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지난주가 올해 가장 많이 치킨이 팔린 주간이 아닐까 싶다. 세 남자가 전국민에게 치킨을 각인시켰기 때문이다. 바로 삼성의 이재용, 현대의 정의선, 그리고 엔비디아의 젠슨 황이다. 이 세 사람은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깐부치킨’에서 손가락에 묻은 양념까지 싹싹 먹어가며 야무진 먹방을 선보였다. 그 직후 깐부치킨은 배달의민족 검색어 1위를 기록했다. (참고로 보도에 따르면 이들이 주문한 메뉴는 ‘순살치킨 2마리’, ‘뼈 있는 치킨 1마리’, ‘치즈스틱’, ‘치즈볼(서비스)’, ‘골뱅이무침’, ‘소맥’이었다.)
보도에 따르면 이번 회동 장소는 젠슨 황의 제안으로 정해졌다고 한다. 하지만 수많은 취재진과 대중의 시선이 집중된 공개 미팅에서 단순히 “치킨이 먹고 싶어서” 무대 근처 식당을 고른 것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글로벌 CEO들은 메시지를 설계하고 이미지를 관리하는 데 매우 철저하다. 따라서 이 식사 자리는 단순한 ‘치킨 회동’이 아니라, 상징적 메시지를 담은 하나의 장면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오늘은 ‘깐부치킨 삼성점’에 대한 나의 뇌피셜이다.
‘깐부’라는 단어는 <오징어게임> 이후 전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영어로는 단순히 Best Friends 정도로 번역할 수 있지만, 극 중에서는 깐부는 소리나는대로 'Gganbu' 그리고 뒤에 “무슨 일이 있어도 모든 것을 함께 나누는 사이(Gganbu always share everything with each other no matter what)”라는 의미로 풀어서 설명되었다. 다시 말해 ‘깐부’는 전세계적으로 단순한 우정이 아니라 ‘절대적 신뢰관계’를 상징하게 되었다.
삼성/현대/엔비디아라는 세 글로벌 기업이 협력의 자리를 가졌는데, 그 장소가 하필 ‘깐부치킨’이었다면, 이미 그 자체로 “우리의 관계는 경쟁을 넘어 신뢰와 협력의 깐부 관계다”라는 상징을 충분히 전한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메시지는 명확하다.(이러한 설명이 부족했는지 러브샷까지 했다)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은 매년 뉴스의 중심이 되지만, 대중에게는 여전히 딴 세계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반면 ‘치킨집에서의 회동’은 전혀 다른 정서를 만들어낸다.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공간에서, 누구나 먹는 메뉴를 함께한다는 것은 강력한 동질감과 호감의 메시지다. 다시 말해 '내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정치인들이 선거철마다 ‘시장 국밥’을 먹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다만 국밥은 다소 연출된 느낌이 강하다면, 치킨은 보다 자연스럽고 친근하다. 어떻게 보면 국밥의 업데이트 버전이라 볼 수 있다. “우리도 다르지 않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가장 효율적인 상징인 셈이다.
패션에서도 흥미로운 장면이 보인다. 젠슨 황은 늘 그렇듯 올블랙에 가죽재킷, 그의 시그니처 룩으로 등장했다. 삼성과 현대의 대표들도 이를 잘 알고 준비했을 것이다. 셋이 모두 블랙을 입는다면 지나치게 통일된 인상을 줄 수 있고, 반대로 너무 화려하면 ‘치킨집 미팅’의 소탈한 콘셉트가 깨진다. 그래서일까. 이재용과 정의선은 화이트 톤의 이너에 차분한 색감의 외투를 매치해 단정한 캐주얼룩을 완성했다. 올블랙의 젠슨 황을 자연스럽게 중심으로 세우면서도, 전체적으로 조화로운 대비를 만든 셈이다. 패션에서 ‘메시지 설계’가 읽힌다.
이들의 주 무대는 ‘코엑스’였다. 코엑스는 한국 무역과 전시 산업의 상징이다. 한국이 수출로 성장한 국가임을 보여주는 공간이자 ‘글로벌 협력의 중심’이다. 그곳에서 세 글로벌 리더가 만난 것은 역사적 맥락상 충분히 설득력 있다.
또한 코엑스 맞은편에는 현대자동차그룹의 신사옥 부지가 자리한다. 논란과 비판을 무릅쓰고 확보한 그 땅은, 현대의 미래 비전을 상징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정의선 회장이 젠슨 황에게 “우리의 미래는 여기에 있다”고 말하기엔 더없이 적절한 자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삼성’이라는 이름 자체가 가진 상징성이다. ‘삼성동’의 ‘삼성(三成)’은 ‘세 마을이 합쳐졌다’는 뜻이고, 기업명 ‘삼성(三星)’은 ‘세 개의 별’을 의미한다. 하지만 외국인에게 이런 한자어의 의미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외국인은 물론 오늘날의 한국인에게 ‘삼성’은 지역과 기업을 동시에 떠올리게 하는 독특한 기호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삼성동 깐부치킨에서 열린 삼성/현대/엔비디아의 회동”이라는 문장은 언어적으로, 상징적으로 완결된 메시지를 만들어낸다.
지금까지의 내용은 교차 검증되지 않은, 순도 99%의 ‘뇌피셜’이다. 하지만 글로벌 리더의 공개적 미팅에는 늘 의도된 메시지가 존재하고, 대중의 해석 가능성까지 감안해 연출된다. 나의 해석이 정독인지 오독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랜만에 사적인 공간에서 연출된 훌륭한 ‘공적 메시지’였다.
퇴사가 고민이라면, 이 책부터 읽어보세요!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75566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