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먼저일까, 말이 먼저일까. 대부분은 생각을 하니까 말이 나온다고 여기겠지만, 가끔은 말이 먼저 튀어나오고 나서야 생각이 정리될 때가 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한 번쯤은 겪어봤을 것이다. 최근의 내가 그랬다.
“어렸을 때는 자신만만했고, 세상에 못할 일이 없을 것 같았는데요. 실수와 실패가 반복되다 보니 자신감도 줄고, 시도할 용기도 사라졌어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놀러가기로 참여한 한 독서모임에서, 누군가의 질문에 답을 하다 보니 생각이 정리되었다. 오늘은 그렇게 말을 통해 정리된 인사이트를 적어보려 한다.
우리가 실패 앞에서 유독 작아지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어느 시대에나 영웅은 있었고, 대중과 미디어는 늘 그 영웅을 부각시켜 왔다. 고난과 역경을 거쳤다는 서사는 붙지만, 결과적으로는 무결하게 성공한 이야기만이 남는다. 실패는 과정으로만 소비되고, 최종 장면에는 남지 않는다. 그런 이야기를 반복해서 보다 보면, 실수와 실패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부끄러운 것이 된다. 하지만 AI 시대에 접어든 지금, 우리는 이 서사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티 없이 매끄럽고, 완벽한 각도의 도자기는 인간보다 AI가 더 잘 그릴 것이다. 로봇과 결합된다면, 인간보다 더 정교하게 실물도 만들 것이다. ‘완벽함’이라는 기준에서 보자면, 그것은 점점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 AI의 영역이 되어가고 있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스스로를 다른 동물과 구별하기 위해 여러 이름을 붙여왔다. 지금 현생 인류를 가리키는 명칭으로 쓰이는 호모 사피엔스는 ‘지혜로운 인간’이라는 뜻이고, ‘도구를 쓰는 인간’이라는 의미의 호모 파베르,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뜻의 호모 루덴스 같은 표현도 있다. 그 모든 이름에는 공통점이 있다. 인간을 여타 동물보다 ‘무언가를 잘하는 존재’로 정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AI의 등장으로 인간은 또 하나의 본질적인 질문 앞에 서게 되었다. 더 이상 비교 대상은 동물이 아니라 AI다. AI와 비교했을 때, 인간만이 갖는 고유한 무언가는 무엇인가. 의식이나 자율성 같은 개념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자. 나는 그 차이를 ‘실수’에서 찾는다.
AI는 실수를 줄이기 위해 설계되고, 완벽함을 향해 나아간다. 오류는 수정 대상이고, 제거해야 할 변수다. 반면 인간은 실수를 쉽게 한다. 계획대로 되지 않고, 계산이 어긋나고, 의도와 다른 결과를 낳는다. 중요한 건, 바로 그 실수에서 예기치 않은 가능성이 열린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인류를 ‘지혜로운 인간’이 아니라, ‘실수하는 인간’—호모 팔리빌리스(homo fallibilis)라고 불러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실수는 단순한 결함이 아니다. 인류는 실수를 통해 수많은 발견을 해왔다. 접착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실패작 취급을 받던 접착제는, 붙였다 떼기 쉬운 포스트잇이 되었고, 실험실에서 우연히 방치된 배양균은 페니실린이라는 의약 혁신으로 이어졌다. 실수는 예기치 않은 샛길로 우리를 이끌고, 그 샛길 끝에서 우리가 그토록 찾던 보물을 만나게 하기도 한다.
앞서 말했듯, 완벽한 곡선과 티끌 하나 없는 도자기는 앞으로도 AI가 더 잘 만들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도자기를 떨어뜨려 깨뜨리기도 하고, 그 깨진 조각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다시 이어 붙인다. 그렇게 살아간다. 그 상징적인 결과물이 바로, 깨진 부분을 금으로 덧입힌 킨츠기다. 우리는 때때로 완벽한 도자기보다, 그렇게 불완전함이 드러난 도자기에서 더 큰 아름다움을 느낀다.
실수는 인간의 약점이 아니라, 인간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흔적이다. AI 시대에서는, 오히려 그 흔적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기준이 될지도 모른다. 실수하는 인간의 피땀눈물은 흠이 아니라 빛이 된다.
회사 밖의 삶이 걱정이라면, 퇴사를 하고 싶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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