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1000권을 읽은 사람이라는데...

by 캡선생
IMG_0595.jpeg


최근에 만난 분이 이렇게 말했다.

"제가 책을 1000권 이상 읽어서요."


맥락과 상관없는 말이었는데 무언가

내가 놀라주길 원하는 눈치였다.


놀랍지도 않고 연기하기도 싫어서 그저 담담히 들었다.

순간 분위기가 싸했지만 대화를 그럭저럭 이어나갔다.


독서량으로 내가 놀라려면 10만 권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런 사람은 다치바나 다카시 같은 극소수이고.

사실 권 수에 무슨 그리 대단한 의미가 있나 싶다.


- 원만한 대화를 위해 연기학원이라도 다녀야 하나...


[사족]


내가 잘 못하는 게 있다. 빈말. 정확히 말하면 마음에 없는 말을 잘 못한다. 칭찬하고 싶은 마음이 1이라도 있으면 그것을 크게 부풀릴 수는 있는데 0이면 1로 넘어가는 것조차 힘들다. 모임에서 때때로 빈말을 해야 할 순간을 맞닥뜨리게 되면 난감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최근에 이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경제/경영 관련 독서모임이었는데 참여자 중 한 분이 주제와 상관없이 본인이 다독가임을 어필했다. 본인이 읽은 책이 1,000권이 넘는다고 말하고 잠시 침묵했는데, 이때 참여자들이 놀라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나 또한 책을 수천 권 읽었고, 독서모임을 하다 보면 수천 권을 읽은 분들은 종종 보기에 전혀 놀랍지가 않았다. 놀랄 수가 없었다. 빈말을 할 수 없었다. 그냥 묵묵히 경청을 하는 것이 나의 최선이었다. 뻘쭘한 침묵의 3-4초가 지나고 그분은 다시 주제로 돌아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영어에는 'fishing for compliments'라는 표현이 있다. 직역하면 '칭찬을 낚다'이다. 말 그대로 칭찬을 받기 위해서 미끼가 될만한 말을 던지는 것이다.


위 일화에서 "저는 1,000권을 읽었는데..."가 일종의 미끼다. 이때 누군가가 미끼를 물지 않으면 모두가 민망해진다. 마음 착한 분들은 속는 셈 치고 이러한 미끼를 덥석 물고 칭찬을 해준다. 나는 그렇게 하기 힘들다. 어렸을 때 나 또한 칭찬을 낚아봤었기 때문이려나? 그런 분들을 보면 부끄러운 과거의 내가 보여서 더더욱 반응하기 힘들다. 또한 미끼를 계속 물면 그러한 습관은 더더욱 고치기 힘들다는 경험 때문에 더더욱 반응을 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이기적이면서도 이타적인 이유랄까?


미끼를 잘 물지 않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직접적으로 칭찬해 달라는 부탁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저에게 칭찬을 받고 싶다면 미끼 대신 부탁을 해주시길 바라며.


<같이 보면 좋은 책>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1497617



사진: UnsplashGülfer ERGİN



keyword
이전 03화못하는 것? 안 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