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리스펙 하는 사람들의 특징:
1. 뒷담화를 하지 않는다.
2. ‘~이다’, ‘~해야 한다’와 같이 단언하지 않는다.
3. ‘아 그럴 수도 있구나’ 마인드를 갖고 있다.
4. 전력으로 경청한다. 우주에 단 둘이 있다고 느낄 만큼.
5. 답을 주지 않고 답을 이끌어 낸다. 질문을 통해.
- 더 떠오르면 업데이트를 해보는 걸로.
[사족]
개인적으로 존중이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단어가 조금 무겁달까?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조금 부담되는 무게다. 대신에 리스펙이라는 단어를 쓴다. 힙합에서는 '리스펙'이라는 단어를 자주 쓰는데, 존중보다 가볍게 느껴지면서도 존중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서 이 용어를 주로 쓴다.
어느 날 문득 내가 리스펙 하는 사람들을 떠올려 보았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에 나오는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그들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내가 리스펙을 하고 있었다. 크게 다섯 가지 이유다.
1. 뒷담화를 하지 않는다.
뒷담화는 고도의 지능을 요한다. 존재하지 않는 대상에 대한 이야기이니 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상상하고 의견을 나누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알이 아니다. 인간의 뇌를 지금처럼 발달시키는데 뒷담화가 혁혁한 공을 세우지 않았으려나? 어쩌면 인류가 모든 동물 중에서 가장 높은 지능을 갖게 된 원동력 중 하나가 뒷담화이지 않을까 싶다. 근거는 없다. 나의 뇌피셜이다.
하지만 뒷담화가 일반화되면서 이제는 뒷담화를 하지 않는 것이 더 높은 차원의 지능을 요하는 것 같다. 뒷담화가 불러올 후폭풍을 예견하면서 그것을 자제하는 능력을 요하니 말이다. 어떤 모임이건 그 자리에 없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꺼려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보면 믿음직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얘기도 다른 자리에서는 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고도의 지능과 믿음직스러움을 보이는 그들을 리스펙 할 수밖에 없다.
2. ‘~이다’, ‘~해야 한다’와 같이 단언하지 않는다.
1890년대에 당시 이름을 날리던 과학자들이 다음과 같이 단언했다. "물리학에서는 더 이상 새로운 것을 발견할 일이 없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막스 플랑크를 시작으로 한 양자역학 등 새로운 물리학 이론들이 쏟아져 나왔다. 단언의 대가는 민망함이었다.
임마누엘 칸트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인간은 세계를 정확하게 인식할 수 없음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우주 전체에서 인간이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의 합이 약 95%다. 인간이 우주를 안다고 말하기 민망한 수준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언가를 단언한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 버틀랜드 러셀의 표현을 빌리자면 "무식한 사람은 자기 확신이 강하고, 현명한 사람은 의심이 강하다"라고도 할 수 있다. 리스펙 하는 사람들이 단언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3. ‘아 그럴 수도 있구나’ 마인드를 갖고 있다.
개그맨 유세윤 씨의 인스타그램 프로필에는 "아구럴수도있겠당"이라고 적혀 있다. 군대에서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봤을 때만큼의 강렬함이 느껴졌다. 관점의 전환이 일어났다. 틀린 게 아니고 다른 거라고. 내가 리스펙 하는 사람들의 관점을 갖게 된 것이다. 그들은 이런 말을 주로 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나랑 다른가 보지". 내가 리스펙 하는 사람들은 '아 그럴 수도 있구나'의 마인드를 갖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4. 전력으로 경청한다. 우주에 단 둘이 있다고 느낄 만큼.
성 추문이 있기 전까지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대통령으로 꼽혔던 사람이 빌 클린턴이다. 그를 실제로 만난 사람들이 하나같이 말했던 그의 매력은 '경청'이었다. 단순한 경청이 아니었다. 우주에 단 둘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의 경청이라고 했다. 내가 리스펙 하는 사람들도 이러한 느낌을 준다. 세상 모든 것이 배경화면으로 바뀌고 우리 둘만 존재하는 듯한 느낌을 만들어낸다. 전력을 다하는 경청을 통해서.
5. 답을 주지 않고 답을 이끌어 낸다. 질문을 통해.
나의 믿음 중 하나가 모두가 이미 답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모두가 부처가 될 수 있는 불성을 갖고 있다는 주장과 비슷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부처가 '깨어난 자', '깨우친 자'이듯 내가 답을 갖고 있음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불교에서는 '화두'를 던지는데, 일상생활에서는 '질문'이 이러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순간마다 나에게 큰 깨달음을 준 사람들은 답을 주지 않았다. 그저 질문을 던졌다. 내가 고민해야 할 만한 적절한 질문을. 그를 통해 성장했다. 아마도 내가 리스펙 하는 분들도 동일한 과정을 거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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