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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함은 있지만 NAME은 없는 사람들

by 캡선생

대기업을 퇴사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명함에도 유효 기간이 있다는 사실을.


내가 누렸던 기회와 혜택, 그리고 성과를 냈다고 믿었던 마케팅 프로젝트들은 ‘김용석’이 아닌 ‘삼성의 마케터’였기에 가능했다. 회사의 지원 과 이름이 없었다면 내 이름만으로는 해낼 수 없는 일들이었다. 견고하게 쌓았다고 자부했던 커리어는 퇴사 후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모래 한 톨의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회사 이름이 사라진 순간, 내 이름은 무의미해졌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나를 소개하는 것조차 막막했고, 은행 대출 하나도 쉽지 않았다. 협업을 요청해도 돌아오는 것은 침묵뿐. 명함이 있을 때 숨 쉬듯 당연했던 일 들이이제는 까마득히 높은 벽처럼 나를 가로막고 있었다.


대기업이라는 옷을 벗고서야 비로소 맨몸의 나를 마주했다. 조직이라는 보호막 없이 내 이름만으로 살아가야 하는 두려운 세상이 펼쳐졌다. 윤석철 교수는 이를 ‘네이키드 스트렝스(Naked Strength)’, 즉 ‘본연의 힘’을 확인하는 순간이라 말했다. 그는 교수라는 타이틀이 사라지고 나서야, 학생들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사회에서 자신의 강의에 어떤 가치를 매기는지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나 역시 조직이라는 옷을 벗고서야 비로소 맨몸의 나와 마주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명함의 유효 기간이 끝나고 나서야 날것의 세상을 보게 되었다. 나는 선택해야 했다. 또 다른 회사의 이름을 빌려 살 것인가, 아니면 내 이름의 가치를 스스로 만들어 갈 것인가. 고민 끝에 후자를 택했다. ‘명함 전세살이’를 끝내고, ‘내 이름 자가살이’를 시작하기로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국내외 유수 기업의 브랜드 컨설팅과 마케팅을 해왔음에도 정작 ‘나’라는 브랜드를 고민해 본 적은 없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개인 사업가를 위해 브랜드의 강점과 차별성을 찾아 주면서도 내 이름이 어떤 가치를 가질 수 있는지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단 한 번도 제대로 고민하지 못했다.


나를 알아야 했다. 그러려면 다양한 경험이 필요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지 세상 속에 나를 던져야만 알 수 있었다.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 길을 여행하며, 만 명의 벗을 사귀어라.” 이 오래된 격언처럼 나는 미친 듯이 책을 읽고, 세상을 돌아다니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면서 점차 ‘미지의 나’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본인의 이름만으로도 잘 살아가는 사람들을 하나둘 만나게 되었다. 각기 다른 사람들이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이름’이 곧 ‘키워드’라는 것이었다. 오은영 하면 ‘육아’, 이동진 하면 ‘영화’, 충주맨 하 면 ‘충주시’, 정희원 하면 ‘저속노화’처럼 그들의 이름은 업계에서 강력한 키워드이자 브랜드였다. 송길영 작가가 《시대예보: 호명사회》에서 언급 했듯이, 그들은 자신이 한 일을 TV, 유튜브, 인스타그램, 블로그, 책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투명하게 공유했고, 자신과 비슷한 결의 사람들과 꾸준히 커뮤니티를 형성했다.


반면 나는 구직을 위한 플랫폼 외에는 내가 한 일을 의미 있게 공개한 적이 없고, 커뮤니티는커녕 네트워크도 형성하지 못했다. 차이는 명확했다. 그들은 자신을 드러내고, 세상과 연결되기 위해 꾸준히 기록하고 공유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나에게는 내 이름으로 사람들이 떠올 릴 강력한 키워드가 없었다. 나의 이름은 누구나 읽을 수는 있으나, 그 누구도 의미를 떠올리지 못하는 단순 기호에 불과했다.



<회사 밖 나를 위한 브랜딩 법칙 NAME>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7556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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