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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 메뉴, 겨울엔 휴업? 70년 살아남은 이유!

by 캡선생

대구에서 3년간 군 복무를 했다. 장교로 복무했기에 근무 시간 외에는 부대 밖, 다시 말해 대구 시내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그 당시에 즐겨 찾았던 맛집 중 많은 곳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맛집들도 있다. 이를테면 매운 찜갈비로 유명한 ‘벙글벙글 찜갈비’, 딸기케이크로 이름난 ‘최가네케익’, 분식의 명가 ‘중앙떡볶이’가 그런 곳들이다.


오늘 소개할 곳도 그러한 시간의 검증을 거친 맛집 중 하나다. 내가 가장 많이 찾았던 추어탕 맛집, ‘상주식당’이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이곳에서 얻은 인사이트 세 가지를 공유해보고자 한다. 오늘은 ‘70년 전통의 맛집’에서 얻은 브랜딩과 마케팅의 힌트다.


1. 언어화할 수 있는 차별화

“성공하려면 차별화가 필요하다”는 말은 한 번쯤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차별화가 구체적인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다면, 고객 입장에서 이를 주변에 전하기가 어렵다. 예를 들어 어떤 식당이 뭔가 특별한 느낌이 있지만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설명할 수 없다면, 지인에게도 “그냥 좀 달라”라고 말하고 끝나게 된다. 입소문이 퍼지기 어렵다. 차별화는 고객의 입에서 입으로 전달될 명확한 언어를 필요로 한다.


상주식당의 차별화 포인트는 분명하다. '단 하나의 메뉴'다. 가게에 들어서면 직원이 인원 수를 묻고, 신발을 벗고 자리에 앉는 순간 10초도 안 돼서 추어탕이 테이블에 올라온다. 단일 메뉴는 용기와 절제가 필요한 선택이다. 장사를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메뉴를 한 가지로 고정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결단이고, 리스크인지.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가장 명확한 차별화다. 선택지를 줄인 대신, 고객의 경험을 압축하고 집중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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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역시 단순히 “맛있다”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맛있다"라고 말하지 않는 식당은 없지 않은가? "맛있다" 그 자체는 차별화가 될 수 없다. ‘어떻게’ 맛있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차별화가 생기고 바이럴이 된다.


상주식당의 추어탕의 맛있음은 ‘맑다’는 말로 표현된다. 추어탕의 진한 국물이 익숙한 나에게 이곳의 맑고 투명한 국물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마치 시래기국처럼 깔끔한 느낌이 난다. 함께 나오는 백김치와 함께 먹으면 그 청량한 맛이 극대화된다. 이 조합에 익숙해지면, 다른 추어탕집을 가더라도 자꾸 이곳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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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시각화된 진정성

‘진정성’은 주관적인 개념이다. 각자가 각자의 방식으로 느낀다. 하지만 상주식당에서는 이 진정성이 꽤나 객관적으로 ‘보인다’. 중정이 있는 한옥 형태의 식당에 들어서면, 그 중정에서 직원들이 두건을 쓰고 고무장갑을 낀 채 열심히 배추를 씻고 있는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커다란 솥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일종의 오픈 키친인데, 그 풍경이 마치 과거 설날에 고향집에 내려갔을 때의 정겨운 장면과 겹친다. 그 자체로 진정성이 전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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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았던 건지 몰라도 갈 때마다 2대 사장님이 늘 가게에 계셨다. 방송에도 여러 차례 출연한 분인데, 유명세를 등에 업고 자리를 비우는 대신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다. 그 모습이 ‘70년 전통의 맛집’이라는 말과 어긋나지 않는다. 흔히 전통을 마케팅에만 활용하고 실제 운영은 다른 곳에 맡기는 사례와는 확연히 다르다.


또 하나 인상 깊은 점은 식사를 마치고 나갈 때다. 손님이 어떻게 신발을 벗고 들어왔든, 나갈 때는 모든 신발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호텔처럼 별도의 서비스 요원이 있는 곳도 아닌데 말이다. 나는 이런 디테일을 가진 맛집을 거의 본 적이 없다. 사람은 경험의 극대치(peak)와 마지막 인상(end)을 중심으로 전체 경험을 기억하게 된다는 ‘Peak-End Rule’을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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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워라밸이 만든 지속 가능성

상주식당은 12월 중순부터 2월 말까지는 영업을 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집이 고수하는 논미꾸라지는 겨울철에 수급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겨울 방학’을 가지는 셈이다.


이 기간 동안 사장님은 해외여행을 다녀오거나 전시회를 관람하면서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물론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중요한 건, 직원들도 함께 쉬며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점이다. 장기적으로 더 오래, 더 잘 운영하기 위한 지속 가능성의 설계다. 덕분에 7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브랜드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브랜딩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애플, 나이키, 파타고니아 같은 글로벌 브랜드에만 주목한다. 하지만 스몰 브랜드가 더 눈여겨봐야 할 대상은 오히려 주변의 오래된 가게들일지 모른다. 오랜 시간 한자리를 지켜온 작지만 단단한 브랜드. 그 안에 담긴 디테일, 진정성, 지속 가능성에서 우리는 더 현실적인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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