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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앝 Jul 19. 2020

맞춤옷처럼 꼭 맞는 축사를 위해 2

주례 없는 결혼식의 주례, 축사

가까운 이의 결혼식 축사 준비로 막막하신 분들께 경험담과 예시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며.




 진행하던 독서 모임에서 4쌍의 커플이 나왔다. 한 쌍은 올해 4월에 결혼했고, 또 한 쌍은 올해 11월에 결혼할 예정이다. 그리고 오늘 2020년 7월 18일, 다시 한 쌍의 커플이 혼인 서약을 했다. 이 정도면 독서모임을 빙자한 사랑의 유람선이다. 의외로(?) 이들 모두 여전히 책을 읽고 있다. 함께 일군 모임임에도 관계와 지적 욕구를 모두 채운 모임을 성사시킨 것 같아 혼자서 가끔 뿌듯하다.


 오늘 반지를 나눠 낀 커플의 축사를 부탁받았다. 부부에게 영원히 기억될 날에 축하의 말을 직접 전할 수 있다는 건 분명 영광스럽고 고마운 일이다. 따뜻해지는 마음과 별개로 때마다 부담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더구나 주례 없는 결혼식이 많아지면서 예전의 주례 자리에 축사가 들어가 묘한 무게감이 느껴진다. 정보가 많으면 좀 더 쓰기 쉬워질까 싶어 화상 대화 툴인 Zoom까지 동원해 인터뷰도 했었다. '식순은 어떻니', '축사에 어떤 내용들이 담기길 바라니', '데이트는 무얼 했었니', '무엇이 비슷하고 다르니', '어떤 대화를 많이 나누니', '처음 만날 때와 지금 서로 무엇이 달라졌니' 결혼식 축사를 준비하는 분들께 전한다. 인터뷰 한 시간 해도 막막하긴 마찬가지랍니다.


 혼란한 머릿속을 정리하고자 축사의 목표를 정했다. 한놈만 조진다. 신부 한 명만 만족시키자.

 다 작성하고도 혹시 지루하진 않을까, 유머가 없어 재미없진 않을까, 뻔한 소리이지 않을까 만 가지 걱정을 늘어놓았다. 불안감에 총 12명의 피드백을 받아 아래와 같은 편지를 완성했다. 성심껏 피드백 해준 친구들 덕분에 초고보다 훨씬 담백한 축사가 나왔다. 고마워라.


 신부의 눈가가 그렁그렁해진걸 보니 목표는 이룬 것 같아 안심한다. 번져버린 비싼 화장에는 사과한다.


 안녕하세요. 앞선 인터뷰에서 두 분이 독서 모임에서 만났다고 얘기해주었는데요. 제가 그 모임을 열고 진행한 사랑의 큐피드입니다. 덕분에 오늘 귀한 시간 내서 와주신 귀빈 여러분을 대신해 축하의 말을 직접 전할 수 있어 기쁩니다.

 제가 봐 온 신부 ㅇㅇㅇ 양은 밝고 긍정적인 사람입니다. 무엇보다 애정표현과 미안하다는 말을 아낌없이 할 줄 아는 친구입니다. ㅇㅇㅇ 양이 제게 ㅁㅁㅁ 군과 다툰 속내를 털어놓은 적 있습니다. 듣다가 "너가 잘못한 것 같다!"라고 얘기해줬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듣자마자 ㅇㅇㅇ 양이 ㅁㅁㅁ 군에게 달려가 사과를 하고 웃으면서 돌아왔습니다. 이 모든 게 5분 정도 걸렸을까요? 이 커플은 결혼생활에서 다툼이 있더라도 이렇게 금방 극복해낼 것입니다.

 신랑 ㅁㅁㅁ 군은 조용하지만 생각이 깊은 사람입니다. 독서 토론이 끝나고 필기한 노트를 봤는데, ㅁㅁㅁ 군이 한 발언을 제가 특히 많이 적어두었더라고요. ㅁㅁㅁ 군은 그만큼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다양한 각도로 깊이 생각할 줄 아는 분입니다. 결혼 생활에서 생겨나는 그 어떤 높은 파도도 이런 사려 깊은 태도로 잘 넘겨낼 것입니다.

 제가 아직 미혼이라 부부에 관해 할 수 있는 조언이 없습니다. 대신 오랜 결혼생활을 이어오신 저희 부모님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어느 날 저희 어머니가 아버지께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영감은 요즘 어떻게 지내?"
 매일 함께 있는데 좀 어색한 질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아버지가 어떻게 지내는지는 어머니가 누구보다 잘 알지 않나 싶었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말씀하셨어요.
 "그러게. 요즘 괜히 울적할 때가 있어."

 부부란, 사랑이란, 관계란, 어쩌면 서로의 안부를 궁금해하고 물어봐 주는 것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매일 함께 있어도 각자 한 사람의 개인이기에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긴 어렵습니다. 상대방에게 걱정을 안길까 봐 말하지 못하는 일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여러 겹 쌓일 때 오해가 생겨나기도 하죠.

 이때, '가장 익숙한 사람이지만 오랜만에 만난 사이처럼 안부를 물어봐 주면 서로에게 의지하고 지지받는 좋은 계기가 되겠구나'라고 부모님의 대화를 보면서 느꼈습니다. 제가 배운 것을 이제 막 시작하는 부부에게 돌려드립니다.

 서로에게 매일 물어봐 주시기 바랍니다.
 "겸둥이는 요즘 어때? 잘 지내?"


 공연 기획 전공자가 1년 8개월을 기획한 결혼식 다운 신선한 결혼식이었다. 부부가 오늘의 예식처럼 살아갈 것을 예감한다.


- 20.07.18


또 다른 축사 <오랜 친구 앞에서 읽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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