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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인구는 줄지만, 서울국제도서전은 매진인 이유?

by 캡선생

동생이 미리 예매해준 덕분에 2025 서울국제도서전 첫날에 편하게 다녀왔다. 예전부터 서울국제도서전의 명성(?)은 익히 들어왔다. 독서모임을 오래 해온 터라, 이맘때쯤이면 주변 독서인들의 SNS 피드는 온통 도서전 이야기로 가득했다. 그럼에도 나는 ‘굳이 도서전까지?’라는 생각에 늘 거리두기를 했는데, 이번에는 동생의 제안 덕분에 처음으로 가보게 되었다.


현장에서 가장 먼저 놀란 건, 사람의 규모였다. 평일 낮이라 비교적 한산할 줄 알았던 코엑스는, 저가항공사의 만석 비행기처럼 북적였다. 동생 말로는 주말엔 이보다 더 혼잡하다고. 매년 도서전 시즌이면 나오는 “독서 인구는 줄지만, 서울국제도서전은 사람들로 가득”이라는 헤드라인이 왜 관성적으로 반복되는지 체감할 수 있었다. 오늘은 그 현장에서 내가 받은 세 가지 인상을 남겨본다.


1. 독서라는 서브컬처, 독서인이라는 매니아


왜 독서 인구는 줄고 있는데 도서전은 갈수록 붐빌까?


그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독서 인구가 줄었다고 해도, 서울국제도서전 하나 못 채울 정도는 아니라는 것. 오히려 독서 인구가 줄수록 책에 ‘진심인’ 코어층은 더욱 결집하는 느낌이다. 이들은 해마다 읽는 양을 늘리고, 독서 관련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쉽게 말해, 독서가 ‘오타쿠 문화’처럼 서브컬처화되며, 진성 독자 중심의 매니아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는 얘기다.


이 흐름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최근 10년간 성인 독서율은 꾸준히 하락했지만, 여전히 책을 읽는 사람들의 ‘1인당 독서량’은 유지되거나 소폭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2023년 국민 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학생들의 독서율은 전년 대비 4.4%포인트 증가했고, 독서량은 1.6권 늘었으며, 하루 평균 독서시간도 10.5분 증가했다 (반면 성인의 독서율, 독서량, 독서시간은 모두 하락했다).


즉, 독서가 점점 ‘매니악’해질수록 관련 행사나 커뮤니티의 응집력은 강해진다. 서울국제도서전에 몰리는 인파는, 바로 그 단단한 독서 코어층의 존재를 증명하는 현상이다.


2. 책은 읽는 것이자 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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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전 현장에서 사람들이 몰리는 지점을 따라가다 보면, 어김없이 굿즈가 있다. 오뚜기와 다산북스의 협업 굿즈부터, 거의 모든 부스에서 준비한 볼펜, 노트, 책갈피, 에코백까지. 굿즈는 때로 책에 관심 없는 사람들까지 도서전으로 이끄는 자석이 된다. 평범한 물건도 ‘책’이라는 감성을 한 방울 더하면 특별해 보인다.


이건 카페 인테리어만 봐도 비슷하다. 책을 읽는 사람은 없어도, 책은 늘 비치돼 있다. 데코용이든 사장님의 의도든, 책은 공간을 환기하고 정제하는 상징처럼 쓰인다. 책 관련 굿즈도 마찬가지다. 텍스트보다 그 감성, 분위기를 담고 있어서, 책과 거리가 먼 이들에게도 무의식적인 매력을 발휘한다.


책은 더 이상 단지 ‘읽는 콘텐츠’가 아니라, ‘보는 오브제’로도 작용하고 있다.


3. 메시지보다 메신저


도서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몰린 곳은 어디였을까? 문학동네, 을유문화사 같은 유명 출판사 부스도 인기였지만, 진짜 열기는 ‘사람’이 있는 곳에서 일었다. 유튜버 밀라논나, 팟캐스트 여둘톡 등 작가이자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는 이들의 사인회장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흥미로운 건, 소수 팬층을 가진 덜 알려진 작가들의 부스도 유사한 열기를 보였다는 점이다.


TV의 영향력이 약화된 지금, 모두가 아는 스타보다 ‘누가 말하느냐’에 반응하는 시대다. 출판계 역시 그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민음사 부스에서였다. 사인회도 아닌데 긴 줄이 늘어서 있었고, 줄 앞에 서 있던 사람은 민음사 직원이었다. 유튜브 ‘민음사 TV’를 통해 팬덤을 형성한 그 직원은 독자들에게 사진 요청을 받고 있었다. 이는 출판사 직원이 독자와 저자 사이를 연결하는 새로운 교두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AI가 만든 콘텐츠의 상향 평준화 속에서,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누가 말하느냐’가 더 중요해지는 시대다. 이번 서울국제도서전은, 그 변화를 현장에서 생생하게 체감할 수 있는 자리였다.


비디오가 등장하던 시절, 라디오의 종말을 예측한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라디오는 여전히 살아 있고, 오히려 그 본연의 매력을 유지하며 자신만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책도 마찬가지다. 독서 인구가 줄어든다고 걱정하지만, 텍스트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더욱 단단한 신념으로 그 자리를 지켜낼 것이다.


퇴사 후 뭐하지?

글쓰기, 전자책, 브랜딩까지

회사 없이도 ‘내 이름’으로 살아남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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