠지요. 조금이라도 더 어른이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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