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도 오늘도 애들 재우고 난 뒤 11시 넘어서 그림 그리기 시작. 마무리가 자꾸 1시를 넘긴다.
그림이 뭐길래, 밤샘 업무도 그만두겠다고 한 마당에 이리 미쳐 그리고 있을까? 나에게 물어봤다.
주말은 정말이지 일상 속 루틴을 반복하기 어려운 이틀이다. 특히 남편은 조기축구며 기타 배운다고 연이틀 집에 안 계시니 육아는 홀라당 내 몫이다. 치우고 뒤돌아보면 또 산더미 같은 집안일에 도무지 애들이 깨어있는 시간 동안엔 나만의 퀘렌시아를 찾기가 어려웠다.
그나마 요즘 습관이 좀 건강해 졌는지 스트레스 받으면 먹는 버릇이 조금씩 사라지고 그 자리에 '걷기'와 '그리기'가 들어왔다.
수채화를 그린지도 어언 20여일. 중간에 설 명절과 제주2주살이가 끼는 바람에 매일 앉아 그리진 못했지만 그래도 그렸다.
이번주는 사실 온라인 레슨 쉬면서 작품 하나 그려보는 주간이었는데 나는 그간 대여섯가지의 미션이 밀려서 퐁당퐁당 몰아서 하고 있었다.
낼 부턴 펜 드로잉 들어가는 주차라 더 이상 밀리기 싫은 마음에, 예의 악바리 근성이 다시 돋아나와서 이리 밤늦게까지 그리나? 다시 내게 물어본다.
그랬더니 내가 나에게 되묻는다.
만약 내가 어려서 입시미술을 접했다면 지금 이렇게 미술에 다시 빠졌을까?
이번 컬러섹션 I 에서 내가 진도를 빼기 힘들었던 건 지루한반복이었다. 사실 제주도에도 수채도구를 가져갔기 때문에 맘만 먹으면 언제든 그릴 수 있었다. 난 여행을 갔던게 아니고 마침 날씨도 궂었기 때문에 집에서 시간을 보내기에 그림은 적합했을터. 하지만 내가 15일 동안 붓을 든건 두어번 뿐. 내가 듣는 온라인 드로잉 클래스는 저엉말 기초부터 탄탄하게 밟아나가는 과정이다.
나는 풍경화 그리기를 선호하는 편이다. 학생 때 사생대회도 자주 나갔었는데, 수채화의 물맛 이런건 모르고 그저 눈앞에 풍경이 좋아 담기에만 바빴을 뿐이었다.
그런 나에게 주어진 미션들은
Day 1. 수채화란?
Day 2. 선 그려보기
Day 3~4. 명도 1,2
Day 5. 육면체 그리기
Day 6. 채도
Day 7. 원기둥 그리기
Day 8. 혼색 색상환표
Day 9~10. 혼색표 만들기
Day 11~12. 주변 정물 그리기
Day 13~14. Wet on Wet, Wet on Dry
Day 15. 사과 정물 그리기
그릴라고 찍어놓고선 스케치만 하고 그만 먹어버린 사과.....그릴 엄두를 내는데 이틀이 걸린 사과 정물..
색상환표와 혼색표에서부터 살짝 질려서 '색 섞는걸 왜 하고 있어야 해? 내가 뭐 미대입시 준비하나?' 난 취미로 배우려고 했는데 자꾸 나를 하드캐리하시는 선생님께 원망스런 마음도 들었다.
그저 그림이 좋아 멋도 모르고 미대 간다 할때는 수채화 물맛도 다양한 기법도 몰랐다. 그저 종이 뚫어질때까지 칠할 뿐. 하지만 그림을 그릴수록 명확해졌다.
'아~ 나에겐 그 지루한 반복의 시간이 필요했구나'
내가 지루하다고 하기 싫었던 기법들 덕에 나의 사과가 보다 입체감있게 살아날 수 있었다.
근데, 내가 이걸 대학가기 위해 그렸으면 이렇게 밤늦게까지 그리고 있었을까? 그건 미지수다. 남이 하라고 하라고 하는건 하기 싫어하는 나니까 아마 진즉에 그만뒀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