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형 인간과 번역형 인간

by 캡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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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통번역을 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

통역형 인간과 번역형 인간이 있다고.

통역은 두뇌회전이 빠르고 순발력이 좋은 사람
번역은 깊이 있게 생각하고 꼼꼼한 사람

이렇게 필요한 재능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말과 글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둘 다 잘하는 사람도 물론 있지만
대부분 한쪽에 특화된 경우가 많은 것 같다.

- 둘 다 잘하고 싶은 1인


[사족]


군대에서 영어 통번역을 했다. 그때 내가 느낀 점은 통역과 번역이 요하는 능력이 다른만큼 이에 맞는 사람 또한 다르다는 것이었다. 통역할 때 가장 하면 안 되는 것 중 하나는 3초 이상의 침묵이다. 통역을 해야 하는 사람이 3초 이상 침묵하게 되면 모두의 신뢰를 잃게 된다. 그다음부터 아무리 통역을 잘하더라도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통역가를 믿지 못하게 된다. 제대로 듣지 못했으면 물어봐야 하고, 통역할 말이 제대로 떠올리지 않는다면 가능한 단어로 최대한 통역을 하고 부연설명을 해야 한다. 통역가에게 침묵은 금이 아니라 똥이다. 통역가는 두뇌회전이 빠르고 순발력이 좋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번역가는 이와 다르다. 두고두고 남는 책이나 문서에 남기는 작업이기에 정확도가 중요하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읽는 이 가 오해하지 않게 정확하게 번역을 해야 한다. 필요에 따라서는 부연 설명도 꼼꼼하게 덧붙여야 한다. 깊이 고민하고 꼼꼼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는 단지 통번역에 국한되는 것 같지는 않다. 말과 글도 비슷하다. 말은 흐르고 글은 쌓인다. 말을 잘하는 사람은 유려하고,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단단하다. 물론 둘 다 잘하는 사람도 있지만, 한쪽에 특화된 경우가 대다수인 것 같다. 물론 잘한다는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지만 내가 만나본 상당수의 사람은 확실히 한쪽에 기울어 있었다.


나는 전형적으로 말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쓰기보다는 말을 했고, 과제를 하더라도 발표를 도맡았다. 말을 잘한다는 자신감도 있었지만, 글을 못쓴다는 두려움도 한몫했던 것 같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글을 쓰기로 다짐을 했다.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 그중 하나는 내가 하는 일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서는 영상매체, 음성매체, 활자매체를 통해야 했는데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다수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활자매체가 가장 적당했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쓰다 보니 알게 되었다. 말과 글은 상호보완적인 성격이 있다는 것을. 글을 꾸준히 쓰다 보니 말을 할 때 조금 더 신중해졌다. 글을 한 자 한 자 쓰듯 말을 한 음 한 음 뱉게 되었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나의 글을 많은 사람들이 잘 읽힌다고 이야기해 주는데 그것은 아마도 말하듯 써서 그러지 않나 싶다. 글만 써온 사람들에 비해 나의 글은 조금 더 말에 가깝다. 왜냐하면 나는 오랫동안 순도 99% 말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말과 글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보완재적 성격을 갖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잘하는 것에만 몰두할 수도 있고, 못하는 것을 보완할 수도 있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나의 선택은 말과 글의 상호보완적 특성을 고려하여 균형을 잡아나가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좋은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캡선생의 신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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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Hannah W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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