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2주살기하러 오기 전, 온라인 드로잉 클래스의 컬러섹션1이 시작되었다. 수채화 물 조절 연습도 해보고 명도 연습도 해보고 풍경화도 그리며 그 물맛에 푹 빠졌다. 설 지나고 다시 시작하는 컬러섹션 과제를 놓치고 싶지 않아 제주까지 물감파레트며 물통, 붓 등 수채도구를 바리바리 싸들고 왔다.
지난 일주일, 한번도 수채화의 '수' 자도 못 건드려봤다.
일단 제주의 바람소리에 적응하는데 3일이 걸렸고, 나혼자 남몰래?추진했던 가족 민주화 정착에 5일이 걸렸으며 아직 갈등 기본값은 진행 중이다.
애들이 오늘은 밖에 안 나가고 싶다고 선언하길래 오늘이 날이다 싶었다. 가고자 하던 지점에 대한 아다리가 계속 안 맞았던 우리 부부는 합의점에 도달했다. 남편 혼자 올레를 걷고 우리는 집에서 놀다 그날의 올레코스 종점으로 버스타고 가서 만나기로.
여하튼 드디어? 남편이 출가했고, 우리는 자유(?)시간을 맞아 각자의 물컵에 물을 담고 책상 앞에 옹기종기 모여앉았다. 내가 못하고 지나친 수채화 과제는 4개! 첫번째 것부터 영상을 열어봤다. 고작 1주일 쉬었는데 잘 안 들어왔다.
제주 와서 내 마음 사전에 '여유' 라는 단어를 겨우겨우 추가해 넣었었다. '가족시간' 이나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 와 같은 문구들도 추가된 상태다. 그런데 타인들이 이미 올려놓은 과제 사진들을 보자 '잘하고 싶어!' 라는 마음이 올라오며 장기 기억 통로로 가고 있던 '조바심'이라는 단어가 순식간에 수면 위로 떠올랐다.
나의 미니미 혹은 그림자 같은 우리딸의 푸념도 크게 한 몫했다.
"엄마, 난 그림 못 그리나봐! 색이 왜 이렇게 안 나와!!"
"이렇게 잘 하고 있는데 왜 그런 생각을 해~"
"저 영상 속 선생님이 너무 빨라! 난 느려! 못해!"
사실...내 마음도 똑같았다. '아~ 못 따라가겠어. 똑같이 그리고 싶은데 못 그리겠어! 아 못해 못해!'
그런 대화와 생각을 동시에 나누는 동안 내 파레트 속 색깔은 필요 이상으로 짙어졌다 옅어졌다를 반복했다. 농도 조절도 잘 안되고, 붓으로 물결 그리는 선이 자꾸 뭉툭해져서 내 눈이 점점 가자미 눈이 됐다.
그림은 내가 좋아해서 시작한건데, 왜 물감색이나 물 조절 못하는 나를 탓하고 있는거지?순간 딸과 눈이 마주쳤는데,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 사이 드로잉 참고영상이 끝났고 우린 각자 느낌대로 마저 그려보기로 했다.
원색에 그 보색을 섞으며 점점 변하는 색을 바라보고 있자니 요즘 계속 바라봤던 제주의 바닷빛깔이 절로 떠올랐다. 모든 물빛이 다른 빛깔로 반짝이던 함덕, 세화, 하도의 바다들.
그 물결을 바라보며 마냥 좋아지던 내 기분을 떠올리며 조색하고 채색했다.
어머머! 어느새 내 하얗던 종이가 빨갛고 파아란 물결로 넘실대고 있었다.
물감은 물감이요 물은 물인 것을 거기에 내 찌뿌둥한 마음을 섞어 칠했을 땐 색이 더 탁한 느낌이었다. 기분좋음을 섞어 칠하니 물결 꼬리 모양도 더 이쁘게 동그래지고 종이도 덜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