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사케를 한 자리에서? 알딸딸 토크

by 캡선생

영어는 드래곤볼의 마인부우처럼 다른 언어를 빠르게 흡수하며 진화해온 언어다. 그중에서 ‘al’이라는 접두사가 붙은 단어 상당수는 아랍어권에서 비롯되었다. AI 시대에 더욱 자주 접하게 된 ‘알고리즘(algorithm)’, 알칼리(alkali), 그리고 알코올(alcohol)이 그렇다.


술을 금지하는 아랍어권에서 ‘알코올’이라는 단어가 나왔다는 점은 다소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어원을 따라가 보면 이해가 된다. 알코올은 원래 눈 화장에 쓰이던 검은 가루, 즉 ‘안티모니(antimony)’를 곱게 갈아 만든 분말을 뜻했다. 이후 ‘아주 미세하게 정제된 것’이라는 의미로 확장되었고, 서구로 전해지면서 증류 과정을 거친 정제된 술을 가리키는 말로 의미가 옮겨갔다.


갑자기 어원 이야기를 길게 꺼낸 이유는 오늘의 주제가 ‘술’이기 때문이다. 다짜고짜 술 이야기로 들어가는 건 인사이트 토크답지 않은 것 같아 서두를 조금 그럴듯하게 깔아봤다. 그렇다. 오늘의 주제는 술, 그중에서도 ‘사케’다.


프랑스에 가면 와인을 마셔야 하듯, 일본에 가면 사케를 마셔야 한다. 사케가 낯선 분들이라면 ‘청주’나 ‘정종’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우리가 흔히 사케라고 부르는 술의 정식 명칭은 ‘세이슈(清酒)’인데, 이 한자를 한국식으로 읽으면 바로 ‘청주’다.


‘정종’이라는 이름에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일제 강점기 당시 우리나라에서 크게 유행했던 일본 사케 브랜드 이름이 그대로 굳어, 지금까지 차례상에 올리는 전통술의 대명사처럼 남아 있다. 술 이름 하나에도 역사적 기억이 겹겹이 쌓여 있는 셈이다.


일본 주세법에 따르면 세이슈는 쌀과 쌀누룩, 물을 중심으로 발효한 뒤 여과해 만든 일본의 법적 청주를 뜻한다. 법이 허용한 범위 안에서 일부 부재료가 사용될 수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쌀이 주원료라는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 결국 세이슈, 즉 사케란 쌀이 중심에 서 있는 술이다.


아무튼 이번 일본 여행에서는 사케를 2시간 동안 무제한으로 마실 수 있는 사케 바를 찾았다. 평소에는 쉽게 마시기 힘든 고급 사케를 가격 걱정 없이 마셔볼 수 있는 곳이었다. 특히 3대 사케로 불리는 주욘다이, 지콘, 아라마사에 대한 기대가 컸다.


우리가 방문한 곳은 신주쿠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메슈이자카야 강코오야지’다. 이곳은 안주의 구성과 마실 수 있는 사케 종류에 따라 몇 가지 코스로 가격이 나뉘어 있었다. 우리는 대부분의 사케를 마실 수 있는 프리미엄 코스를 선택했다.


가장 빠른 시간인 저녁 6시에 예약을 하고, 문이 열리자마자 지하에 있는 가게로 내려갔다. 분위기는 이자카야라기보다는 바에 가까웠다. ㄷ자 형태의 바 좌석과 테이블석이 있었고, 우리는 바에 앉았다. 바로 눈앞에 3대 사케 중 하나인 ‘지콘’이 나란히 서 있었다.


‘오늘은 3대 사케(주욘다이, 지콘, 아라마사) 위주로 마셔야지’라고 생각하던 찰나, 사장님이 내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다가와 말했다. 다른 사케는 무제한이지만 지콘과 주욘다이는 각각 한 잔씩만 가능하다고. 반가움과 아쉬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당일에 아라마사는 제공되지 않는 듯 했다)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이 마셔야 한다는 생각에 속도를 내다 보니, 가게를 나설 즈음에는 하늘이 빙빙 도는 상태가 되었다. 그럼에도 이 경험은 꼭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정신을 붙잡고 사진을 찍고 사케별 인상을 키워드 중심으로 휴대폰에 남겨두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다섯 가지 사케만 정리해보면 이렇다.


1. 주욘다이 나카토리 준마이긴죠 반슈 아이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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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사람을 두고 ‘육각형 인간’이라고 부르듯, 이 사케가 딱 육각형 사케였다. 저가 사케에서 느껴지는 거친 알코올 향이 전혀 없고, 인위적이거나 과한 단맛도 없었다. 목 넘김은 부드럽고, 단맛은 절제되어 있으며, 술임을 인지하게 하는 미세한 알코올 향만 남는다. 명성에 걸맞은 사케라는 생각이 들었다.


2. 지콘 토쿠베츠준마이 니고리자케 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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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콘 역시 훌륭한 사케였다. 다른 곳에서 일반적인(?) 사케를 마셔봤고, 이곳에서는 니고리자케(막걸리와 비슷)를 마셨는데, 내가 마셔본 니고리자케 중에서는 단연 최고였다. 다만 주욘다이를 바로 이어서 마셔보니 차이가 느껴졌다. 지콘은 맛있지만, 주욘다이에 비해 단맛이 조금 더 도드라진다. 단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지콘을 더 선호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이 단맛이 다소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 킷도 준마이긴죠 시보리다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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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유일하게 두 번 마신 사케다. 주욘다이나 지콘도 제한이 없었다면 여러 번 마셨겠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한 선택지 중 베스트는 킷도였다. 나마자케(생사케) 특유의 가벼운 탄산감과 신선한 과일 향이 느껴지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4. 토요비진 준마이긴죠 준도이치즈 하쿠츠루니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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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3대 사케를 제외하면 가장 좋아하는 사케 브랜드가 토요비진이다. 이번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10만 원 이하 가격대의 사케 중에서 이 정도 밸런스를 가진 술이 또 있을까 싶다.


5.아카부 준마이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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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부 역시 좋아하는 사케 브랜드다. 특정 맛이 튀지 않고, 어떤 음식과도 무난하게 어울린다. 앞에 나서기보다는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하는, 음식에 집중하게 만들어주는 사케다.


주량이 센 편이 아니라 늘 적당히 마시고, 해외에서는 특히 정신을 바짝 차리는 편이라 만취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런데 이번에는 드물게, 제대로 취했다. 가게를 나서니 도쿄인지 서울인지 시공간의 경계가 흐릿해졌다. 지나친 음주는 건강에 좋지 않다. 다만 좋은 술은, 취한 기억보다 취한 이유를 오래 남긴다.


p.s. 참고로 모든 안주가 찬 안주여서 호불호가 있을 듯 싶었다.


2026년, 진짜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고 싶다면 이 책도 꼭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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