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행복
매년 반복되는 일상의 루틴이 있다. 3월이면 청도에서 미나리 삼겹살을 먹고, 5월 아내의 생일 즈음에 산딸기를 먹고, 9월에는 언양시장에서 햇밤을 사서 먹는다. 하지만 올해는 뭔가 빠진 느낌이었다.
며칠 전, 아내와 근교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데 아내가 물었다. "우리 해마다 먹던 건데 올해는 안 먹었어. 뭘까?" 아내의 질문에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힌트를 달라 하니 아내는 4월에 꼭 먹던 거라고 했다.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 나를 보며 아내는 웃으며 말했다. "멸치회잖아."
맞다. 4월이면 항상 신선한 멸치회를 먹었었다. 청정한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멸치로 만든 멸치회는 입안에서 녹는 듯한 신선함과 바다의 향이 가득했다. 매년 부모님을 모시고 갔던 횟집. 여전히 정정하신 횟집 주인 할머니는 어제 본 듯 모든 손님을 반갑게 맞이한다. 최근 몇 년간 근교에 예쁜 카페들이 많이 생겼다. 멸치회를 먹고 나면 전망 좋은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일상의 수다를 떤다.
매년 3월이 되면, 벌써부터 4월에 먹을 멸치회를 기대한다. 멸치회는 명절이나 특별한 날이 아니지만, 부모님과의 작은 즐거움을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다. 이런 소중한 일상을 올해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일상은 바뀌기도 한다. 9월 언양시장의 햇밤은 최근에 추가되었다 .
집에서 차로 1시간을 달리면 언양이다. 언양시장은 아직도 장이 선다. 장터를 돌아다니며 시장 구경을 하며 시시한 일상의 대화를 나눈다. 조금씩이지만 이것저것 사다보면 양손에 까만 비닐봉지가 한가득이다. 장터 한쪽에는 장날에만 문을 여는 소머리국밥집이 보인다. 한 그릇 뚝딱 해치우고 마저 구경을 한다.
9월이면 좌판의 할머니들의 소쿠리에 밤이 담겨져 있다. 토실토실한 햇밤. 마트에서 파는 거랑 때깔부터 다르다. 만 원어치를 사 가지고 집에 와서 칼집을 내고 삶는다. 단맛은 조금 덜하지만 촉촉하고 푸슬푸슬한 맛에 쉴 새 없이 밤을 까먹게 된다. 그 맛을 못 잊어 마트에서 사 먹어 봤지만 영 맛이 다르다.
작은 먹거리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우리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시간 여행의 도구다. 한 입 베어 물 때마다, 그 순간의 향기와 함께 어린 시절의 내가 눈앞에 펼쳐진다. 부모님의 웃음소리, 친구들과의 왁자지껄한 대화, 아이들의 어린 시절이 지금의 나와 어우러진다. 그 작은 조각 안에는 삶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햇살이 스며든 노을빛 저녁, 바람에 흩날리던 꽃잎들, 그리고 나를 지켜봐 주던 따스한 시선들. 이 모든 기억들이 작은 먹거리 안에서 되살아난다. 그리하여 나는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이 맛과 함께 되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