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수수한 취미생활

수채화 도구 준비하다 생긴 일

by 바람코치 신은희

지난 주말 가까운 화방에 다녀왔다. 이번주부턴 그림 주제가 모노크롬에서 컬러로 바뀌기 때문이었다. 컬러 섹션 첫번째 테마는 수채화였다. 지난주부터 갑자기 일이 좀 바빠져서 미리 도구를 사두지 못했다. 택배 파업 때문에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제때 못받을까 염려되어 바람도 쐴 겸 밖으로 나왔다.


온라인 드로잉 클래스 선생님께서 친절하게 예시로 걸어두신 물감 브랜드나 붓 호수가 정해져 있었기에 구매 소요 예상시간은 약 15분. 내가 사려는 도구들은 다음과 같았다.

1. 신한 SWC수채화 물감 18 또는 24색 7ml이상

2. 30칸짜리 스틸 파레트

3. 화홍 붓 700시리즈 8호, 12호, 16호

4. 4칸 짜리 수채물통

5. 300g 이상 A4용지 크기의 수채화 전용 화지 또는 스케치북


막상 현장에 가보니 물감에서부터 막혔다. 신한 전문가 수채물감은 있었으나 인터넷보다 가격이 비쌌고, 차선책으로 제시해주신 마젤란 물감은 없었다. 다른 물감색들도 이뻐보였으나 단톡방에 이미 구매한 사람들이 올린 '그'물감색들에 이미 꽃힌 상태였다. 눈을 옆으로 돌리니 똑같이 신한인데 10ml짜리에 가격은 5천원 차이나는 제품이 보였다. 알고보니 학생용 물감.


'그래 내가 무슨 전문가야~ 사실 배우는 학생 입장 아닌가' 라고 애써 생각을 돌려봐도 그냥 빨강, 자주 보다 크림슨레이크, 버건디 등의 컬러명이 멋져보이는 느낌은 무시할수 없었다. 파랑색도 세룰리안 블루, 인디고 블루 등 다양한 색으로 나뉘는 그 오묘하고 아름다운 컬러네임의 세계에 빠져 15분은 물감 고르는데만 흘러버렸다.


붓이나 파레트, 물통, 스케치붇을 사는데도 똑같은 고민이 반복됐다. 예시로 정해진 브랜드는 화방에 없고 내 마음에 드는건 가격이 고민되는 식이었다. 다 계산하면 10만원이 훌쩍 넘을것 같기에 세밀한 그람수, 가성비 등을 따지다 구매한 금액이 총합 8만원 정도. 취미생활에도 돈이 이렇게 많이 드나 싶어 다소 무거운 발걸음으로 귀가했다.

남편한테 괜한 투정을 부려봤다.

"여보, 이 수채화 도구가 뭔지 가격대가 세게 나오네? 조금 더 싼 거 사려고 고민고민 하다 사오느라 늦었지 뭐야."

"갖고 싶었던 물감이랑 산 거랑 가격차가 얼마나 나는데?"

"어어... 대략5천원 정도?"

"....."

"그래서 미술 하려면 돈이 많이 든단 말이 맞나봐. 중학교 때 미술 이어하려면 이렇게 돈 들어가는 일 많을까봐 엄마한텐 말도 못하고 미대 진학 꿈은 접었었드랬다, 나?"


"내가 당신 말 들으면서 해주고픈 이야기가 떠올랐어."

"뭔데?"

"당신, 지금 누구랑 살아?"

"....??"

"당신은 지금 엄마랑 사는게 아니라 나랑 살잖아. 나는 당신이 하고 싶은거 사는데 반대 없어. 고작 5천원씩 차이나는걸로 너무 고민하지 말고 원하는거 사~"


와, 우리 남편 입에서 나온 말 맞나? 내가 맨날 구두쇠라 놀릴만큼 아껴쓰는 남편인데 그저 내 취미생활에 드는 비용을 아까워하지 않고 독려해주다니. 새삼 감동의 파도가 밀려왔다. 자주 드는 생각은 아닌데, '이 남자랑 결혼하길 잘했네' 라는 마음까지 올라왔다.


미리 물감을 파레트에 짜서 굳혀놓으면 물감이 덜 줄어든다기에 하나씩 열어 짜며 컬러를 확인했다. 아무래도 18색으론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남편도 괜찮다는데 다음번엔 없는 물감색깔 사러 화방 한번 다시 들러야겠다 생각하며 입꼬리가 올라갔다.


남편의 취미생활은 일렉기타 연주다. 4년 전에도 시작했다 놔버린 적이 있어 큰 기대 안했는데 웬걸 이번엔 2년반을 꼬박 이어가고 있다. 처음엔 회사생활 스트레스가 심한 그가 기타로 해소하는것 같아 좋았다. 기타레슨도 내가 받으라 했고 세션끼리 합주해봐야 느니까 밴드에도 들어가라 권유했던 나다.


그런데 계속 귀카피한답시고 집에서도 내내 이어폰만 끼고 있느라 가족과 대화가 잘 되지 않는 그가 점차 얄미워졌다. 게다가 취미생활인데 앰프를 하나 둘씩 자꾸 사들이는 남편이 못마땅했었다. 처음엔 헤드셋도 안끼고 그냥 쳐대서 정말 고막이 괴로울 정도였다.


나도 밴드 보컬 했던 적이 있고 버스킹 다닐때 내 뒤에서 울려퍼지던 일렉 기타 사온드를 사랑했었다. 하지만 야외도 아니고 방음처리된 방도 아닌 거실에서 매일 왕왕 기타줄을 쳐 대는 남편을 보면 마치 말 안 듣는 고딩 아들같아 속앓이 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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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헤드셋도 끼고 연습시간대도 밤9시에서 좀더 이른 시간대로 옮겨서 나름 평화전선을 유지하고 있는 요즘이다. 요 며칠 계속 핸드폰을 뚫어져라 보고 있길래 뭐하나 궁금해서 물어봤다.


"뭘 그리 열심히 보고 있어?"

"응~ 앰프 사려고."

"뭐? 집에 앰프가 벌써 서너대나 있는데 또 무슨 앰프야"

"어 그건 각각 일렉이랑 베이스 전용이니까 이번에 산 야마하 통기타를 위한 앰프가 필요해서"

"얼만데?"

"싼건 8만원이고 최신건 10만원댄데 이게 더 이뻐"

"......."

"그리고 오디오 인터페이스도 같이 살라고~"


헉... 이 남자 취미 생활 비용이 만만치 않게 비싸다. 기타에 앰프에 기타 액세서리에...하아. 가족한테 들어가는 건 아끼면서 기타엔 너무나 애정이 넘쳐흐르는 그에게 가끔 서운하다. 말없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 표정을 읽었는지 남편 왈.


"나도 이렇게 내 취미생활에 들어가는거 알아서 살테니까, 당신도 취미로 하는 미술도구 사는데 너무 고민..안해도 돼."


아뿔싸, 이것이 바로 남편의 빅픽쳐인가?

일전에 받았던 감동이 피쉬식 소리를 내며 김이 빠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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