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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Apr 21. 2022

하루 24시간 BBC를 듣다

듣기(Listening)

BBC 라디오를 하루 24시간 들었다


어느 정도 영어에 자신감이 붙었을 때 영국에 가게 되었다.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당황스럽게도 영국인이 하는 말을 제대로 못 알아듣는 나를 발견했다. 캐나다에 있을 때는 스스로 원어민처럼 듣고 말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영국에 오니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것만 같았다.


그래서 결심을 했다. 초심으로 돌아가 듣기부터 다시 시작해 보자고. 영국에 머물 수 있는 3개월 동안 하루 24시간 영국 영어를 들어보자고. 그렇게 해서 BBC 라디오를 하루 24시간 들었다. 무엇을 하건 내 귀에는 BBC 방송만 들리는 환경을 만들었다. 방 안에 있는 라디오는 BBC만 나오게 설정을 하고 밥을 먹을 때나 화장실에 갈 때 혹은 외출할 때는 늘 이어폰을 통해 BBC 라디오를 들었다. 잠을 잘 때도 라디오는 끄지 않았다.


사진 출처: bbc.co.uk


처음에는 주문처럼 들리던 영국영어가 어느 날부터 서서히 들리기 시작했다.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맥락상 "저 상황에서 저런 발음을 하는구나"하는 식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캐주얼한 프로그램의 경우 출연자가 퇴장할 때 '치어스 마이트(Cheers mate)'를 반복하곤 했는데, 내가 편의점에서 물건을 구매하고 나갈 때 직원도 동일한 발음을 하는 걸 보니 '땡큐(Thank you)'를 대신하는 말이구나라고 파악하는 식이었다.


목표로 했던 3개월이 채 되기 전에 웬만한 영국 영어가 다 들리기 시작했다. 물론 뜻을 모두 알게 된 것은 아니지만 영국 영어라는 소리에 내 귀가 익숙해졌음을 알게 되었다. 듣기가 어느 정도 축적되었다고 판단이 되어 바로 이어서 말하기-읽기-쓰기 순으로 영국 영어를 익혀 나갔다.


듣기 단계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점은 다음과 같다.



1. 뜻을 알려고 하기보다 음을 알려고 노력해라


많은 사람들이 듣기 공부를 할 때 "아무리 들어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며 좌절하곤 한다. 이렇게 좌절하는 이유는 '들으면 그것이 무슨 뜻인지 바로 알아야 한다'는 강박이 작용해서다. 그렇다 보니 듣는 내용을 텍스트로 확인하는 즉 듣기와 읽기를 병행하게 되고 이 때문에 듣기 공부가 버거워지는 것이다.  


듣기 단계에서는 뜻에 집착하기보다는 음악을 듣듯이 저런 식으로 소리를 내는구나에 집중을 하는 것이 낫다. 이런 마음가짐이라야 오랜 시간(심지어 하루 24시간) 외국어에 나를 노출시킬 수 있다. 팝송을 들을 때 그것이 무슨 뜻인지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스트레스 없이 노래를 즐길 수 있듯이 말이다.


2. 모국어를 최대한 듣지 말아야 한다  


영국에 가기 전에 캐나다에서 6개월 정도 머물렀다. (그래서 총 어학연수 기간은 9개월이었다) 그 당시 스스로 목표한 것이 한국어로 된 '노래' '영화' '드라마' 등의 콘텐츠를 일절 보고 듣지 않는 것이었다. 확실히 큰 효과를 보았다. 캐나다를 떠날 때 오랜만에 듣게 된 한국어가 영어보다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가 머물렀던 캐나다 캘거리는 한국인 유학생이 유독 많은 편이었다. 어학연수원에서 배정한 학원에 처음 갔을 때 한 반에 12명 중 11명이 한국인 학생이어서 내가 강남에 있는 YBM에 온 것인지 캐나다 어학원에 온 것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어렵게 캐나다에 온만큼 독한 마음을 먹고 한국인과 대화를 할 때도 늘 영어를 사용했다. 그러다 보니 한국인 친구들도 나를 외국인 취급을 하면서 그들끼리는 한국어를 써도 나에게는 영어를 사용했다. 초반에 이런 나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했던 한 친구가 나의 송별회 때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송별회에서는 예외적으로 한국어를 사용했다)


저는 캐나다에 머문 지 1년 가까이 되었는데, 맨날 한국 드라마 보고 한국 음악을 듣다 보니 아직도 영어가 잘 안 들려요. 저도 형처럼 독하게 영어만 들었어야 하는데 지금 와서 보니 아쉽네요


해외 어학연수는 영어 듣기에 매우 유리한 상황이다. 반면 한국에서 공부하는 경우 24시간 영어 듣기가 불가능할뿐더러 어쩔 수 없이 모국어에 지속적으로 노출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럴 때는 불가피한 상황을 제외하고 모든 상황에서 한국어가 아닌 영어를 들을 수 있도록 환경 설정을 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집에 와서는 영어로 된 콘텐츠만 본다든지 아니면 출퇴근 시 팝송만 듣는다든지 하면서 말이다. 나 또한 지금도 매일 출근길에 중국어를 듣고 있다. 


3. 미드보다는 뉴스, 뉴스보다는 오디오북


한때 미드 '프렌즈(Friends)'로 영어 공부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드라마는 그 나라 사람이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살아있는 언어를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외국어 공부에 매우 유용하다. 다만 이는 '고수'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미국 시트콤 <프렌즈>, 사진 출처: wikipedia


드라마의 경우 원어민을 대상으로 하는 콘텐츠이다 보니 일단 말이 빠르다. 초보자가 듣기에 적당한 속도가 아니다. 게다가 '유행어'나 '속어' '줄임말' 등 알아듣기 힘든 말이 난무하고 배우들의 발음도 캐릭터에 따라 불분명한 경우까지 있어 듣기 공부에 활용하기에 최적의 콘텐츠는 아니다. (한국 드라마도 특정 배우의 발음을 잘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드라마보다는 조금 더 정확한 발음과 표준 어휘를 구사하는 뉴스가 듣기 공부에는 더 나은 매체다. 뉴스의 또 다른 장점은 매일 반복되는 어휘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뜻을 몰라도 맥락을 파악하기에 더 유리한 점이 있다.


이러한 뉴스보다 더 나은 매체가 있다. 바로 오디오북이다. 오디오북은 말 그대로 청각 매체이기 때문에 듣는 사람이 최대한 잘 알아들을 수 있는 발음과 속도로 말을 한다. 그리고 후속 편에서 이야기를 하겠지만 '말하기'와 '읽기' 단계에도 큰 도움이 되는 매체이므로 오디오북은 외국어 공부에 있어서 필수적인 매체다. 개인적으로 아마존의 Audible을 잘 이용했는데 '30일 무료' 이벤트와 같이 부담 없이 쓸 수 있는 프로모션도 자주 하기 때문에 부담 없이 쓸 수 있다. (광고가 아닌 내돈내산이다)



사진 출처: Amazon.com


'듣기'는 언어 공부의 시작점이다. 시작점에서 좌절하거나 흥미를 잃으면 이어질 '말하기' '읽기' '쓰기'까지 나아갈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듣기' 단계에서는 너무 많은 욕심을 내기보다는 일단 꾸준히 영어에 나를 노출시켜 영어와 친해지자라는 목표를 갖고 공부하는 것이 좋다.


듣기가 축적이 되었다면 이제 말하기로 넘어가 보자.



Photo by Jackson Simme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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